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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 현장+] 파산 앞둔 벽산건설 '자서분양' 피해자…'속수무책'

임유진

"건설사 다니는 사윗감, 요샌 인기 없어요. 탐탁지 않아 해요."

건설회사에 재직 중인 분들을 만나면 털어놓는 자조 섞인 하소연이다. 건설업계가 어려워지면서 덩달아 어려워진 건설사 직원들의 심각한 상황을 듣다보면 자못 공감하게 된다. 특히나 중견건설사들은 더욱 그렇다.

◆ 벽산건설 자서분양 피해자 "남은 건 빚뿐"…구제책 없어

파산을 앞둔 벽산건설에 18년째 몸담아온 김 모씨.

김 씨가 열정을 바쳤던 이 회사는 한때 도급순위 20위권까지 올라서며 승승장구했지만 건설업계의 위기를 피해가지 못했다.

지난 2008년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일산 식사지구의 사업장에서 미분양 물량이 발생하자 회사는 그에게 분양계약을 강요했다. 회사는 전매와 근저당대출에 대한 이자비용 대납을 약속했지만, 회사가 2010년 워크아웃에 이어 2012년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그 빚은 고스란히 김 씨의 몫으로 남게 됐다. 이렇게 직원들에게 떠넘겨진 가구만 156가구. 나머지는 겨우겨우 매각됐고, 회사가 파산을 코앞에 둔 현재 59가구가 김 씨를 비롯한 직원들에게 떠넘겨진 상태다.

그가 분양 받은 아파트의 분양가는 8억 원에 달했다. 중도금 대출 4억8천만 원에, 한 달에 부담해야할 대출이자만 250만 원.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회사의 대출이자 대납은 끊겼고, 그나마 노조 자금으로 충당해온 이자비용 조차 바닥이 났다. 대출이자를 갚지 못하자 김 씨가 현재 살고 있는 집은 가압류 상태가 됐고,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된 상황.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은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일산의 아파트로 들어간 사람도 있다.

법원은 이미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부터 이 계약을 개인 간의 거래로 인정한 상황. 18년간 몸담아온 회사의 파산이 다음 달에 확실시되면서 김 씨에게 남은 건 어마어마한 빚뿐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이처럼 건설사가 자사의 직원들이나 협력업체를 상대로 주택을 강매하는 행위를 '자서분양'이라 일컫는다.

자서분양은 비단 벽산건설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전국건설기업노동조합연합이 지난해 자서분양 실태를 조사한 결과 국내 건설사 2천 여개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자서분양을 하는 상황이다.

◆국토부 '자서분양 피해방지책' 마련했지만…실효성은?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1월 이 같은 갑의 횡포를 방지하기 위해 '자서분양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벽산건설 직원들처럼 이미 분양계약을 맺은 피해자들을 구제할 순 없지만 앞으로의 피해를 막자는 취지에서였다.

핵심은 건설사 직원들에게는 원칙적으로 중도금 대출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다만 건설기업노조로부터 '자의여부 확인서'를 발급받아 제출하는 경우 예외를 뒀다. 직원들로 하여금 자서분양의 폐해 등을 충분히 상담ㆍ고지 받은 후에 중도금 대출을 받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방지책은 자서분양 피해자를 사전에 구제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중도금 대출 단계는 이미 계약이 이뤄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계약 단계에서부터 확인서를 발급받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또 분양을 강요받을 경우 신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자서분양 신고 콜센터'도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갑을관계에 의해 강압적으로,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자서분양의 특성상 피해자들이 선뜻 신고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11월 시행 이후 지금까지 접수된 신고는 단 한 건도 없다.

이번 대책에는 협력업체를 위한 피해방지 방안도 빠져있다. 협력업체에 대한 건설사들의 '갑의 횡포'는 심각한 상황이다. (주)한양은 지난 25일 하도급거래를 조건으로 하청업체에 용인보라지구 미분양 아파트 30가구를 떠넘긴 행위가 드러나 공정위로부터 52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이 같은 공정거래법에 의한 구제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쉽지 않다.

실제 이 같은 대책의 허점은 곳곳에서 지적되고 있고, 국토부도 그 현실을 알고 있다. 건설기업노조 측에 문의한 결과 지난 11월부터 지금까지 발급된 '자의여부 확인서'는 200여 건이라고 한다. 과연 이 중 정말로 스스로의 의지, '자의'에 의해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건설기업노조는 시행 6개월을 맞는 오는 5월, 국토부에 보완책을 건의할 계획이다. 자서분양을 뿌리 뽑으려는 국토부의 노력은 높이 사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을 위해서는 고민이 더 필요해 보인다.

머니투데이방송 임유진 기자 (mindelle87@m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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