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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현장+]'차명거래' 5000만원 벌금, 증권맨들의 속앓이

권순우 기자

“A씨는 2012년 9월부터 신용회복위원회에 사전채무조정신청을 해서 10년 동안 월 71만원씩 변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자금대출 1500만원 체납통지 처분을 받게 돼 회사 교육생 숙소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B씨는 본인이 생활비, 부모님 사채빚, 정신지체 3급인 여동생의 병원비 등을 충당하고 있고 개인적으로 많은 대출이 있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불우이웃 돕기 현장이 아닙니다. 다들 억대 연봉과 고급 스포츠카를 떠올리게 하는 ‘증권맨’들의 자기 고백입니다.

금융감독원은 대우증권과 IBK증권 임직원들이 차명계좌에서 주식을 매매한 사실을 적발하고 백 여명의 직원들에게 최대 5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적발된 직원들은 감면을 받기 위해 구구절절한 본인들의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차명 계좌로 거래해서 적발된 증권맨들의 사연을 좀 더 들어볼까요?

“C씨는 다른 증권사에서 6개월간 수수료가 무료라는 점에 혹해서 계좌를 개설해 거래를 했습니다. 자꾸 손실이 나서 차마 매도를 하지 못했고 선물옵션까지 손을 댔다가 2억 4000만원을 잃었습니다.”

“D씨는 대우증권 퇴직 이후 월 150만원 받으면서 지점에서 상담역을 했습니다. 고객과 거래는 없었고 처제 계좌의 손실을 만회하려고 퇴직위로금 전부 입금시키고 매매를 했습니다.”

“E씨는 친구에게 권유한 종목이 40%나 하락해 미안한 마음에 직접 주식 매매를 했는데 손실을 더욱 입어서 더 오랫동안 매매를 하게 됐습니다.”

경쟁 증권사에서 수수료 무료 이벤트를 한다고, 친구한테, 처제한테 투자 권유했다가 미안해서. 뭔가 대단한 기술이 있을 줄 알았던 증권맨이나 손절은 못하고 비자발적 장기투자를 하는 개인 투자자이나 주식으로 겪는 경험은 비슷하네요.

차명계좌 이용은 증권업계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집니다. 증권사에 다니는 지인에게 주식을 추천받고 바쁠 때는 대신 매매를 부탁하는 것, 그것도 불법입니다.

차명계좌 이용 제한은 고객 계좌와 본인 계좌의 이해상충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규제입니다. 본인이 이익을 위해 고객의 돈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정작 금감원이 잡아들이는 증권사 직원의 대부분은 관행적으로 남의 계좌를 이용한 사람입니다.

양형이 약한 것도 아닙니다. 금감원은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차명 계좌로 거래한 수백명의 증권사 직원들에게 2500만원~5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습니다. 하루 아침에 5000만원을 벌금으로 내면 웬만한 월급쟁이들은 허리가 휘청할 겁니다. 감사원이 통보한 직원들 숫자만 해도 400명에 가깝고, 이들이 모두 5000만원의 과태료를 받으면 무려 200억원이나 됩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차명계좌 이용의 경우 과태료가 최대 5000만원이고 최대 50%까지 감면이 가능하기 때문에 최소 2500만원 이상으로 결정했다”며 다만 “최종적으로 과태료 수위가 정해지는 금융위원회는 감면 한도가 없기 때문에 좀 더 감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건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갔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차명거래를 행위만으로 무조건 5000만원씩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적절한가. 자기 직원들이 수백명씩 불법 행위를 하는데 그대로 둔 증권사는 내부통제시스템이 있긴 한 것인가.

남한테 들은 정보로 투자했다가 망하기도 하고 괜히 종목 추천했다가 미안한 마음에 뛰어든 것이 더 큰 화를 부르기도 하고. 아무 생각없이 관행적으로 거래 했다가 5000만원의 과태료를 받게 될 개개인을 생각하니 안타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증권맨들의 이면이 우리 개미투자자들과 별다르지 않다는 동질감 때문일까요.

추신. 그렇다고해서 금융위원회에서 추가적인 감면이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처벌에 대한 법적 근거가 명확하고 감면 사유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변화가 있을 것 같진 않다”고 말했습니다.

머니투데이방송 권순우 (progres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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