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N NEWS
 

최신뉴스

[MTN현장+] '23세 미성년' 코스닥은 '원래 그런' 시장?

시가총액 31배↑...지수는 31%↓
이대호 기자



23세 청년 코스닥은 커진 덩치만큼 몸값을 하고 있을까? 지난 1997년 6월 태어난 코스닥을 짧게 나마 되돌아본다.

■ 커진 덩치, 빈약해진 체력

개설 당시 341개 기업, 시가총액 7.6조원이던 코스닥이 23년만에 1,344개 기업, 시총 239.1조원으로 시총 기준 31배 성장했다. 하루 거래대금도 23억원에서 4.2조원으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내실도 그럴까? 사실 지금 ‘진짜 코스닥 지수’는 690포인트가 아니라 ‘69포인트’다. 지난 2004년 1월 코스닥 기준 단위를 100에서 1,000으로 조정했기 때문. 이른바 닷컴버블이 붕괴된 뒤 지수가 30~40포인트를 면치 못하자 뒤에 ‘0’하나를 더 붙인 것이다.

이런 ‘착시효과’를 제거하면 지금의 코스닥은 1996년보다 약 31% 후퇴한 상황이다.

■ 웃는 발행시장, 우는 유통시장

1996년 341개로 시작한 코스닥 상장기업은 2007년 10월 처음 1,000개를 넘어섰다. 이후에도 꾸준히 늘어 올해 6월말 1,344개사에 이르렀다. 신규상장도 2016년 82개, 2017년 99개, 2018년 101개 등으로 늘고 있다.

23년간 코스닥 시장을 통해 조달된 자금은 총 59.3조원에 달한다. 2018년 한해에만 3조 2,575억원이 조달됐다. 2017년에는 4조 5,500억원에 달했다. 개설 2년차 1997년 1,491억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분명 ‘사이즈’가 달라졌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혁신기업 성장에 필요한 모험자본 공급이라는 시장 본연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이렇게 ‘발행시장’ 측면만 놓고 보면 코스닥은 훌륭한 시장이다. 이같은 자금조달을 통해 약 38만 여명의 고용을 책임지는 국민 경제의 한 축으로 성장했다고 당국은 자평한다.

‘유통시장’을 놓고 보면 어떨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코스닥 지수에 23년간 투자한 사람이라면 -31% 손실을 보고 있는 셈인데...

2000년 3월 10일 IT버블 정점 당시의 코스닥 지수(2,925.5포인트)와 비교하는 건 의미도 없다. 당장 작년 초 정부의 ‘코스닥 활성화’ 정책 기대감으로 932포인트까지 내달렸던 것만 생각해도 투자자들은 한숨이다.

코스닥에서는 역대 자금조달 59.3조원 중 절반 이상인 33.4조원이 유상증자였다. 유상증자, 기업에게는 자금조달을 위한 훌륭한 수단이지만, 주식시장 투자자들에게는 주가 희석으로 인한 급락이 뒤따른다.

■ 15년째 ‘임상 중’인 특례상장 제도

코스닥 ‘기술특례상장기업’이 탄생한지도 15년째다. 지난 2005년 바이로메드(현 헬릭스미스)가 기술특례 1호로 코스닥에 입성한 이후 바이오니아, 크리스탈지노믹스, 제넥신, 인트론바이오, 아미코젠, 알테오젠, 올릭스, 셀리드 등 모두 73개 기업이 기술특례로 코스닥에 올랐다.

지난해에만 21개사가 기술특례로 상장됐다. 역대 최다 규모다. 한국거래소 상장예비심사를 기술특례로 신청하는 비율도 지난해 21.5%까지 높아졌다. 다섯 곳 중 하나는 기술특례로 상장하겠다는 얘기다.

당장 실적은 없어도 기술성 있는 기업에 자금이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기업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는 훌륭하다. 문제는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높은 리스크를 감내하는 시장인데, 15년째 ‘모’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에이치엘비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임상 결과가 기존의 높은 기대감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코스닥 바이오주가 동반 패닉에 빠지는 일도 생겨난다.

얼마 전 기술특례로 상장한 바이오기업 CEO는 “(1호 특례상장) 15년이나 지났으니 이제는 하나 둘씩 뭔가를 보여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며, “앞으로 몇 년 안에 기술특례 기업들이 성과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 불신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상장 문턱 더 낮게 더 낮게...특례 또 특례

정부는 코스닥 특례상장을 더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특례상장 종류를 기술특례 외에도 성장성 특례, 사업모델 특례, 이익 미실현 특례(테슬라 요건) 등으로 확대한 데 이어, 기존 기술특례 내에서도 문턱을 더 낮추기로 했다.

기술특례 상장 대상에 스케일업 기업을 추가한 것. 즉, 최근 2년간 매출액이 연평균 20% 이상 증가한 기업이라면 특례상장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익, 수익성이 더는 중요한 지표가 아닌 세상이 됐다. 또한 외국기업에게도 기술특례를 허용하기로 했다. 이밖에 ‘4차 산업’ 관련 기업의 경우 질적 심사요건을 기존 매출에서 4차산업 연관성과 독창성 등으로 눈을 돌리기로 했다.

“더 낮출 문턱도 없다”던 IPO 제도·실무 관계자들의 말이 무색해지게 끊임없이 상장제도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이제는 “상장심사는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붙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뉴노멀이 됐다.

특례제도가 제기능을 하는 것인지 의문도 나오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사업모델 특례로 상장하겠다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다. 캐리소프트를 바라보는 시선이 대표적이다. 캐리소프트는 유튜브 방송으로 시작해 영상 콘텐츠 제작, 공연 기획 등으로 확장한 중소기업이다. 최근 사업모델 특례상장 예비심사가 진행 중이어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거래소 내부에서조차 “사업모델 특례상장 해달라고 유튜버들까지 줄줄이 달려올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 “올해도 100개 이상 상장시킬 것”

이쯤되면 전망이 아니라 목표다. 코스닥 신규상장사 숫자는 곧 정부의 모험자본, 기업투자 활성화 성과라는 인식이다.

올해 상반기, 코스닥 신규상장은 19개에 그쳤다. 스팩을 합쳐도 27개. 100개까지는 한참 남았지만 어떻게든 달성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해 상반기에도 코스닥 신규상장은 21개에 그쳤다. 때문에 연간 100개를 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높았다. 그러나 연말로 갈수록 신속한(?) 신규상장이 가속화 되고, 스팩까지 20개 상장되면서 연간 '101개'라는 목표(?)가 달성됐다. 올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해 연말 상장식을 가진 한 CEO는 거래소 관계자에게 “연내에 꼭 상장식을 마쳐야 한다”는 당부 아닌 당부를 들었다고 한다.

이런 목표 의식이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한 IPO업계 관계자는 “박근혜정부 시절에도 한국거래소가 코스닥 신규상장 목표를 낮게 잡았다가 당시 최경환 부총리한테 크게 혼난 적 있다”며, “그 이후로 상장유치 활동을 더 강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코스닥 신규상장은 122개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년도 숫자(69개)를 대폭 뛰어넘는 성과였다. 당시 122개 가운데 실제 기업 상장은 77개, 스팩이 45개였다.

■ “코스닥 활성화 아닌 VC 활성화”

정책을 좀 이해한다는 사람들은 말한다. 지난해부터 문재인정부가 보여온 정책은 사실 코스닥 활성화가 아닌 ‘VC 활성화’라고.

증권시장 제도에 정통한 한 고위인사는 “코스닥 활성화는 결국 지수 아니겠느냐”며, “정부의 정책은 사실 코스닥 활성화가 아니라 모험자본 활성화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자료의 이름은 ‘자본시장 혁신을 위한 코스닥 시장 활성화 방안’이다. ‘목표’가 자본시장 혁신, ‘수단’이 코스닥 활성화다.

추진 배경을 봐도 그렇다. ▲R&D와 제품상용화 단계를 넘어 생산설비 확충과 해외진출 등 성장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자본시장의 역량 강화 필요 ▲코스닥 시장이 혁신기업 성장(Scale-up)에 필요한 모험자본을 공급·중개하는 신뢰받는 시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재설계 등이다.

공모주 투자자에게도 코스닥은 유리한 환경이 아니다. 올해 상반기 상장한 종목 중 6개가 벌써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이 가운데 절반은 공모가 대비 하락률이 30%대다.

한 기관투자자는 “요즘 IPO는 풀밸류(최대 평가)를 받고 오는 것 같다”며, “비상장 시절 투자한 VC들에게만 좋은 일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최근 시장을 보면 “상장 1~2년 전에 투자해서 상장식 첫날 다 정리한다”는 패턴이 그리 낯설지 않은 요즘이다.

문제는 코스닥의 이같은 한계점이 그다지 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코스닥이 자금 공급 시장으로만 여겨진다면, 특례기업들의 성공 사례가 줄줄이 나오지 않는다면, 코스닥은 아주 오랫동안 자양분만 공급하는 시장에 그칠 수밖에 없다.

‘23세 미성년’ 코스닥은 그렇게 모험을 즐기고(?) 있다. 환갑이 된다고 달라질까? 어쩌면 “코스닥은 원래 그런 시장”이라는 혹자의 말에 답이 있는지도 모른다.

머니투데이방송의 기사에 대해 반론·정정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아래의 연락처로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고충처리인 : 콘텐츠총괄부장 ombudsman@mtn.co.kr02)2077-6288

MTN 기자실

경제전문 기자들의 취재파일
전체보기

    Pick 튜브

    기사보다 더 깊은 이야기
    전체보기

    엔터코노미

    more

      많이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