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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경제]러시아 스위프트 퇴출, 지구가 반으로 나뉜다

러시아 스위프트 퇴출 대비해 국제결제망 운영
민주주의 vs 권위주의 진영 나누는 복잡한 셈법
권순우 기자

[브뤼셀(벨기에)=AP/뉴시스]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지난 25일 벨기에에서 우크라이나 위기 논의를 위한 EU 특별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 협회, 스위프트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했다. 스위프트에서 배제되면 러시아 은행은 전 세계적인 결제망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러시아가 금융 핵폭탄을 맞게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일각에서는 전 세계를 하나로 엮었던 금융의 분리가 가시화되고 있다고 전망한다.

스위프트는 1973년 벨기에에 설치돼 200개국 1만 1천여개 기업이 사용하는 달러 경제망이다. 달러가 전 세계의 기축통화로 기능하게 하는 중요한 인프라중 하나다. 달러 거래를 할 수 없게 되면 국제 교역이 불가능하다.

러시아의 스위프트 배제는 다른 제재에 비해 늦게 합의됐다. 유럽연합의 2차 제재 패키지에는 러시아 금융, 에너지, 운송, 수출 금융 등에 대한 제재가 들어갔지만 우크라이나가 강력하게 요청한 스위프트 접근 차단은 독일 등 일부 회원국의 반대로 제외됐다.

스위프트 제외가 러시아를 지나치게 위협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 아니라. 러시아를 제외함으로써 EU 국가들이 피해를 볼 것을 우려 했기 때문이다.

유럽은 어떻게든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수입해야 한다. 러시아가 스위프트에서 제외될 경우 에너지 수입대금을 결제할 수 없다. 에너지 수입대금을 결제하지 못하면 에너지를 사올 수 없다.

러시아에 돈을 줘야 하는 경우뿐 아니라 러시아로부터 돈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투자회사 오트키티예는 “러시아를 스위프트에서 분리하며 러시아 외국 채무 개인이나 정부에는 '불가항력 조항'이 적용돼 채무 변제 기한이 무한대로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며 "결과적으로 국제 채권자들에게 큰 손실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에 투자한 돈을 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은 대부분 국가가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에 금융제재를 가할 때는 거래 상대방이 입을 피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푸틴 대통령조차도 지난 24일 국제경제시스템을 훼손할 뜻이 없다며 대유럽 에너지 수출 유지 의지를 표명했다.

스위프트 제외는 러시아는 물론 러시아와 거래하는 모든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조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프트 제외는 단행됐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서방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스위프트 제외 조치를 쉽게 결정내리지 못한 또다른 이유가 있다. 국제결제망의 분리를 가속화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스위프트는 국가간 자금 거래 지원을 위한 비영리 조직이다. 모두가 평화롭게 사용해야 할 공공재다. 이를 제재 수단으로 사용할 경우 망의 신뢰성을 훼손할 수 있다.

현재까지 스위프트 제외가 무기화된 사례는 두 번 있었다. 2012년 유럽연합은 핵프로그램 문제로 이란을 제외했다. 그 결과 이란의 주요 수입원인 원유 수출입이 반토막이 났다. 2017년 UN제재 대상이 된 북한에 대하 스위프트망 접속을 차단했다. 북한 핵, 미사일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이란, 북한을 스위프트 망에서 제외한 것과 러시아는 무게가 다르다. 러시아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원유와 천연가스를 수출하고 있다. 그만큼 스위프트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그러다보니 러시아의 스위프트 제외가 국제결제망 분리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러시아 역시 스위프트 망에서 퇴출 될 경우 경제적으로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때도 국제 사회는 러시아를 스위프트망에서 퇴출하는 안을 논의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를 대비해 자체적인 국제결제시스템, SPFS(System for Transfer of Financial Messages)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러시아 당국은 외국계를 포함해 러시아의 모든 금융기관이 의무적으로 연결하도록 했고 400개 가량의 금융기관이 연결돼 있다. 외국계라고 하더라도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독일 등 친러 성향의 국가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12개 금융기관은 연결이 돼 있다. 코트라에 따르면 SPFS 거래 건수는 월 200만건으로 러시아 국내 결제 건수의 약 20%에 해당한다.

플랫폼은 네트워크 효과가 있기 때문에 모두가 사용하는 플랫폼이 생기고 나면 후발주자가 입지를 다지기 어렵다. 스위프트의 장점은 빠르고 안전하다는 것보다 많은 국가, 금융회사들이 이용한다는데 있다. SPFS는 저렴한 수수료 등을 앞세워 연결 기관을 늘려가고 있다.

스위프트가 건재한 상황에서라면 굳이 SPFS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스위프트를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러시아로부터 최소한 에너지라도 수입을 하려면 SPFS를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하고 있는 가운데 곧장 스위프트에서 SPFS로 갈아타 거래를 하는 국가나 금융회사는 없을 게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분위기가 누그러지면 스위프트를 단독으로 이용하는 것을 우려하는 국가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연결의 신뢰가 무너지면 대체 수단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

4일 동계올림픽 참석차 베이징에 도착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만나 기념촬영 중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베이징=AP 뉴시스

이같은 대체 플랫폼은 중국 역시 고민이다. 중국 역시 미국의 영향력을 지키는 강한 지지기반인 달러 패권에 대비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위안화국제결제시스템(CIPS)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위안화 국제 무역 결제, 국제 자본 프로젝트 결제, 개인송금 결제 등을 하고 있다.

CIPS 역시 SPFS와 마찬가지로 스위프트에 비해 이용건수가 미미하다. 위안화는 아직 기축통화가 갖춰야 할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달러 결제망을 사용할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에 대비해 국제 결제망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같은 필요에 의해 탈 달러에 대비해 왔고 양국은 2020년 자국통화상호결제 협정을 체결했다. 그리고 해당 협상의 이름을 ‘스위프트로부터의 러중 협력 게이트웨이’라고 불렀다. 스위프트가 언제든 경제 무기로 돌변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양국이 둘만이라도 국제 결제를 달러가 아닌 자국 통화로 하자는 협정을 맺은 것이다. 이후 양국간 거래의 결제 통화는 달러가 사용되는 비중은 90%에서 46%로 대폭 낮아졌다.

세계는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돼 있다. 군사안보 동맹이라는 눈에 보이는 연결이 있는가 하면 금융, 공급망, 인터넷, 기술 등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야들도 연결돼 있다. 관계를 무기로 활용할 경우 피해는 양쪽 모두 받을 수 있지만, 이를 무기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사실 그 신뢰는 경제적 이익을 밑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고자 하면 신뢰를 단숨에 무너지고, 그 여파는 장기적이다. 예를 들어 일본이 반도체 재료를 무기로 한국을 위협한 뒤 한국은 자국내 재료 산업 육성 및 수입선 다변화로 대응했다. 양국 사이에 긴장도는 당시보다 훨씬 낮아졌지만 한국 반도체 기업이 일본 재료 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이전 수준으로 높일 일은 없다. 언제든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러시아 미르 카드/사진출처:인스타그램, OK.ru

러시아는 다양한 부문에서 서방의 경제제재를 대비해 왔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당시 비자, 마스터 등 국제 결제 카드 시스템에서 러시아가 제외됐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러시아어로 세계라는 의미의 미르, 국제결제카드 시스템을 구축했다. 러시아 카드 결제의 25%가 미르를 통해 이뤄지며 1억개가 발급돼 있다.

물론 이 역시 공무원, 금융사, 연금수혜자 등 공공 영역에 있는 경제 주체들이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국제 카드 결제망에서 러시아가 제외될 경우 대안이 될 수 있다.

러시아는 달러표시 외채 비중도 낮췄다. 코트라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기준 러시아의 실질 외채 규모는 4820억원, 이중 달러 비중(2250억달러)은 46.6%다. 2013년 외채 중 달러 비중이 60%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하락했다.

외환보유고는 6300억 달러, 약 750조원으로 대폭 확충됐고 이 가운데 달러 비중을 22% 수준까지 낮췄다. 대신 유로화와 금, 위안화 비중을 높였다.

암호화폐를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시도도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비트코인 등 사설 암호화폐의 사용 및 채굴을 금지했고, 대신 정부가 발행하는 암호화폐(CBDC) 디지털 루블 발행을 추진했다. 지난달 15일 러시아 중앙은행은 디지털 루블 시험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개인들끼리 최초의 송금이 이뤄졌다. 현재 3개 은행이 참여하고 있고, 12개로 확대될 예정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새로운 저렴하고 편리한 송금을 위해 디지털 루블을 발행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달러 패권에 대한 견제임을 누구나 안다. 중국이 디지털 위안을 만드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러시아의 이같은 행보가 스위프트 제재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거나 달러 패권에서 분리된 또다른 국제 금융 시스템으로 즉각적으로 나타날 거라 보진 않는다.

서방의 금융제재 이후 러시아 루블화는 30% 넘게 폭락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폭락하는 루블화 예금 대신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은행 앞에 줄을 섰다. 러시아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고 뱅크런이 발생한 것이다.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자 물가는 8% 넘게 치솟았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루블화 가치 폭락을 방어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9.5%에서 20%로 전격 인상했다.

풍부한 외환보유고로 환율 방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봤지만 해외자산 동결, 스위프트 망 제외 등의 여파로 해외 금융기관에 보관된 보유고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자 환율은 속절없이 급등했다.

그 이후를 생각한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모두에게 큰 피해를 주는 나쁜 전쟁으로 기록될 게다. 가해자인 러시아는 서방 세계와 깊은 골이 생겨 더 이상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동반 성장의 테이블에 앉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에 테이블이 하나이던 시절은 점차 저물어가고 있다.

팍스아메카리나, 미국의 강한 영향력을 기반으로 지탱되는 국제 평화 질서 체제는 꽤나 공고해보였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글로벌 공급망으로 연결된 세계는 영원히 평화로울 거라 생각했다. 연결을 훼손하기에 감수해야 할 손실이 모두에게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연결이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늘면서 미국의 패권에서 벗어나려는 국가들의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당장은 미국에게 무역제재를 당하면서도 독자적인 공급망, 플랫폼, 반도체, 금융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수십년의 장기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관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과 아세안 주요 국가들이 참여하는 ‘역내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미국이 주도하다가 빠진 자리에 중국이 치고 들어온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미국이 새롭게 주도하며 중국을 포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등 우리 앞에 놓은 합종연횡도 어지러울 정도다. 모두 경제 공동체를 표방하며 웃으며 다가오지만 웃음 이면에는 '너는 아군이냐 적군이냐'는 공격적인 질문이 숨겨져 있음을 모두다 안다.

각자의 이익을 챙기려는 모든 국가들의 계산기가 복잡하게 돌아간다. 민주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으로 나뉠지, 공급망 중심으로 나뉠지, 디지털, 안보, 녹색 등 다른 명분으로 나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그에 따른 서방의 경제제재가 진영의 분리를 더욱 가속화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발칙한경제>8년 동안 칼 간 푸틴, 경제제재 방패 이미 쌓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rgcl4qw25xc&t=228s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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