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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현장+] 공매도 금지와 정책적 감수성

선제적이어서 모범적인 방역대책...소극적이어서 비판 받는 금융대책
이대호 기자

"만지작거리다"

기자들이 정책 기사에 종종 쓰는 제목이다. 당국의 고민을 담은 것.

정책이 필요하긴 한데,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고,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하자니 시기도 효과도 불확실하고... 그럴 때 이렇게 쓴다. '만지작거리다'

이번엔 공매도 제한조치 이야기다. 주식시장이 급락할 때마다 나오는 소리인데, 이번엔 좀 다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매도 관련 국민청원이 3,000건을 넘어섰다. / 이미지=청와대 국민청원 캡쳐

■ 손때만 묻힌 카드...폭락해야 쓰는 카드

지난해 8월에도, 이달에도, 금융당국이 공매도 금지 카드를 '만지작거린다'는 기사가 줄이었다.

지난해 8월 금융위원회는 공매도 제한 카드를 만지작거리다 말았다. 이후 그해 10월 코스피는 15% 폭락했다. 물론 이것이 증시 폭락 원인도 결과도 될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공매도 제한 카드는 손 때만 묻힌 채 써보지도 못했다.

이달 10일 금융위는 공매도 대책을 발표했다. 사실, 제한조치라고 하기도 뭐하다.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요건을 완화하고 거래금지 기간을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전면 제한이 아니니 투자자들은 종목별로 따져보고 대응해야 한다.

늦었지만 다행인 걸까, 아니면 그냥 늦은 걸까? 이미 코스피 코스닥은 전고점 대비 12~13% 폭락한 뒤였다.

공매도 한시적 제한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미 코로나19 사태 초반부터 높아졌다. 국가적 비상상황에서 '시장 체력' 역시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부터 정치권,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한시적 공매도 금지'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줄이었다. 금융위는 "상황 따라 대응하겠다"는 원론적 답변뿐이었다.

■ 따지고 따지다 실기...가장 아이러니한 정책

금융당국이 공매도 제한을 두고 고민한 이유는 크게 ▲시장 상황 ▲국제적 선례 ▲효과 및 실익 등으로 알려졌다.

사실 공매도 제한만큼 '아이러니한 정책'도 드물다.

첫째, 시장 상황.

사실, 시장이 폭락하지 않으면 공매도 제한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조건이 성립하지 않는다. "시장에 문제가 없는데 왜 공매도를 제한하느냐"라는 것이다.

거꾸로 보면, 시장이 폭락하고 나서야 뒤늦게 공매도를 제한하는 결과가 된다. 이미 숏포지션을 잡아놨던 세력은 차익실현 시점만 고민하면 된다.

과거에도 그랬다. 폭락해야 공매도를 금지했고, 폭락이 금융위 관료들을 회의실로 불러모았다.

지난 2011년 8월 9일 정부가 황급히 공매도 제한조치를 결정한 당시, 코스피는 단 6거래일만에 17% 폭락한 뒤였다. 당시 정부는 '임시 금융위원회'를 열어 안건을 처리했다.

이번에도 코스피가 300포인트 급락(2월 14일 2,243.59p → 3월 9일 1,954.77p)한 뒤에야 대책을 발표했다. 적어도 공매도 대책은 '선제적일 수 없다'는 현실을 다시금 보여줬다.

둘째, 국제적 선례.

코로나19 사태는 중국에 이어 대한민국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맞았다. 이후 유럽으로, 미국으로 상황 악화가 번졌다. 오히려 다른 나라 상황이 악화되는 사이 한국의 신규 확진자는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선례가 없다'는 말이 국민들에게는 어떻게 들릴까? 지금 한국은 코로나19 사태 대응에 따른 '선례'를 만들고 있는 나라 아닌가?

금융당국의 시장 개입은 한국이 외국인투자자에게 후진적 시장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염려도 크다. 물론 그렇다. 다만 정상적 상황일 경우다. 지금은 아니다. 외국인투자자는 지난 9일 하루 사상 최대인 1.3조원 순매도를 기록했다. 지난달 24일부터 지난 10일까지 7.4조원을 순매도 했다.

지금은 국가적 비상상황을 넘어 전세계적인 위기다. WHO는 팬데믹 위협이 매우 현실화 됐다고 밝혔다. 미국 연준은 정례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열기도 전에 긴급성명을 통해 파격적인 금리 인하를 알렸을 정도다.

셋째, 효과 및 실익.

아이러니하게도 공매도를 금지한 뒤에는 그 효과를 측정할 수 없다. 신규 공매도가 '0'이 되기 때문이다.

공매도를 금지한다고 해서 시장이 오르는 것도 아니다. 공매도 금지로 인해 낙폭이 얼마나 줄었는지도 측정 불가능하다. 시장을 좌우하는 요소는 한 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제한조치 직전 공매도 거래량이 참고될 뿐이다. 최근 3거래일 삼성전자 공매도 비중은 매일 10%를 넘었다. 거래량 열 건 중 한 건은 공매도 거래였다는 뜻이다. 평소 1~5% 수준이던 것보다 크게 증가한 것은 분명하다.

김병욱 의원이 주장한 한시적 공매도 금지안에 동참하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청원 2주만에 참여 인원이 2만 4,000명에 육박했다. / 이미지=청와대 국민청원 캡쳐

■ 선제적이어서 모범적인 방역대책...소극적이어서 비판 받는 금융대책

정부의 '방역 대책'은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으로 국제적 모범사례로 꼽힌다.

대대적인 의심환자 진단과 선별진료소, 격리시설, 드라이빙 스루까지 선진국들이 감탄하고 있다. 그 효과 또한 확진자 증가세 둔화라는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금융 대책은 그 사이 '모니터링'만 거듭했다. 컨틴전시 플랜은 아직도 캐비넷 속에 있다. 아끼고 아껴야 하는 컨틴전시 플랜이라면 그 효과 역시 의문을 살 수밖에 없다. (과거 우리가 확인한 컨틴전시 플랜은 공매도 한시적 금지, 자사주 매입 한도 완화, 연기금 주식 매입 확대, 증시안정펀드 조성 등이었다.)

종합주가지수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전(2,200p) 수준도 밑돌고 있다. 다시 코스피가 250포인트는 더 올라야 되돌아갈 수 있는 수준이다. 공교롭게도 문 대통령 취임 전 코스피 수준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폭락 이전 수준과 동일하다.

코로나19 사태에서 국민의 생명을 '개인 면역력'에만 맡길 수 없듯, 시장의 안정성도 '증시 체력'에만 맡겨서는 안 될 것이다.

사실 기자도 공매도 제한, 금지조치가 얼마나 실효성 있을지는 모르겠다. 평상시라면 공매도 '순기능'에 대해서도 공감한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은 관료들에게 '정책적 감수성'을 강조했다. 비를 맞으며 마스크 판매처를 찾아다니고, 감염 우려 속에서도 긴 줄을 서있어야 하는 국민들의 심정을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

올해 들어 코스피 코스닥 시가총액 '176조원'이 날아갔다. 누군가의 쌈짓돈부터 누군가의 노후자금까지... 원칙적이고 냉정해야 하는 금융당국에게 정책적 감수성은 남 이야기일 수 있다. 다만, 대한민국 금융당국, 금융관료들에게 공감능력, 정책적 감수성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대호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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