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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현장+] 뿌리 뽑기 어려운 '갑의 횡포'…중소 유통업체까지 번져

최보윤 기자

지난해 사회 곳곳에서 '갑의 횡포' 문제가 봇물처럼 터져나오면서 관련 규제 강화와 자정 노력이 확산되는 분위기가 확고했다.

그 중심에는 백화점과 대형마트, TV홈쇼핑, 편의점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있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달라졌을까? 단적으로 말하면 '글쎄다'다.

'을'의 처지에 있는 납품업체들은 유통업체의 횡포가 사라지기는 커녕 오히려 중대형 유통업체들이 대형 업체들의 잘못된 관행을 답습하는 현상만 두드러졌다고 하소연한다.



◈ 규제 강화해도 대형 유통업체 '갑질' 여전

지난 26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형 유통업체와 거래하는 1만개 납품업체를 대상으로 한 서면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만개 납품업체 가운데 조사에 응한 업체는 모두 1,761개 업체였다. 조사는 대형 유통업체의 불공정거래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인 '대규모유통업법'이 시행된 지난 2012년 1월 1일부터 시작됐다. 대규모유통업법 시행 이후 얼마나 관행이 개선됐나 볼 수 있는 첫 번째 지표인 셈이다.

결과는 암담했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납품업체와 거래하면서 서면 약정을 쓰지 않거나 부당한 정보를 요구하고, 부당 반품비나 판촉비를 전가시키는 관행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한 편의점 업체는 납품업체에게 경쟁사에 납품하는 제품의 가격과 수량 등 공급조건을 주기적으로 요구하기도 했고, 대놓고 원가 정보를 요구하는 대형마트도 있었다.

과도한 입점비나 판촉비를 요구하는 관행도 여전했다. 홈쇼핑 납품업자들은 홈쇼핑업체들이 수량을 임의로 정해 선제작을 요구한 뒤 팔리지 않은 재고를 그대로 반품하는 경우가 많아 힘들다고 토로했다.

◈ "대형 업체 뿐만 아니다"…중소업체들마저 '갑의 횡포'

중소 납품업자들은 "어떻게 하루 아침에 갑의 횡포가 근절되겠냐"고 입을 모은다. 그나마 전년도 보다 조금 나아진 것만으로도 불행 중 다행이라는 평가다.

다만 이들은 그 사이 또 다른 암덩어리가 치고 올라왔다며 혀를 찼다. 규모는 대형이지만 대규모유통업법의 제재 대상에서 빠지는 준대형유통업체들의 얘기다.

마트의 예를 들어보자. 이마트나 홈플러스, 롯데마트 같은 경우는 매출액 1,000억 원 이상, 매장면적 3,000제곱미터(100평) 이상으로 대규모유통업법의 규제를 받는다. 과도한 판촉비용 전가나 부당한 정보 공개 요구 등 불공정행위가 적발되면 납품금액이나 연간 임대료의 100%에 달하는 과징금 처분을 받게 된다.

실제 공정위는 지난해 말 이를 근거로 롯데백화점과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3개 업체에 6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규제가 강화된 만큼 대형마트들이 이전보다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지 못하면서 자연히 갑질도 '아주 조금' 순화됐다는 것이 납품업자들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그러나 형태는 대형마트와 비슷하나 제재 대상 규모에 미달돼 제재를 받지 않는 준대형마트들이 새로운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대기업의 간판을 단 기업형슈퍼마켓(SSM)부터 개인 브랜드를 단 마트까지 대형마트가 다소 움츠러든 사이 활개를 치며 잘못된 거래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는 게 납품업자들의 주장이다.

한 납품업체 사장은 "전에는 대형마트에서나 요구하던 입점비나 진열대 제작비, 판촉비 요구가 이제는 중소형마트로까지 번졌다"며 "팔 수록 적자"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납품업자는 "대형마트 영업제한으로 줄어든 매출을 채우려고 중대형마트에 납품을 시작했다가 큰 코를 다칠뻔 했다"고 주장했다.

보통 2~3년치 거래 계약을 맺고 수천만원의 입점비를 내는데 개인 점주가 운영하는 중대형마트의 경우 하루 아침에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고액의 입점비를 가로채기 위해 고의로 부도를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사실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대기업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관행을 그대로 준대형 업체들이 답습하는 것도 문제지만, 항상 한 템포 느리게 따라붙는 규제 개혁도 문제다.

대형 유통업체들의 갑의 횡포가 뿌리를 내리게끔 방관한 순간 이미 규제의 1차 타이밍을 놓친 셈인데, 그 뒤 규제 개선도 항상 문제가 곪고 곪아 터져나오고서야 찔끔찔끔 강화되는 식으로 이뤄져 큰 성과를 못 거뒀다.

지금도 대기업 잡자고 일부 규제를 강화하고 나섰지만, 현장에선 이미 중소 업체들에게 까지 잘못된 관행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며 신음하고 있다.

사랑에도 타이밍이 있듯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데도 타이밍이 있다. 이미 늦은감이 없지 않지만 시시각각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뻥 뚫린 '규제 허점'을 바로잡는 일이 시급하다.

머니투데이방송 최보윤(boyun7448@naver.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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