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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현장+] 홍콩 대체할 금융허브 선택지 속 한국은 없다

'아시아 금융허브' 정책 17년째...외국계 엑소더스 속 국내 금융사 해외진출 방점
김이슬 기자

<서울 여의도 금융가. 사진=뉴시스>

외국계 금융사가 수년 전부터 한국 시장에서 짐을 싸 떠나고 있다. 골드만삭스운용은 2012년 일찌감치 철수했고, 바클레이스, JP모간자산운용, 맥쿼리도 사업을 접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곳들은 사업과 인력을 축소하기 바쁘다. 지난해 도이치증권은 주식 사업부문에서 손을 뗐다. 떠난 빈자리도 채워지지 않았다. 외국계 금융사 중 아태지역 본부를 서울에 둔 곳을 찾기 힘든 게 현실이다.

떠난 이유야 천차만별이고, 각자의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금융허브 정책이 사장되다시피한 상황에서 뒷맛이 씁쓸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2009년 서울 여의도와 부산 문현동을 금융중심지로 정해 육성하겠다고 선언한지 10년이 지났다. 그보다 더 앞서 금융중심지의 시초가 2003년 참여정부에서 국가 전략으로 내세운 '동북아 금융허브'인 점을 감안하면 장장 17년을 묵힌 '사골 정책'인 셈이다.

당시 정책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한 시기가 2020년 올해다. 평가는 냉정하다. 영국 컨설팅그룹이 매년 공개하는 금융도시 순위에서 올해 서울은 33위였다. 2015년 10위권 안에 든 이후 줄곧 후퇴해 한국에 '금융허브'란 수식어를 붙이기에 민망한 수준까지 왔다.

미국이 홍콩 특별지위 박탈을 공식화하면서 뉴욕, 런던에 이어 세계 3대 금융허브인 홍콩 위상이 크게 흔들리자 대체지를 둘러싼 물밑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 100대 은행 중 70여곳이 아시아 거점으로 활용 중인 홍콩의 입지가 한순간 축소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벌써 홍콩에 진출한 미국 기업의 30%가 홍콩 이외 지역으로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난세를 틈타 싱가포르와 도쿄 등이 홍콩을 대체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점점 로컬 영업에 집중하는 도쿄보다 법률과 세제, 영어 사용 등에서 강점을 두루 갖춘 싱가포르가 유력 대체지로 급부상 중이다.

이 가운데 한국은 홍콩을 대신할 금융허브 선택지에도 없다. 아시아 금융허브의 꿈이 멀어진 여러가지 원인들이 있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금융허브와 경쟁하려면 집적된 금융 인프라가 필수인데 국내 금융기관들은 지역 균형개발을 위해 부산과 전북 등으로 여기저기 분산됐다.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포함한 공공기관의 추가 지방이전도 여전히 검토 대상이다. 외국계 금융사들은 언제 어떻게 바뀔 지 모를 불확실한 규제를 최대 어려움으로 꼽기도 한다. 금융당국이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하지만 그림자 규제는 여전하다는 볼멘소리는 심심치 않게 나온다.

지난달 정부가 3년마다 금융중심지 정책을 점검해 전략을 보완하는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계획안을 보면 앞으로도 한국이 금융허브로 도약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 보인다. 더욱이 이번 금융중심지 정책은 '대전환'이라 할만한 수정 사항이 있었다. 눈에 띈 것은 정책 성과 측정을 위해 삼은 지표였다. 기존 성과 지표에는 외국계 금융사의 국내 진입 실적만을 사용했는데, 올해부터는 국내 금융사의 '해외진출 실적'을 더하기로 했다. 국내 금융사들의 낮은 국제경쟁력 개선 등을 이유로 들었지만, 정책의 방향성을 기존 외국계 유치에서 해외진출 지원으로 틀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남방이라 불리는 동남아 금융시장에서 한국 금융사들은 '바글바글'할 만큼 해외진출 수요가 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 해외점포 195곳 중 70%가 베트남, 미얀마 등 아시아권역에 몰려있다. 특히 지난해 국내 금융사의 신규 해외점포 27건 중 절반 수준인 13곳이 싱가포르, 베트남 등 아세안 국가에 신설됐다. 금융중심지 정책 성과 지표를 수정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추세적으로 보면 외국계 금융사가 이탈해 저조한 성과를 국내 금융사의 해외진출 실적으로 보완할 만하다. 17년을 달려온 '아시아 금융허브' 도전은 사실상 멈춘 것처럼 보이는데 대외용 성과만 챙기겠다는 것인지, 금융중심지 정책의 정체성이 불분명하다.




김이슬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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