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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현장+]불법 유통 개인 정보 없는 텔레마케팅은 사양산업

권순우 기자

제가 학창시절 전화 영업을 했던 경험입니다.

#1.
중학교를 졸업하던 때 고등학교 앞에 위치한 교복집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졸업과 입학을 하는 겨울 방학에 10여명의 학생이 전화기를 붙들고 전화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3 졸업생인 동기들에게 전화를 걸어 교복을 맞추러 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내가 잘 아는 교복집이니 할인을 해주겠다”, “삼촌이 교복집을 하시는데 어차피 교복 맞추는거 한번 도와 달라”

한번 성사를 시키면 성과급으로 3000원을 받았습니다. 친구들을 잘 구워 삶는 학생들은 하루에도 몇 만원씩 돈을 받아 갔습니다. 꽤 큰돈이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꽤 괜찮은 아르바이트였지요.

그때 전화를 걸어 친구를 불러 오는 것보다 더 돈이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다름아닌 졸업앨범. 졸업앨범 뒤에는 그 해 졸업하는 수많은 학생들의 집 전화 번호가 담겨 있었습니다. 졸업앨범을 가장 먼저 교복집 아저씨에게 팔면 성과급에 6배가 넘는, 2만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2.
두 번째 텔레마케팅의 경험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사무실이었습니다. 카페에서 서빙을 할 때 시급이 2000원정도 되던 시절, 그곳은 3000원이나 줬습니다. 많은 대학생들이 몰렸습니다.

그때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장님은 Y대학교 동문 주소록을 내밀며 전화를 하도록 했습니다.

“선배님. 동문회에서 동문 교수님이 개발하신 카테킨(녹차성분) 크림을 팔고 있는데 수익금은 동문회 장학금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Y대 학생은 아니지만 Y대 동문회 주소록을 통해 열심히 전화를 걸었습니다. 후배에 대한 선배들의 애정을 악용한 전화 영업이었습니다.

결국 Y대 동문회는 우리(?)의 불법 영업을 인지하고 동문회 이름으로 전화 영업을 하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전해왔고 Y대 동문 주소록을 사용할 수 없게 된 우리는 영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의 전화영업의 공통점은 '불법 개인정보' 없이는 불가능한 사업이었다는 점입니다. 또다른 공통점은 최적의 개인정보를 이용했다는 점이고 세번째는 불법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돈 한푼이 귀한 학생들었다는 점이겠죠.

약삭빠른 사업자의 정당하지 않은 마케팅이지만 최적의 고객 정보를 이용한 마케팅은 놀라운 효과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꽤 짭짤한 성과급을 받았습니다. 만약 최적의 고객 정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고객 정보 유출 사태 이후 3월까지 모든 금융회사의 텔레마케팅이 원칙적으로 금지됐습니다. 많은 전화영업직원들이 ‘개점휴업’상태입니다. 금융당국은 국민적 불안이 고조된 상황에서 전화영업에 이용되는 개인정보가 합법적인지 점검하고 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3월말 이후에는 지금까지처럼 전화 영업이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현재 전화 영업에 사용하고 있는 정보 중 대부분은 제가 경험했던 이상한 텔레마케팅처럼 불법적으로 취득한 개인정보를 이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설사 합법적으로 취득했다고 해도 경품행사, 회원가입 등을 명목으로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동의를 받아 입수한 정보입니다. 앞으로는 개별 제휴사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일일이 개인의 동의를 받도록 관련 제도 개선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업체 대출 모집인이 당신에게 대출을 유도하는 데 정보를 활용하는 것에 동의하시겠습니까?’, ‘본인의 정보가 보험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에 동의하시겠습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보 제공에 동의했던 과거와 달리 앞으로는 정보 제공처와 정보 활용 방식에 대해 투명하게 알리고 확인을 받도록 개정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케팅 전화에 시달려야 했던 고객들이 정보 제공에 동의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현재 카드, 보험회사에서 활동하고 있는 텔레마케터만 3만 8000여명에 달합니다. 그밖에 영역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의 전화 영업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대부분 전화 영업직원들은 소액의 기본급과 성과에 따른 보상을 받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급여가 적은 생계형 서민들입니다.

1억건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범정부적인 개인정보 보호 방안을 강경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추진하는데로 하루 아침에 철저하게 개인정보가 보호된다면 전화영업을 위해 필수적인 개인정보는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지금,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대원칙에는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비정상적으로 운영돼온 전화영업이 정상화되는 과정입니다. 번갯불에 콩구워 먹든 이뤄지는 사회변화에 수많은 텔레마케터들은 일자리를 잃게 될지 모릅니다. 혹은 합법적인 일을 하던 사람들이 불법의 나락으로 떨어질게 될 겁니다.

하루아침에 국민적 관심사가 된 개인정보 보호라는 '정상화' 과정에서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된 수많은 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머니투데이방송 권순우입니다. (progres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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