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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투자시장, '국민연금' 패싱]③ 기금운용위 후진적 지배구조가 '발목'

노조·기업·자영업 등 각계 이해관계집단 대리인 체제…전문성 담보 어려워

머니투데이방송 전병윤, 조형근 기자2019/08/14 15:31

지난 5월말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2019년도 제5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열렸다./ 사진= 뉴스1

"운용전략 회의가 아니라 정치 토론회 보는 듯 합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참석했던 한 전문가가 전한 말이다. 기금운용위는 69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을 책임지는 자리이지만 현실은 운용 전문가보다 뚜렷한 정파성과 각 업권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위원들로 구성된 탓에 대립각만 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 과정에서 이런 폐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다. 기금의 수익률 제고보다 '정당한 주주권리' '경영권 침해' '연금 사회주의' 등 소모적 논쟁에 매몰돼 의결권 행사시 전문성 강화를 위한 제도 마련은 뒷전으로 밀렸다.

◇노조·기업·농어업·자영업·시민단체 대표자로 구성…운용전문가 설자리 어디에= 기금운용위는 국민연금 운용을 책임지는 최고의사결정기구다. 매달 한 차례 열리며 논의된 안건과 내용은 국민연금공단 내 기금운용본부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 실제 투자로 이어진다. 기금운용위가 기금운용본부를 지배하는 구조인 것이다.

하지만 기금운용위 구성을 보면 합리적 의사결정이 가능한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현재 기금운용위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기획재정부 차관,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고용노동부 차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 당연직 위원 5인이 구성된다. 여기에 사용자 단체(기업)가 추천한 3명, 노동조합을 대표하는 연합단체 추천 3명, 농어업인 단체 추천 2명, 자영자 관련 단체 추천 2명, 소비자 단체 및 시민단체 추천 2명, 국민연금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인사로 2명 등 위촉위원 14명으로 구성한다.

결국 정부와 가입자인 국민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협회나 단체를 대리해 참석한 위원이 대부분일 뿐 그나마 기금운용 전문가 몫으로 할당된 건 단 2명에 불과한 셈이다.

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효과적인 자산운용과 자산배분 전략을 논의하기 어려운 이유"라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기금운용위가 가입자를 대표하는 위원들로 구성될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DB(확정급여)형 공적연금으로 보면 된다. 기업이 근로자의 퇴직연금을 지급하되 스스로 운용 결과의 책임을 지는 DB형 퇴직연금과 유사한 구조다. DB형은 근로자 스스로 펀드 등을 골라 자신의 퇴직금을 굴리는 DC(확정기여)형 퇴직연금과 비교하면 운용 주체가 기업이란 점에서 다르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DB형 퇴직연금 가입자는 미리 정해진 자신의 퇴직연금을 받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회사가 퇴직금을 어떻게 운용하는지 관여할 이유가 없고 실제로도 그렇다"며 "마찬가지로 국민연금의 지급을 국가가 보장하는데도 가입자를 대표한다는 명목으로 온갖 이해관계 단체가 추천한 비전문가들이 기금운용위원으로 참석해 관여하는 건 효율성 뿐만 아니라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기금운용공사 설립 추진도 검토…대체투자 부진 심각= 정부도 2015년 국민연금기금운용과 관련한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개편안은 기금운용위를 전문가 집단으로 재편하고 실무 집행조직인 현 기금운용본부를 기금운용공사 형태로 분리 독립하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공사 설립에 대해 비판적 시각이 있음에도 대체투자의 부진한 집행을 개선하기 위한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부동산·인프라·사모투자펀드 등에 투자하는 대체투자는 안정적 수익을 거둬 국민연금 수익률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전체 자산에서 비중을 확대할 계획이지만, 건당 투자금액이 수천억원에서 조단위로 커 의사결정이 쉽지 않고 기금운용본부 전주 이전 이후 전문인력 부족 현상으로 계획대비 저조한 집행률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금융자산에서 대체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1.9%로 연말 목표치인 12.7%에 못 미쳤다. 2017년과 2018년에도 각각 10.6%, 11.8%로 목표치(13%, 14.4%)를 2%포인트 이상 밑돌며 저조한 집행실적이 장기화되고 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의 운용체계로는 대체투자 분야에서 충분한 운용 역량을 확보하거나 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공사설립처럼 별도의 전담 운용기관을 설립해 운용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연기금보다 후진적 지배구조= 글로벌 주요 연기금과 비교해도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는 독립성과 전문성에서 뒤쳐졌다.

캐나다와 네덜란드는 제도 관리와 기금 운용을 분리하고 있다. 독립성·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기금을 관리하는 곳과 자금을 굴리는 곳을 나눈 것이다. 캐다나 정부는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를 신설하고 캐나다 공적연금(CPP)의 기금 운용을 분리하고 있으며 고용복지부가 연금 제도를 담당하고 CPPIB는 정부의 개입 없이 공적 자금을 운용한다. 네덜란드 교직원 및 공무원연금(ABP)도 네덜란드 공적연금 운용공사(APG)를 설립하고 기금운용과 관리를 철저하게 분리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인 캘퍼스(calPERS)의 경우 투자사무국과 전문경영인(CEO)이 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을 협의한 뒤, 운영이사회 산하 투자위원회의 관리·감독 하에 최종 투자를 진행한다.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가입자가 운영이사회의 이사 12명(임기 4년·연임 가능)을 선거로 선출하고 투자결정과 운영에 주 정부와 주 의회의 개입을 최소화하도록 연금보호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이사회를 1박 2일씩 연 10차례 열고 있다.

반면 국민연금은 기금운용본부를 국민연금공단 하에 두고 있지만,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보건복지부의 지배를 받고 있다. 또 복지부가 주도하는 실무평가위원회에서 안건을 올려야 기금위에서 논의하는 구조다. 기금 운용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고, 정부 입김에 휘둘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한국투자공사(KIC)의 의사결정 구조를 연기금 지배구조 모델의 우수 사례로 꼽는다. 국부펀드 운용기관인 한국투자공사는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운영위원회에 한국투자공사 사장과 기획재정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민간 전문가 6인을 위원으로 두고 있다. 민간 전문가에는 자산운용사 대표 등 실무 전문가가 참여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국투자공사의 운영위원회 위원장도 민간 전문가가 맡는 등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적 장치가 존재한다"며 "이와 달리 국민연금은 개별 단체에 추천을 받은 위원들이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옳은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선의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정치적 판단이 아닌 경제적 판단에 따라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국민연금 지배구조의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의 지배구조가 개편될 경우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위원회를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처럼 운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집권당과 상관 없이 임기가 보장돼 독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며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위원회도 금통위 정도의 수준으로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여 위상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병윤, 조형근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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