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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피플] '1947 보스톤' 하정우 "데뷔 20년, 일희일비하지 않길"

 
장주연 기자

사진 제공=워크하우스컴퍼니

배우 하정우(45)의 진짜 매력은 묵묵함에 있다. 물론 특유의 능글거리는 말투나 타율 좋은 개그감, 수년간 밈으로 돌아다니는 영화 속 먹방 장면 등으로 구축(?)한 코믹한 이미지를 사랑하는 대중도 많지만, 사실 그의 진가는 특별한 대사나 큰 표정 변화 없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빛을 발한다. 마치 '1947 보스톤' 속 손기정처럼.

지난여름 '비공식작전'으로 관객과 만났던 하정우가 신작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콘텐츠지오/제작 ㈜비에이엔터테인먼트·㈜빅픽쳐)으로 추석 극장가에 재도전장을 내밀었다. 27일 개봉한 '1947 보스톤'은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마라토너들의 도전과 가슴 벅찬 여정을 그린 이야기. 한국 마라톤의 전설 손기정(하정우)과 남승룡(배성우),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영웅 서윤복(임시완)의 실화를 담았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만난 하정우는 "촬영 기준으로 4년 만에 개봉하게 됐다. 저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면서 "늘 그렇지만 관객들이 어떻게 봤을지가 제일 궁금한데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굉장히 쿨하게 나와서 놀랐다. 감독님이 고민한 흔적이 느껴졌다"는 소회를 전했다.

"사실 처음 겉모습만 봤을 땐 마라톤 영화라 그렇게 끌리진 않았어요. 근데 시나리오를 읽고 나니 마라톤 영화이기도 하지만, 손기정 선생님을 중심으로 서윤복, 남승룡 선생님이 대회에 출전하기까지 여정과 드라마가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이건 단순 스포츠 영화가 아니구나' 싶었죠. 동시에 국가대표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대회에 출전할 때 얼마나 큰 책임감, 무게감으로 임하는지 알게 됐고요. 그것이 생각 이상으로 엄청나구나 싶었어요."

영화 '1947 보스톤' 스틸 / 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극중 하정우는 1947년 보스턴의 기적을 이끄는 마라톤의 전설 손기정을 열연했다. 일제 강점기에 개최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지만, 시상대에서 가슴의 일장기를 가렸다는 이유로 더 이상 뛸 수 없게 된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의 감독을 맡아 빼앗긴 영광을 되찾기 위해 나선다.

"(손기정은) 강제 은퇴 후 핍박과 고난의 시간을 보내셨어요. 그사이 안좋은 가족사도 있으셨고요. 말 그대로 버텨내신 거죠. 정의 내리기 조심스럽지만 성격, 기질 자체가 강한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멘탈도 그렇고요. 결국 두 사람을 보스턴에 데리고 가서 태극마크까지 달게 하잖아요. 또 이북(以北) 분 특유의 기질도 있으세요. 그래서 연기할 때 (이북 출신인) 저희 할아버지, 둘째 큰아버지를 많이 떠올리기도 했죠. 덕분에 감정 표현이 수월한 부분도 있었고요."

감정 표현이 수월했다고 해서 과정 자체가 편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손기정으로 살아간 시간은 여느 때보다 어렵고 힘들었다. 자신이 그려내는 장면들이 손기정과 그의 가족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컸던 까닭이다.

"특히 초반 시상식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내가 이 장면을 연기해서 영광이란 마음보다 부담스러운 마음이 더 컸어요. 정말 표정 하나하나 표현하는 것도 조심스러웠죠. '내가 이걸 해도 되나, 이럴 자격이 있나' 싶더라고요. (보스턴) 연설 장면 같은 경우엔 짧게 나오긴 했지만, 연습만 두 달을 했어요. 물론 영화적 연출이고 재현해야 하는 장면이 맞지만,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무겁더라고요. 사실 지금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조심스러워요."

사진 제공=워크하우스컴퍼니

하정우가 이 영화를 선택한 첫 번째 이유인 강제규 감독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업계는 물론, 대학(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선배이기도 한 강 감독을 보면서 영화인의 꿈을 꿔왔던 터라 감회가 남달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레전드 감독이자 선망의 대상이었죠. 그래서 늘 함께 해보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감독님 작품에 출연만 해도 출세한 느낌이겠다 싶었거든요. 그리고 출세를 했죠.(웃음) 직접 뵌 감독님은 고민의 주저함이 없으신 분이셨어요. 배우들 이야기도 잘 들어주시고 변수가 많은 현장에서 대처 능력도 뛰어나시죠. 제겐 교수님, 어른의 느낌이라 신뢰도 컸고요. 클린트 이스트우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처럼 80~90대에도 좋은 작품 많이 만드셨으면 좋겠어요."

강제규 감독으로 시작된 대화는 자연스레 감독 하정우로 확장됐다. 모두가 알다시피 하정우는 배우인 동시에 영화 '롤러코스터'(2013) '허삼관'(2015) 등을 연출한 감독으로, 지금도 차기작 '로비' 촬영에 한창이다. 연출자 하정우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감독은 누구냐는 우문에 하정우는 "아웃풋은 각자 고유의 영역이라 감독 생김대로 섭취하는 대로 나오는 것 같다"는 현답을 내놨다.

"절대 누군가를 따라 할 수도, 흉내 낼 수도, 숨길 수도, 꾸밀 수도 없다고 봐요. 물론 배우는 건 너무 많아요. 특히 박찬욱, 윤종빈, 나홍진, 김성훈, 류승완, 김병우 등 좋은 감독님들의 공통점은 집요할 정도로 노력한다는 거죠. 김병우 감독이 '엉덩이 힘으로 영화를 찍는다'고 했는데 그만큼 다들 오랜 시간 열심히 준비하세요. 저도 그렇게 배워서 이번 '로비' 준비에 최선을 다했고요. '로비'는 아마 12월 중순쯤에 크랭크업해서 내년에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사진 제공=워크하우스컴퍼니

지난 2003년 영화 '마들렌'으로 대중 앞에 선 하정우는 올해 데뷔 20주년도 맞이했다. 특별한 계획이나 행사를 준비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하정우는 "코로나19로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20주년을) 생각하지 못했다"면서도 "어떻게 CGV라도 대관해야 하는 거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게 벌써 20주년이 됐네요. 특별한 계획은 없고 지금 생각하니 팬들과 만남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어요. 그래도 1년에 한 번씩은 뵐 자리를 마련했는데 팬데믹으로 3년을 못만났거든요.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글쎄요.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시간 진짜 빠르다' 그리고 '잘 버텨왔다'는 거죠. 그리고 다음 작품은 어떨 걸 선택해야 하나 싶어요. 전 과거보다 미래를 생각하는 타입이라 앞으로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어떤 작품을 할 건가란 생각이 드는 듯해요."

배우란 직업 특성상 남들보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많았던 나날들. 그 시간을 지나오며 하정우가 가장 크게 깨달은 건 '인생사 새옹지마'다. 그는 인생에 있어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고, 나쁜 일이 있으면 또 좋은 일이 있기 마련이란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항상 좋은 일과 나쁜 일의 반복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만약 20년 전 저를 만난다면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해주고 싶어요. 예를 들어 '허삼관'이 개봉하고 관객이 100만명도 안들어서 되게 힘든 시간을 보냈거든요. 근데 돌이켜보면 그렇게 힘들어만 할 일은 아니었다 싶어요. '황해'(2010) 역시 흥행에 실패했지만, 후에 좋은 평가를 받았고요. 그러니 '흔들리지 말고 재밌는 시간을 보내면서 열심히 작품에 임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장주연 MTN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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