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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과뒤]기로에 선 넥슨의 '완전고용'...흥행산업의 '정규직 딜레마'

서정근 기자

인터넷·게임 업종을 취재하며 느꼈던 의아함 중 하나가 "왜 게임업계는 정규직으로 입사한 개발자들의 고용안정이 보호받지 못하나" 였습니다.

개발중인 신작이 무탈하게 왼성되지 못할 수 있고 출시 후 성과가 좋지 못하면 서비스를 종료할 수도 있는데, 회사에 남아 신작을 만들거나 사내 다른 게임 개발팀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나가는 것을 딱히 '억울하게' 생각지 않는 풍토가 놀라웠습니다.

권고사직 형태로 회사를 떠나는 이들에게 회사가 내놓는 보상이래봐야 3개월치 월급 얹어주는 정도인데, 이 정도 보상으로 직장을 떠난다면 계약직과 뭐가 다를게 있나 싶었습니다.

게임업종이 지닌 흥행산업의 성격을 이해하면서 관련한 제 문제의식도 다소 무뎌져 갔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져 손익분기를 넘는 흥행을 달성할 확률은 점점 낮아지고, 성공하지 못한 프로젝트에 몸담았던 이들을 다 안고 가면서 법인 존속이 가능한 재무 안정성을 유지하기기 어렵다는 데 일부 공감도 갔습니다. 무리하다 법인 자체가 망해 없어져 모두가 실직하는 것 보단 낫습니다.

아주 예전엔 지상파 방송사들이 드라마 제작 인력을 내부에 세팅하고 매년 공채형태로 입사한 전속 배우들을 출연시켜 드라마를 만들어 자사 채널을 통해 방영했습니다. 공채탤런트 개념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드라마 수급도 외주제작으로 대체됐습니다. 시장 환경 변화 때문이지요.

KBS가 배출한 흥행드라마 '추노'는 KBS와 초록뱀이 합작해 설립한 '유한회사 추노'가 제작했습니다. KBS와 초록뱀이야 영속성을 목표로 운영되지만 '유한회사 추노'는 드라마 한 편 찍어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프로젝트 팀입니다.

흥행산업이라는 속성상 게임 제작과 배급도 이런 모델로 바뀔수 있겠다고 생각해본적이 있습니다. 엔씨의 투자를 받은 '리니지 유한회사'가 '리니지' IP(지식재산권)로 스핀오프 타이틀을 만드는 방식 말입니다.

한국에서 흥행하는 게임이 단편 패키지 형식이 아닌, (망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스토리와 콘텐츠의 영속성을 전제로 하는만큼 이러한 모델이 자리잡는 것은 간단치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넥슨과 엔씨, 넷마블, 크래프톤, 컴투스, 펄어비스 등 빅 컴퍼니의 사업모델은 여전히 자체 개발을 통한 수급과 독자 유통망을 통한 오리지널 콘텐츠 공급입니다. 영상미디어 사업과 비교하면, 배급보다 자체 개발을 통한 오리지널 콘텐츠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넷플릭스보단 CJ ENM의 사업모델에 가깝습니다.

네이버나 카카오, SK텔레콤, KT 등 서비스 영속성을 전제로 하는 다른 빅테크 기업과 노무 구조가 다를 수 밖에 없고, 이같은 구조라면 결국 대규모 채용과 프로젝트 성패에 따른 고용불안정이 지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업종 규모가 커지지 않고 벤처 단위 성공 가능성이 갈수록 희박해지는 현실 때문입니다.

넥슨 노동조합 집행부는 최근 사측에 "대기발령 개발자들이 교육이수 후 원대 복귀하면 고용안정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며 릴레이 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넥슨은 2019년 2분기부터 라이브 게임과 신규 개발 게임의 전면 재점검을 통해 다수의 프로젝트를 종료했습니다. 다른 회사였으면 생존 프로젝트 팀에서 탐낼 만한 인재를 추려서 전환배치시키고,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은 퇴직금+3개월치 급여 받고 권고사직을 선택해야 했을것입니다.

프로젝트 종료로 일감을 잃은 이들은 전환배치 대기소 개념인 'R팀'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일은 하지 않지만 기본급을 그대로 받습니다. 넥슨 노조 집계에 따르면 R팀에 아직 남은 이들은 30여명 가량, 이중 R팀 배속 기간이 1년 이상인 이들은 15명입니다.

2019년 3분기 이후 넥슨에선 권고사직 압박이 없는 '완전고용'이 이어져 왔습니다. R팀 소속 개발자들이 내부 재배치를 받을 수 있도록 면접기회가 충분히 주어졌고, 이 기간 중 넥슨 신규 개발본부의 외부 채용은 동결됐습니다.

넥슨의 이같은 노무정책은 크래프톤이나 펄어비스 등 고용안정망 체계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대형 게임사들도 관련 체계를 종업원 이익에 보다 무게를 싣는 방향으로 수정하는 동인이 됐습니다.

그러나 넥슨 내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신규 개발본부가 외부채용 동결을 해제했고 R팀 장기근속자 15인은 6월부터 3개월간 외부 교육 이수를 권장받고 해당 기간 중 기본급 중 25%가 삭감됩니다. 교육비 지원과 3개월 한정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기본소득이 일시적으로 감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상자들이 원치 않았을 일인 것 또한 분명하구요.

R팀 운영과 기회보장을 두고 일부 개발자들이 제기하는 형평성 논란도 있습니다. 이정헌 대표와 허민 고문이 리드해 2019년 3분기에 진행한 집중심사에서 적지 않은 게임 개발이 중단됐고, 해당 개발자들은 일제히 R팀에 배치됐습니다.

김대훤 넥슨 개발 총괄 부사장


김대훤(DH) 부사장이 신규 개발 총괄 본부장으로 취임하면서 앞서 R팀에 배속됐던 개발자들 일부는 김 부사장이 관할하는 일종의 인큐베이션 조직에서 파일럿 프로젝트 형태의 게임 개발 기회를 얻었습니다.

편의상 기존 R팀은 리저브(Reserve)팀으로, 김 부사장이 관할하는 파일럿 개발 조직은 리부트(Reboot)팀으로 표기하겠습니다. 리부트 팀은 과거 넥슨이 운영했던 인큐베이션실에 가까운 개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 부사장이 심사 전권을 쥔 후 개발 중단이 결정된 팀 소속 개발자들은 대부분 리저브팀으로 직행하지 않고 리부트팀에서 파일럿 프로젝트 개발 기회를 얻거나 인력 수요가 많은 라이브 팀, 혹은 이미 허들을 넘은 신작 개발팀에서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정헌 대표와 김대훤 부사장이 애쓴 덕에 1년 이상 리저브팀에서 머무는 사람의 수가 10여명에 그칠만큼 줄었던 것입니다. 리부트팀이 만든 게임 중 일부는 1차허들을 넘어 최근 넥슨이 공개한 신작 개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업계에서 보기 힘들었던 선정(善政)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리저브 팀에서 '승강전'의 기회를 얻어 현업 개발 기회를 얻은 이들 중 이른바 'DH 직계', 혹은 '레드라인'으로 불리는 이들의 비중이 높았고 이는 '기회 균등'의 관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배수찬 넥슨 노조 지회장은 이와 관련해 "이른바 라인을 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거취가 엇갈리는 이슈가 있는 것은 알고 있다"며 "어느 조직에서나 인사·노무 관련 이 정도의 잡음도 나지 않는 곳은 찾아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를 문제삼고 싶진 않다"고 밝혔습니다.

사측이 최대한 많은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인정하고, 고용안정성을 담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입니다.

노조가 내놓은 요구안은 ▲ 3개월 대기발령 후 복귀하면 기본급 전액 정상 지급 ▲ 사내 면접 기회 제공 ▲ 사내 면접 통해 일감을 찾지 못하는 개발자들은 대표이사 직권으로 각 부서 할당 배치 등 입니다.

회사측은 3개 요구안 중 ▲기본급 정상화 ▲ 사내 면접 기회 제공은 확약했으나 그 이후의 일은 확정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1년이 넘도록 사내 면접을 통과하지 못했던 이들이 3개월 교육 받고 와서 일감을 맡는데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넥슨이 3개월 간 급여 25% 삭감을 선택한 것도 결국 이들의 퇴사를 유도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사내 면접에서 합격하지 못한 것은 결국 이들을 찾는 팀이 없었다는 것으로, 개인 경쟁력의 문제로 볼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본인이 평소 몸담았던 직무와 스타일과 맞는 자리를 다른 팀에서 찾고, 해당 팀 조직장의 마음을 돌려 허들을 넘는 것도 마냥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넥슨 사측에게 무작정 품으라고 재촉하기도, 기회를 얻지 못한 개발자들을 "당신들이 부족했어" 라며 내몰기도 어렵습니다. 입사하며 '허들'을 넘어 정규직이 된 이들이 다시 한번 면접을 통과해야 정규직의 지위를 보장받는 것은 분명 이상적인 모습은 아닙니다.

일단 고용을 유지해주기 위해 코딩하던 개발자를 QA조직에 보낸다? 개인 감수성의 문제이지만 경우에 따라 일반 기업에서 사무를 보던 이의 책상이 복도로 옮겨진 것 만큼이나 힘들어 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SD풍의 귀염귀염한 화풍을 그리는데 익숙하던 그래픽 직군이 '김형태 류'의 굴곡진 바디라인을 묘사해야 하는 프로젝트 팀에 배속되어 적응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배수찬 지회장은 "우리 조직에 3000여명의 인력이 있고 이중 개발 유관 조직이 2000명 가량 되는데 15명은 퍼센테이지로 따지면 2%도 되지 않는 인력"이라며 "이들이 현업에 배치되어 트러블이 생길 확률이 없다고 장담은 못하나, 이정도 숫자와 비율이면 그 어떤 경로로 사람을 뽑아도 생길 수 있는 트러블의 확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모델러면 같은 모델러 직군, 그래픽 직군이면 같은 그래픽 직군으로 옮겨서 일할 수 있게만 보장해준다면 이후에 생기는 개인 적응의 문제까진 회사가 책임지라고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배 지회장은 "특정 개발팀의 신작이 실패하면 그 팀 멤버들이 일정 기간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이후 그 팀이 다시 결집하거나 팀을 쪼개 재기전의 기회를 갖는 슈퍼셀식 모델의 도입이 장기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개발에 실패한 팀과 리더를 '실패자'로 단정하는 경향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차례 실패 끝에 성공사례를 쓰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배틀그라운드'의 신화를 낳은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도 그러했고, '리니지2 레볼루션'과 '제2의 나라'를 만든 박범진 사단도 넷마블에 합류해 '천하맹장' 방준혁 의장을 만나기 전엔 성공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김대훤 부사장도, 넥슨의 유망 신작 'NGR' 개발을 총괄하는 이익제 프로듀서도 '서든어택2'의 실패를 딛고 재기에 성공해 넥슨 개발의 메인스트림에 올라 있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슈퍼셀식 모델을 대기업집단 반열에 오른 빅컴퍼니에 적용하는 것 또한 간단치 않은 일임은 분명합니다.

게임업종 내 개발자들의 이직이 활발했던 것은 업종 자체가 성장기를 달릴 때 였고, '하이리스크 하이 리턴'을 선호하는 풍조가 지배적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세태가 바뀌어 고용안정이 중시되고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을 중시하고 기본급 상향을 선호하는 풍조가 뚜렷합니다.

일각에선 이러한 풍조를 두고 "개별 성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작가를 출판사가 정년 보장하는 정직원으로 고용하고 평생을 책임지라고 하는 격"이라며 "게임업계 노조는 곧 삼성전자 처럼 PS(Profit share)지급 요구도 들고 나올 것"이라고 쓴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론 대기발령 대상자들이 '각성'하고 넥슨의 각 조직들도 마음을 열고 '완전고용' 실험을 이어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라나 현실을 감안하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재촉하기 쉽지 않습니다.

정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딜레마에 선 넥슨이 이번에 선택하는 '표준 프로토콜'이 전체 업종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이 가는 사안입니다.









서정근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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