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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수칼럼] ‘낙하산’ 찍지 말고 뽑게 하자!

최남수 대표이사

“마구 밀어붙이는구먼. 이래도 되는 거야?” 오래전 한 대형 금융기관의 임원실. 금융당국 고위직의 전화를 받은 이 임원은 한숨을 내쉬며 불만 가득한 말을 내뱉었다. 당시 이 회사는 임원 자리가 비어있던 상태. ‘낙하산’을 심기 위한 금융당국의 요구는 집요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한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자신들이 원하는 ‘스펙’의 사람을 쓸 수 있는 게 최선이었다. 그나마 이런 희망도 이뤄지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한 사람을 정해 받아들이라는 통첩이었다. 금융당국이 낙점한 인사는 결국 주총에서 ‘자발적 선임’의 형식을 갖춰 이 기업에서 3년간 둥지를 틀었다. 낙하산이라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다. 주인의 뜻과 무관하게 그저 ‘고공점프’로 집안에 들어온 셈이다.

낙하산의 뿌리는 깊고도 질기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보이지 않는 물리력이 동원된 이 ‘일탈의 인사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지나치면, 달도 차면 기우는 게 세상의 이치인 것. 폐해가 컸던 만큼 반작용의 조치도 과도했던 면이 있지만 퇴직관료들과 민간기업들 사이엔 원칙적으로 ‘접근금지’의 선이 그어졌다.

다시 금융권 얘기. 2014년 말 은행연합회, 생보협회, 손보협회 등 금융관련 협회 수장 자리에 민간기업 출신 인사들이 선임됐다. 지난해 초부터는 부회장 자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렸다. 오래된 ‘전리품’인 협회장 자리를 내준 관료들에겐 ‘부회장이라도’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상황은 요지부동이었다. 금융위는 부회장 자리를 전무로 낮추는 대신 내부인사가 이를 맡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관이 주도해온 협회 지배구조의 틀을 바꾸는 안이었다. 실제로 이후 은행연합회는 한은 출신 민성기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켜 내부 선임의 모양새를 갖추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혁신의 이상이 현실에 착근하긴 쉽지 않았다.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시간을 끌면서 판을 바꾸기 위한 물밑작업들이 진행됐다. 마침내 그 실체가 드러난 것은 민성기 은행연합회 전무가 신용정보원장으로 옮긴 올해 초 이후부터. 공석이 된 그 자리에 김형돈 전 조세심판원장이 출사표를 던졌지만 업무 관련성을 이유로 퇴직공직자 취업심사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 바통은 금융위 국장 출신 인사가 이어받을 것으로 보인다. 생보협회와 손보협회도 상황은 마찬가지. 생보협회 전무에는 송재근 전 금융위 감사담당관이 선임됐다. 손보협회도 논란이 일어날 수 있는 국정감사 기간이 지나면 금감원 국장 출신이 임명될 것이란 관측이다.

관의 재등장에 앞뒤 안 가린 비판을 할 생각은 없다. 낙하산, 관피아를 용인해서가 아니다. 오랜 기간 국가가 키운 전문적 인재들이 민간에서 일할 기회를 아예 봉쇄하는 것 또한 사회적 손실이란 균형감각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쟁 없이 정부에서 한 사람을 정해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식의 일방향식 관행이 계속된다는 데 있다. 최소한 복수 후보군을 놓고 해당 민간협회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의 기회는 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 후보군에는 정부 추천 인사는 물론 내부 후보도 들어가 공정한 경쟁을 치르도록 해야 한다. 해당 협회와 회장, 그리고 회원사들이 같이 일하고 싶은, 그리고 해당 협회에 적합한 사람을 선별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후보자가 제출한 신원증명서만 체크해서는 안 된다.” 고위직을 뽑을 때 GE의 전 CEO 잭 웰치가 강조한 원칙이다. ‘일수불퇴’(一手不退)의 자세로 한 명의 이력서만 내밀기보다 ‘인재시장’을 만들어준 다음 선발권은 민간에 넘겨주는 게 금융자율 시대를 여는 관의 변화된 자세일 것이다. 이게 관피아 논란을 줄이는 길이기도 하다. 관이 보내면 민이 굽실거리며 받는 식의 인사는 이젠 구시대 유물로 퇴장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머니투데이방송 MTN 최남수 대표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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