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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현장+] “금감원장 저 양반도 참 힘들겠다”

권순우 기자



“금감원장에 취임하고 국회에서 솜방망이 처벌 때문에 가장 많이 혼났습니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가진 강연회에서 200여명의 금융권 CEO와 임직원들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을 꺼냈습니다. 강연회에 참석한 금융인들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동양그룹사태, 금융회사 고객정보 유출사고, 국민은행 국민주택채권 횡령, KT ENS 관련 3000억대 대출사기, 도쿄지점 불법 대출, 한맥 증권 주문사고.

몇 년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한 일이 최근 6개월간 일어났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금융인들은 굳이 감독당국의 수장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만나봐야 잔소리나 하고 엄중하게 제재하겠다며 겁을 줄 테니까요. 직접 관련이 있는 금융인은 물론이고 금융인이라면 누구나 말 안해도 그 여파를 느끼고 있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금융회사들이지만,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습니까. 겉으로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사고의 여파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다름 아닌 금융회사라고 말하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강연회가 진행될수록 진솔한 감독당국 수장의 말은 금융인들의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고객 정보를 유출한 박모씨는 3개 카드사가 아닌 5개 카드사에서 범행을 시도했습니다. 2개 카드사가 고객 정보 유출에서 벗어난 이유를 최 원장은 ‘원칙’을 지킨 것이라고 설명하며 사전 예방적, 현장 중심의 검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현장, 사전 예방, 원칙. 상투적인 표현입니다. 하지만 진정성이 담긴 어구는 상투적이지 않습니다.

최 원장은 “안면 있는 사람이 사소한 부탁을 할 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방심할 때, 편할 때,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100만 분의 1일 때에도 룰을 지킬 수 있을까요?”하고 말했습니다.

만약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난 단호하게 그의 부탁을 거부할 수 있었을까? 식상하기 그지 없는 ‘원칙’이라는 단어가 마음으로 파고 듭니다.

잇따른 금융사고로 금융감독원과 금융회사 사이에는 불신이 싹트고 있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동양 사태만 해도 부실 계열사 기업어음 발행하지 말라고 몇 차례나 지도를 했는데 무시하고 사고를 냈다”며 “그 책임을 감독당국이 다 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금융권은 다른 각도에서 볼멘소리를 합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고가 날 때마다 감독당국이 면피를 위해 보여주기식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엄중한 시기에 감독당국의 방향에 대해 금융회사도 관심이 많지만 이런 자리가 필요했던 것은 오히려 함께 가야 할 방향을 전하고 싶은 최 원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국민이 금융을 욕할 때 첫 번째 타겟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금융감독원이었습니다.

강연회가 끝나고 카드사 관계자는 “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해 늘상 듣던 이야기라 새로운 것은 없지만 직접 육성으로 들으니 진정성이 느껴지고 더 어깨가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금융회사 관계자는 “최수현 원장이 그 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소통이란 이런 겁니다. 좋을 때 서로 듣기 좋은 이야기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진정성을 가지고 싫은 소리도 솔직하게 나눠야 함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은행인질 강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강도와 인질들이 함께 하는 동안 강도 짓을 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공감대를 형성했고 결국 인질들이 강도를 변론해주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했습니다.

강도와 인질이라는 극단적인 관계도 소통을 통해 공감을 할 수 있는데 하물며 금융산업 발전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진 금융당국과 금융회사가 어찌 소통을 할 수 없겠습니까.

강연회 막바지에 최 원장은 “하고 싶은 말씀이나 궁금한 점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제안했습니다. 물론 그 자리에서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금융인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 원장이 “공개적으로 직접 물어보기 어색한 내용은 이메일을 보내주십시오. 제 메일은 ‘thankyoumuch’입니다” 하며 이메일을 공개했을 때 굳어진 금융인들의 표정이 한층 풀어졌습니다.

한번의 만남으로 원활한 소통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힘든 시기를 서로 믿고 해쳐 나갈 때 결국 ‘thankyoumuch’ 하며 서로를 격려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머니투데이방송 권순우입니다. (progres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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