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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 금융+] 은행 때리고 상생금융 요구에 시장은 역효과만

당·정·대 연일 '은행 때리기' 집중…고강도 압박에 줄줄이 상생금융안
가계대출 증가, '고금리 예적금 경쟁' 막겠다던 당국, 시장은 반대로
임태성 기자

금융의 이면을 봅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씁니다. 금융에 인사이트를 더 한 뉴스, [MTN 금융+]로 전합니다.


정부와 정치권, 금융당국의 '은행 때리기'의 강도가 더욱 세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식 석상에서 "은행의 종 노릇"이나 "은행들은 갑질을 많이 한다"와 같은 강도 높은 발언을 연일 쏟아냈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정부와 금융당국의 수장부터 여·야를 막론한 국회의원들까지 역대급 이자이익으로 배를 불린 은행권에 '낙인'을 찍고 있다. 은행이 벌어들인 이자순이익 중 초과분을 서민금융진흥원에 출연하는 '횡재세'를 입법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이같은 전방위적인 '은행 때리기'에 금융지주와 은행들은 속속 상생금융안을 내놓고 있다. 올해 60조원에 달하는 이자이익을 벌어들인 것도, 가계대출 급증세에 일부 책임이 있다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 몸을 잔뜩 움츠리고 곳간을 풀고 있는 모습이다.



◆'은행 때리기'에 상생안 내놨지만= 상생 대책에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하나은행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적이 나온지 이틀만인 지난 3일 하나은행은 소상공인·자영업자 30만 여명을 대상으로 한 10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추가 이자 캐시백과 서민금융 공급 확대(약 11만명) △에너지생활비·통신비 지원(약 19만명) △경영 컨설팅(약 3000명) 등이 제시됐다.

DGB대구은행은 지난 5일 햇살론뱅크 신규 대출 시 1.0%포인트 추가 금리 감면을 적용하는 서민금융 지원 대책을 내놨고, 신한금융그룹도 지난 6일 '2024년 소상공인·자영업자 상생금융 패키지'라는 이름으로 △중소법인 대상 상생금융 지원 프로그램 지원 기간 1년 연장 △상생금융 지원 프로그램 대상 자영업자까지 확대 △2%포인트 수준의 이자 캐시백 △대출중개 플랫폼 바우처 지원 △저금리 특례보증 신상품 금융 지원 △통신비 공과금 캐시백 등 총 1050억원의 추가 상생금융안을 발표했다.

이외에도 BNK금융그룹, 우리금융그룹은 상생금융 확대를 위한 긴급회의를 개최하거나 상생금융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는 등 상생금융 현안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KB금융그룹이나 NH농협금융그룹, JB금융그룹 등은 구체적인 발표안을 내놓지 않았지만 오는 20일로 연기된 금융당국과 금융지주회장 간 간담회에서 나온 대책안을 토대로 추가 상생안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규제 풀고 대출 늘자 은행탓= 이처럼 금융당국이 밀착해 은행권에 상생금융을 요구하는 것과 별개로 그간 은행들은 꾸준히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지난달 30일 은행연합회가 발간한 '2022 은행 사회공헌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들이 사회공헌활동으로 내놓은 금액은 1조 2380억원이다. 지난 2019년부터 꾸준히 1조원이 넘게 사회공헌활동 지원금을 내놓고 있고, 올해 초에는 10조원 규모의 취약계층 지원안까지 내놨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은행 때리기'는 그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내년도 은행업권의 실적 악화가 전망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또 얼마나 상생금융 대책을 펼쳐야 하는지도 묘연하다. 권홍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7일 금융동향·전망 세미나에서 "내년 국내은행의 당기 순이익은 소폭 감소할 전망"이라며 △대출 증가율 소폭 둔화 △시장금리 하락에 따른 순이자마진(NIM) 축소 △연체율 상승과 손상 대출채권 증가에 따른 대손충당금 증가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일각에선 정부의 압박에 은행들이 내놓은 상생금융안이 오히려 정부의 금융 정책과 대척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누증의 원인을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로 꼽으면서 비판한 바 있다.

정부는 연초 부동산 연착륙과 무주택자의 주거 마련 지원을 위해 특례보금자리론,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완화, 50년 만기 정책모기지 출시 등 대출 규제 완화정책을 펼쳤다. 이같은 정부의 대출 규제 완화 조치에 은행들도 뒷따라 대출 금리를 낮추고 50년 만기 주담대를 내놨는데 가계부채가 급증하자 금융당국은 "정책 상품과 은행 상품의 출시 취지는 다르다"며 책임을 은행 탓으로 돌렸다. 결국 은행들은 해당 상품의 판매를 중단하거나 연령 제한을 두는 등 한 발 뒤로 빼는 모습을 보였다.



◆다시 죄는 규제, 상생안이 되레 대출 자극=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증가세를 막겠다며 스트레스 DSR(변동형 주담대 금리에 가산금리를 부과하는 제도)과 같은 대출 규제안을 다시 펼치고 있지만, 정작 은행권에 요구하는 상생금융안은 대출 금리를 인하하거나 이자 캐시백을 지급하는 등 대출 수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한 상생 대책과 가계부채 관리는 분리해 대응한다는 입장이지만 서민 지원을 위한다고 하더라도 이자율이 내려가면 대출 잔액은 다시 꿈틀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특히 신규 대출에 대해서 혜택을 부여하게 되면 불안한 가계대출을 또 키우게 되는 반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해 상생지원책을 펼쳐야 한다면 기존 대출자에게 적용하는 방식으로 방향성을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은행권이 중소기업과 중·저신용자를 중심으로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올해 4분기 국내은행의 중소기업과 가계에 대한 대출행태지수는 각각 -6다. 대출행태지수는 총 204개 금융기관의 여신업무 총괄담당 책임자를 대상으로 향후 3개월간 대출태도와 신용위험, 대출수요 전망을 조사해 지수로 산출한 것이다. 0을 기준으로 마이너스(-)이면 금융기관이 보다 깐깐하게 대출 심사와 지급, 관리한다는 의미다.

최근 글로벌 고금리 기조와 경기 침체로 중·저신용대출과 중소기업 대출을 중심으로 건전성 문제가 커져가는 상황에서 은행권이 대출을 줄여간다는 뜻인데, 상생금융의 취지와 달리 정작 신용도가 높은 가계나 대기업을 중심으로만 상생금융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황 선임연구위원도 "서민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한 상생금융에서 일정 부분 고신용자나 우량 기업들이 수혜를 받을 수도 있는 건 불가피하다"며 "본 취지에 걸맞도록 정책적 설계가 수반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일관성 없는 오락가락 정책, 역효과 초래= 게다가 하나은행의 '하나 아이키움 적금'이나 신한은행의 '패밀리 상생 적금' 등 은행권이 내놓은 연 8~9%대의 상생 예적금 상품도 당국의 요구사항과 반하는 모습이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18일 '금융시장 현안 점검·소통 회의'에서 은행들이 수신을 통한 자금 조달에 의존하지 않도록 은행채 발행 규제를 풀어줬는데, 오히려 상생금융의 일환으로 은행들이 고금리 예적금 상품을 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민과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소규모 프로모션(판촉 활동)으로 상생 예적금 상품을 출시했다고는 하지만 이에 줄지어 다른 은행들도 상품을 출시한다면 지난해 말 강원중도개발공사의 채무 불이행 선언 사태 때처럼 자금시장 경색이 재연될 수 있다. 여전히 여신전문금융회사와 보험사, 저축은행과 캐피탈 등 제2금융권의 경우 고금리 여파로 자금 조달 비용이 급격히 치솟고 있고, 우량 중소기업이라 하더라도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은행 대출창구로 항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오락가락 정책에 은행들은 다소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민간 은행은 정부의 정책 방향과 시장 수요에 맞춰 상품 출시나 방향을 결정 짓게 된다"며 "정부나 당국 차원에서 고심해서 여러 정책들이 발표되다 보니 정책이 바뀌는 과정에서 개별 소비자도 갈팡질팡한다라고 느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와 당국의 방향성을 거스를 수 없는 우리나라의 금융 산업에서 은행이 언제나 '악역'을 맡는 점에 대해 에둘러 불만을 표한 것으로 보인다.

임태성 MTN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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