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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과뒤]'1조8000억원' 용처 둔 오웬 마호니 넥슨 CEO의 '힌트', 과연 디즈니였을까

서정근 기자

오웬 마호니 넥슨 일본법인 CEO가 최근 넥슨이 확보한 현금 1조8000억원의 투자 용처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상장사에 쓰일 것이라고 지난 2일 도코거래소 공시를 통해 예고했습니다.

넥슨코리아가 알짜 자회사 네오플로부터 수차례 자금을 차입, 현금 1조8000억원을 확보한 시점이 지난 4월 말이었습니다. 넥슨코리아가 공시한 차입 목적은 '운영 자금 및 투자' 였습니다.

운영 자금이 부족한 회사가 아닌 만큼, 해당 재원 중 상당 부분이 주주 배당이나 부동산 매입에 쓰일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습니다. 김정주 회장의 과거 투자 스타일을 감안하면 넥슨의 게임산업 지배력을 공고히 할 '빅딜'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김정주 넥슨 창업자


넥슨은 지난 2일 공시를 통해 그 용처를 보다 구체화 했습니다. 요약하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상장사에 투자해, 그 회사가 가진 콘텐츠 IP(지식재산권)를 넥슨의 자산으로 삼겠다. 우리는 투자 후 경영권에 관심을 두지 않고 비지배주주가 되어, 발전적인 관계를 유지하겠다" 입니다.

주주 배당이나 부동산 매입에 돈을 쓰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으나 1조8000억원의 주된 용처는 엔터·콘텐츠 업종 기업 지분 취득과 유망 콘텐츠 IP 확보라는 것입니다.

'리니지M', '리니지2M'이 메가히트 행진을 이어가고 순수 신규 창작게임이 좀체 성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장현실을 감안하면 유망 IP 확보는 (개발력이 받침이 된다는 전제하에) 그 회사의 경쟁력과 직결됩니다. 조단위 현금을 금고에 쌓아둬봐야 큰 실익이 없는 것을 감안하면 적절한 판단이라는 평가입니다.

오웬 마호니가 제공한 힌트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상장사' 라는 키워드를 담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디즈니에 이목이 집중됩니다. 디즈니 오리지널 콘텐츠 외에도 스타워즈, 마블 유니버스, 21세기 폭스 등이 '디즈니 군단'에 편입돼 있습니다. 유사한 맥락에서 넷플릭스도 물망에 오릅니다.

그러나 디즈니와 넷플릭스의 기업가치를 감안하면 넥슨의 투자재원이 이들과의 연대를 이끌어 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디즈니의 시가총액은 2144억 달러(262조원),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은 1879억달러(229조원)에 달합니다. 넥슨이 투자재원을 두 회사 중 한곳에 올인해도 지분 1%도 못 가지는 것이죠.

굳이 조 단위 투자를 하지 않아도 디즈니 군단이 보유한 IP를 활용해 게임을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가령 '스타워즈' IP를 활용해 게임을 만드려면 흥행실적과 무관하게 책정하는 '미니멈 개런티(최소 지급 보장액)'로 100억원 가량을 디즈니에 선지급하고, 게임이 출시된 후 매월 총 수익금 중 20% 이상을 제공하면 됩니다.

디즈니의 콧대가 높다곤 하나, 이 기준을 충족시키면 디즈니가 보유한 어떠한 IP도 '감사합니다!'하며 내어줍니다. 디즈니는 자신들이 보유한 인기 콘텐츠를 활용해 직접 게임을 만들지 않습니다. 가장 활발하게 콘텐츠 라이센스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이기도 합니다.

1조8000억원을 들여 디즈니 지분 0.7%를 취득해도 '파트너십'을 형성할 순 없습니다. 설령 파트너십을 형성할 수 있는 규모로 지분을 취득해도 IP를 따내기 위해선 시장 공정가격이나 수익배분율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수준의 댓가를 제공해야 합니다. 상장사인 디즈니가 파트너라고 '특별우대'로 IP를 무상으로(혹은 파격적인 염가로) 내어줄 순 없는 구조입니다. 그렇게 하면 배임이 되니까요.

상대가 디즈니가 아닌 넷플릭스여도 이러한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넷플릭스는 한층 더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처럼 세계관과 서사구조, 진영 간의 대립이 잘 짜여진 콘텐츠는 RPG 장르로 만들기 쉽습니다. 마블 유니버스 처럼 캐릭터 하나 하나가 특화된 콘텐츠도 게임으로 만들기 좋습니다. 그러나 드라마를 소재로 게임을 만들어 흥행시키는 것은 '아주'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선 "IP 확보를 위해 대규모 재원을 쓴다는 것은 그 돈을 쓰지 않으면 IP를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에나 할법한 일"이라고 평가합니다.

예를 들면 넥슨과의 경영권 분쟁에 직면했던 엔씨가 넷마블을 백기사로 맞아들인 후 양사가 상호 지분 투자를 단행하고 엔씨가 '리니지2', '블레이드앤소울'의 IP를 넷마블에게 내어준 것 처럼 말입니다. 엔씨가 넥슨과의 경영권 분쟁에 직면하지 않았으면 IP를 넷마블에 내어줬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넥슨의 투자금 규모, 피투자 대상으로 거론되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거물들의 몸집, IP 비즈니스의 속성을 고려하면 투자 용처가 북미 기반의 유력 기업은 아닐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디즈니·넷플릭스를 제외한 북미 게임사업자들을 대상으로 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EA의 시가총액은 353억달러(43조원)에 달하고 액티비전 블리자의 시가총액은 562억달러(68조원)에 이릅니다. 북미 게임 3,4위 권인 테이크투인터렉티브(153억달러, 18조원)와 유비소프트(83억달러, 10조원)도 1조8000억원이 빛을 발하기엔 덩치가 너무 큽니다.

이 때문에, 넥슨의 투자 대상처가 일본의 전통 게임 명가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코로나19 쇼크 이후 넥슨의 기업가치가 급등, 23조원에 달한 반면 반다이남코(15조원), 스퀘어에닉스(7조3000억원), 캡콤(6조원), 코나미(6조원), 코에이 테크모(4조6500억원), 세가(4조2000억원) 등 일본 유력 게임사들의 주가는 저평가되어 있습니다.

이들 기업은 일본이 미국과 함께 세계 게임시장의 양대축으로 자리잡았던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전성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일본 게임사들의 지배력이 예전같지 않고, 이들 기업 오너일가의 승계자(혹은 승계 예정자)들은 게임산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신사업에 열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본 게임사들은 디즈니 등 엔터테인먼트 기업들과 달리 IP를 쉽게 개방하지 않았습니다. IP 제휴를 맺는다 해도 "원작의 콘텐츠와 가치가 훼손돼선 안된다"며 협업 과정에서 혹독하게 검수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넥슨도 스퀘어에닉스, 코에이 등과 제휴해 '파이널 판타지', '진 삼국무쌍' 등 일본 게임 IP를 확보한 전례가 있습니다. 넥슨과 이들의 제휴가 체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질때마다 일본 증시에서 호재로 반영되어 넥슨 주가가 올랐습니다. 그러나 개발 과정에서 적지 않은 난항이 있었는데, IP를 소유한 원작자들의 '텃세'도 난항의 원인 중 하나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조원에 육박하는 재원이라면 일본 전통 게임사들의 최대주주인 창업자 그룹 다음 가는 규모로 지분을 취득, 확고한 파트너십을 다지는 것이 가능합니다. 본사 지분을 취득할 수도 있고, 가업으로 게임을 이어가고 싶지 않은 승계자와 협의해 게임 부문을 별도로 분할하고 분할한 법인에 넥슨이 투자해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파트너십이 없었다면 쉽게 취득하기 어려울 유망 IP들을 원없이 쓸어담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수익금 분배 등 댓가는 추가로 제공해야 합니다.)

가령 넥슨이 코나미와 제휴해 이 회사와 협업하게 될 경우 '위닝일레븐'을 활용한 축구게임 개발과 서비스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EA와 네오위즈가 그랬던 것 처럼 EA와 넥슨의 관계가 언젠가 소원해져 '피파온라인' 시리즈가 EA의 자체 서비스로 전환되거나 카카오게임즈나 스마일게이트로 넘어갈 경우 코나미와의 제휴는 훌륭한 보험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해 매각을 추진하기 직전 넥슨 일본법인의 시가총액은 한 때 12조원 규모로 하락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김정주 회장의 자산 가치가 6조원을 밑돌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 넥슨의 시가총액은 무려 23조원에 달합니다.

매 분기 창출하는 영업이익 규모도 막대해, 크래프톤을 제외하면 근접하게 경쟁할 만한 적수도 국내에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김 회장의 지분 가치가 10조원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주식 부호 첫 손에 들게 됐습니다.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의 출시도 앞두고 있어, 넥슨의 기업 가치와 김 회장 자산평가액은 더욱 올라갈 가능성이 큽니다. 이쯤되면 "지난해 회사 안 팔기 잘했다"라는 판단이 나올 법 합니다. 김 회장의 투자 용처가 어디로 확정될지, 투자 결과가 김 회장의 자산을 얼마나 더 불릴 수 있을지 이목을 모읍니다.

서정근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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