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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스타트업 玉石]① 1등도 방어모드…시한폭탄 '째깍째깍'

-금리 인상기 급속한 유동성 회수로 자금 조달 난항
-투자자 실적 개선 요구에 비교적 견실한 스타트업들도 비상경영체제 돌입
-'묻지마'식 투자 횡행하던 벤처투자·스타트업계에 자정의 계기 시각도
신아름 기자

<편집자주>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잇달아 단행하면서 국내외 금융투자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습니다. 당장은 적자를 내더라도 성장성 하나로 많은 투자금을 끌어모았던 스타트업들은 투자 빙하기의 유탄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데요. 이제는 "실적으로 증명하라"는 투자자들의 깐깐한 요구 속에 돈줄이 꽉 막혀버리는,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그 여파로 기로에 선 스타트업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는데요. 유동성 파티가 끝나 갑자기 세상이 잿빛 어둠에 빠진 지금, 하지만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잔뜩 낀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옥석(玉石)가리기가 진행되기 마련입니다. 이를 거쳐 당면한 위기를 기회 삼아 제2의 도약에 성공하는 플랫폼 기업, 스타트업이 있다면 그 과실은 예상보다 클 수 있습니다. [플랫폼·스타트업 옥석] 기획시리즈에서 초기 호황기를 지나 혼돈기를 겪고 있는 신생 기업들의 부침을 들여다보고 예비 유니콘, 데카콘의 면모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배달대행 플랫폼 '부릉'의 라이더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모습/사진=뉴스1

"퇴사하겠다는 사람 붙잡지 않고 결원이 생겨도 인력을 보충해주지 않은 지 3개월 정도 됐다. 구조조정을 공식화한 적은 없지만 직원들은 회사가 지금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올해 설립 8년차를 맞은 물류 스타트업 A사는 하반기 들어 본격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조직을 슬림화하는 동시에 불필요하게 쓰고 있는 비용은 없는지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재무구조 개선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공격에서 방어태세로의 전환이다. 지난해 벤처캐피탈 업계부터 형성된 이상기류를 감지하고 올 초 다급히 자금을 끌어모아 나름의 대비책을 마련해놓긴 했다. 하지만 그 돈을 이전처럼 푼푼히 쓰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A사 대표는 "오로지 성장성 하나에만 베팅했던 투자사들이 '숫자'를 요구하기 시작했다"며 "숫자가 나오지 않는 스타트업엔 자금을 줄 수 없다는 건데 이 업계에선 그나마 견실한 축에 속하는 우리 회사도 몸을 바짝 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만년 적자에도 넉넉한 투자금을 바탕으로 세를 불리고 '자본시장의 꽃'이라 불리는 기업공개(IPO)까지 일사천리로 내달려온 스타트업계의 유동성 파티가 저물고 있다. 그동안 스타트업들의 곳간을 가득 채워주던 투자자, 소위 키다리 아저씨들은 이 곳간에 현미경을 들이대며 더 채울지 말지를 저울질하고, 최악의 경우 곳간 자체를 깨뜨려버리는 깐깐하고 냉혈한 심사관으로 돌변했다.

◇유동성 위기 내몰린 오늘회·부릉, '일촉즉발' 스타트업계=돈줄이 마르자 당장 스타트업들의 발등엔 불이 떨어졌다.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존폐의 기로에 선 기업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 것.

수산물 당일배송 서비스 플랫폼 '오늘회'를 운영하는 오늘식탁은 최근 유동성 위기로 서비스 중단을 선언하고 직원들에게도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최근 시리즈C 라운드에서 1200억원의 밸류(투자 전 기업가치)를 인정 받았던 곳이다. 배달대행 플랫폼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는 투자금 유치에 고전하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타트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에선 동대문 기반의 패션 플랫폼들의 자금 사정 역시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지금 스타트업계는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일촉즉발의 상 태"라고 말했다.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 받던 유니콘 기업(설립 10년 이하의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기업)들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금융투자시장의 경색된 분위기에 된서리를 맞고 있다. IPO(기업공개)를 추진 중인 새벽배송 플랫폼 '마켓컬리'의 운영사 컬리가 대표적이다.

컬리는 지난해 12월 프리 IPO단계에서 4조원의 기업가치를 평가 받았다. '유니콘 특례'(시장평가 우수기업)로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하고 이후 IPO 절차를 추진 중인 현재 그 가치가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VC업계 관계자는 "컬리처럼 유니콘 특례로 지난달 상장한 공유차 플랫폼 기업 쏘카의 주가가 상장한 지 한달이 채 안 된 지금 공모가 대비 25% 가량 빠진 상태"라며 "이는 스타트업계가 현재 처한 자금상황을 대변할 뿐 아니라 IPO를 진행 중이거나 가까운 시일 내 진행할 계획이 있는 스타트업들의 미래를 비추는 바로미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벤처투자규모 추이

◇긴축 드라이브 美에 '투자 혹한기', 스타트업 '옥석가리기' 가속화=벤처투자시장이 급격히 얼어붙게 된 건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의 급격한 긴축기조 전환 여파가 절대적이다.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기 침체가 가속화하자 돈을 풀어 인위적인 경기 부양에 나섰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까지 겹치며 인플레이션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자 미국은 시장에 풀린 돈을 다시 회수하기 위해 강력한 조치에 나서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0.75%포인트씩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잇달아 단행하고 있는 것. 미 연준은 9월에도 자이언트 스텝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회수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건데 당초 예상보다 그 시점이 빨랐고 속도 또한 이례적으로 가파르자 시장의 충격은 더욱 컸다. 벤처캐피탈 업계가 연쇄적으로 경색되며 스타트업 전반의 자금 가뭄이 가속화한 배경이다.

VC업계 한 관계자는 "연기금이 자금을 풀고 투자사가 이를 받아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구조인데 금리가 급격히 오르다보니 풀 수 있는 돈이 예전에 비해 확 줄었다"며 "연기금은 채권, 부동산, 주식 등 금리 변동의 영향을 크게 받는 자산들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를 위해 이전처럼 자금을 마음껏 집행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벤처투자 규모는 올 들어 본격적인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1조3200억원, 2분기 1조9100억원, 3분기 2조9100억원, 4분기 2조3007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던 벤처투자는 올 1분기 2조1800억원으로 성장세가 꺾인 뒤 2분기엔 1조8300억원으로 주저 앉았다.

이같은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중기부는 내년도 모태펀드 예산을 3135억원 규모로 편성했는데 이는 올해 5200억원 대비 약 40%, 지난해와 비교할 때는 70%이상 급감한 수치다. 모태펀드는 민간의 벤처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재원으로 전체 벤처투자 규모와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모태펀드의 규모가 꾸준히 줄고 있다는 점은 스타트업계의 투자 혹한기가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편에선 진행 중인 거품 해소가 일단락되면 스타트업계의 옥석이 가려지고 건전한 투자 생태계가 마련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급격히 불어난 유동성을 바탕으로 최근 2~3년 사이 초기 스타트업들에 대한 투자가 활발해지고 대기업들까지 가세하다보니 기업의 펀더멘털을 고려하지 않는 '묻지마식' 투자가 횡행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벤처캐피탈리스트는 "유동성 위기에 내몰린 일부 스타트업들이 매각되거나 퇴출되는 등 옥석가리기가 진행되면 진짜 성장성 있는 기업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며 "스타트업계와 이를 뒷받침하는 자본시장이 한층 더 성숙하면 제2의 네이버와 카카오도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아름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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