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N현장+]'어거금' 한국거래소 이사장...누가 돼도, 누가 되든
이대호 기자
가
기자로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출입처 수장 인사에 흥미를 잃었다. 한국거래소 정도면 이사장에 누가 유력한지, 하마평이 어떠한지 취재력 좀 발휘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게을러진 것이 가장 큰 이유요. 다른 일로 바빠진 것도 또 하나의 핑계다. 핑계를 좀 더 대자면, 굳이 열심히 취재할 필요(?)가 없어진 것도 구차한 변명이 되겠다.
■ '어차피 거래소 이사장은 금융위'...3회 연속 '어거금?'
'어거금'이란 말이 나온다. '어차피 거래소 이사장은 금융위에서 온다'는 뜻이다. 제7대 한국거래소 이사장 후보로 손병두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유력하다고 한다. 예상(혹은 예정)대로 일(?)이 진행되면 3회 연속 한국거래소 이사장 자리를 금융위 출신이 꿰차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거래소 이사장은 금융위 차지가 됐다."는 말이 공공연해졌다.
역대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하나같이 관료출신 아니면 정치권 캠프 출신이었다.
1대 이영탁 전 이사장은 행정고시 7회로 경제기획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출신이었고, 2대 이정환 전 이사장은 행시 17회로 재정경제부, 국무조정실 출신이었다.
3대 김봉수 전 이사장은 키움증권 설립자로, 처음 '공모 절차'를 통해 선임된 민간 출신이었지만, MB 인사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때는 정권 차원에서 전임 이사장을 몰아내고 캠프 인사를 꽂은 것으로 특히 시끌벅적했다. 4대 최경수 전 이사장은 행시 14회로 재경부 출신이었다.
5대 정찬우 전 이사장은 민간 영역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출신으로 정부 부처인 금융위 부위원장(차관급)까지 오른 인물인데, 박근혜 정부 금융실세로 통했다. 결국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자 11개월만에 하차하는 최단명 이사장이 됐다.
6대 정지원 전 이사장은 행시 27회로, 금융위 출신이다. 그 역시 선임 당시 BH 조력설이 돌기도 했다. 부산 출신이어서 본사가 부산인 거래소 이사장으로 힘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7대 이사장에 손병두 전 금융위 부위원장이 온다면 '행시(33회), 부산'이라는 공통점이 생긴다. 그의 부친이 지난 1980~1981년 부산시장(손재식 전 통일부장관)을 지낸 것이 스펙으로 거론되는 게 현실이다.
■ 주주들도 상관 안하는...'그들만의 리그'
사실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누가 되든 '그들만의 리그'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항간에는 "다른 기관보다 연봉이 낮아서 '후순위 지망'"이라는 진실에 가까운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동학개미가 아무리 많아져도, 하루 거래대금이 30조원을 훌쩍 넘어서도, 개미들이 불과 8개월만에 코스피를 1,400선에서 2600선까지 끌어올려도, 사실 한국거래소의 영향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개인투자자 중에는 아직도 한국거래소가 공공기관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상장폐지 기로에 놓인 기업의 주주들이 한국거래소 앞에 몰려와서 "공공기관인 거래소가 책임져라"고 하는 경우가 지금도 많다.
강조하자면 한국거래소는 '민간기관'이다. 증권사, 선물사 등 35개 기관(거래소 자사주, 우리사주 포함)이 나눠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 굳이 '정부 느낌 나는' 지분을 따지자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보유한 3.03% 정도다.
자칫하면 헷갈리는 일인데, 거래소 이사장은 '주주총회'를 통해 선임된다. 적어도 명시적으로는 그렇다. 다른 민간기업과 마찬가지로 이사회를 거치고, 주주총회를 통해 CEO를 뽑는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그런데 십수년째(2005년 통합 설립 이래로) 이사장 선임 시즌만 되면 어김없이 '깜깜이' 논란이 나온다. 이사장 후보 추천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롱리스트는 누가 들어왔는지, 숏리스트에는 누가 이름을 올렸는지, 언제 최종후보가 확정되는지 등등 투명한 게 없다.
기자들에게는 취재력을 인정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지만, 자본시장에는 씁쓸한 일이다. 절차상 이사장후보추천위원회 등을 갖추고는 있지만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대부분 작업이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걸. 거래소 상임이사들은 물론, 민간출신인 비상임이사조차도 '위에서 누굴 찍어주는지' 기다리는 게 관행이 돼버린지 오래다. 비단, 한국거래소만의 일은 아니지만.
한국거래소는 민간 영역이다. 다만 법적으로 '정부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거나 대행하는 기관 ·단체'에 해당된다. 또한, 법적으로는 독점업무가 아니지만, 실질적인 경쟁사(대체거래소)가 없다보니 사실상 독점기관이다. 그런 명분(?)으로 거래소 인사를 정부가 좌지우지 한다고 한다. 거래소 상임이사의 경우 청와대 민정수석실 인사검증까지 거친다.
이쯤되면 왜 '어거금'이란 말이 나오는지 이해가 간다. 관료들이 '능력 있는 후배, 유능하지만 퇴직하게 된 후배'를 어떻게 밀어주고 당겨주는지 무수히도 지켜봐왔다. 어찌보면 기자 스스로도 타성에 젖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참 그런 '의도된 깜깜이'가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선임 과정뿐만이 아닌, '그 결과'다. '기업과 주주들의 부름을 받고, 능력만으로 선출된 CEO'가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인맥으로 선출된 CEO'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보은이다.
그것이 후속 인사로 나타날 수도, 정책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자본시장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되면 주기적으로 기자간담회를 한다. 경영비전 등 중점사업계획을 밝히는 자리다. 대부분 정부의 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제7대 신임 한국거래소 이사장의 경영비전, 중점사업계획이 벌써부터 예상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정책을 좀 더 길게, 연장선을 그어보면 분명 그 위에 있을 것이다. 그린뉴딜, BBIG, 벤처투자 활성화...
인사로 인한 보은행위가 오로지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분명 8대, 9대, 10대 이사장 선임 때도 그럴 테니까.
인사로 인한 보은행위가 오로지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분명 8대, 9대, 10대 이사장 선임 때도 그럴 테니까.
이대호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