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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의 0과 1]망 사용료 역사의 결정적 순간…'인터넷 개헌'

망중립성이 제헌 헌법이라면, 지금은 '인터넷 개헌' 시기
ISP-CP 힘의 균형 반영한 '새 헌법' 제정될지 지켜볼 때
김용주 기자

리사 퍼 유럽통신사업자협회(ETNO) 사무총장(오른쪽)과 이상학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OTA) 부회장이 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망 사용료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인터넷 세계의 개헌이라고 할 만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터넷 세계의 3요소라 할 인터넷 이용자, 통신사업자(ISP), 콘텐츠제공자(CP) 간 힘의 균형과 이해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으므로 이를 '인터넷 헌법'에 반영하려는 것입니다.

이번 개헌에서 중요한 세력은 ISP와 CP입니다. 힘의 균형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지역별로 보면 ISP는 모든 국가에 있지만, 글로벌 차원에서 CP라 부를 만한 기업은 대부분 미국에 있습니다. 구글, 넷플릭스, 아마존, 애플, 메타 같은 기업 말이죠.

이들 세력 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려면 우선 '제헌 헌법'을 간략히 살펴봐야겠습니다.

인터넷 세계의 제헌국회는 2003년 미국 컬럼비아대 법학 교수인 팀 우의 이론에 따라 '망 중립성'을 제헌 헌법으로 제정했습니다. 당시로 돌아가보면 인터넷 세계의 모든 권력은 ISP에 있었습니다. ISP의 절대적 힘을 제어하지 않고는 인터넷 세계 성립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인터넷 제헌국회는 ISP를 '바보'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CP와 인터넷 이용자를 이어주는 '바보 파이프라인(또는 빨랫줄)' 역할만 할 수 있을 뿐, ISP는 인터넷 세상에서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CP가 요구하면 무조건 인터넷을 연결해줘야 했고, 통신망을 타고 흐르는 트래픽 내용을 들여다보거나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도록 팔다리를 묶었습니다. 망중립성 개념이 복잡하기는 하지만 크게 보아 이런 의미에서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20년이 흐르면서 인터넷 역학구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ISP를 바보로 만들고 그 위를 마음껏 돌아다닌 CP가 어느새 ISP보다 더 커버린 것입니다. 이른바 '빅테크'라고 부르는 글로벌 CP의 힘을 이길 수 있는 ISP는 아마 한 곳도 없을 것입니다. 무시무시하게 커버린 CP, 이것이야말로 개헌을 추진하는 중대한 원인입니다.

개헌 세력의 요구는 무엇입니까? 망 사용료를 논의하기 위한 협상 테이블에 CP가 앉아 달라는 것입니다. 과거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인터넷 세계의 괴수, ISP가 모든 힘을 장악한 시절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버젓이 일어날 만큼, CP는 이제 새로운 인터넷 괴수가 되었습니다. 망 사용료로 얼마를 내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제발 협상이라도 좀 해 달라는 것입니다. 위 사진에서 보듯, 최근 한국 ISP 연합과 유럽 ISP 연합이 머리를 맞댄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이제 새로운 기득권, 새로운 괴수가 되어버린 CP는 협상 테이블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개헌을 저지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힘을 총 동원해 여론전을 펴고 있죠. 개헌 시도는 ISP의 기득권을 강화하기 위한 파렴치한 짓이라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인터넷 이용자에게 갈 것이라고. 인터넷 세계의 힘의 균형이 뒤집어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직도 제헌 헌법인 망중립성을 들어 ISP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역사에서 보듯 심각한 힘의 불균형이 발생했는데도 개헌이 관철되지 않으면 남은 건 전쟁입니다. 이미 전쟁은 일어났습니다. 한국에서 인터넷 개헌을 위한 전쟁, 즉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소송전이 발발했죠. 지구의 귀퉁이에서 발발한 전쟁이지만, 크게 보아 인터넷 개헌의 불을 당긴 중대한 전쟁입니다. 지구의 귀퉁이에서 일어난 전쟁이지만, 그 의의를 볼 때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의 충돌인 까닭에 세계의 눈이 한반도로 쏠렸던 70여년 전의 비극이 떠오릅니다.

과연 인터넷 개헌이 성공하고 전쟁이 아닌 평화로운 방법으로 갈등이 해소될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김용주 MTN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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