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밖에서] 국제학교 다음엔 우주학교?…미친 사교육엔 이게 약
윤석진 기자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육이 나라의 백 년을 좌우할 큰 계획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학교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하지 못했습니다. 교사 한 명이 학생 여러명에게 같은 내용을 수업하는 방식은 3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마차가 자율주행 자동차로 바뀌고 편지가 SNS로 바뀌는 동안 교실은 성역처럼 남아 네모 반듯한 모습을 유지했습니다. 최근에 들어서야 달라질 조짐이 보입니다. 코로나19와 챗GPT 덕분입니다. 학교가 가지 않아도, 선생님이 없어도 공부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머니투데이방송 MTN은 교육 혁명 사례를 짚어보기 위해 '교실밖에서' 코너를 준비했습니다.
사진제공=뉴스1 |
지하철 환승 통로에 오래된 제과점 하나가 있다. 빵 하나를 1000원에 판다. 어느날 보니 빵 밑에 최고급이란 단어를 써 붙여 놨다. 공장에서 찍어낸 빵이 최고급이면, 수제빵엔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할까. 지구를 뛰어넘는 우주적인 표현이어야 할텐데 실제로 서울에 그런 빵집이 있다. 그곳에선 라임과 애플망고 무스로 시원하게 충돌하는 상큼함의 판타지와 은하의 영롱함이 어우러진 우주가 담긴 식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정말 그런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안다. 거기에 1000원으로 살 수 있는 빵은 없다.
색다른 재미와 경험, 더 나은 품질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보드리야르는 그의 책 '소비의 사회'에서 현대인이 소비하는 상품에는 행복과 안락, 풍요, 성공, 위세, 권위, 현대성 등이 포함된다고 했다. 다양한 상품이 소비되는 사회에서 빵은 그냥 밀가루 덩어리가 아니라 가치들의 총합이다. 하지만 '더 좋은' 빵은 언제나, 누구나 사기 어렵다. 소득에 따라 소비의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보드리야르는 소비가 사회 내 차이를 더 두드러지게 하는 데 기여하면서 구조화된 차별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교육 분야도 소비의 논리 아래에 있다. 가계 소득에 따라 사교육비 격차가 커지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월 소득 800만원 이상의 가구는 인당 사교육비로 64만 8000원, 200만원 미만 가구는 12만 2000원을 썼다. 양측의 지출 격차는 5.23배에 달한다. 5.1배였던 2020년보다 격차가 더 벌어졌다.
좋은 교육 상품 위에 더 좋은 상품이 있고, 그런 건 여지없이 비싸다. 학부모의 불안감도 한 몫 한다. 사교육은 불안을 먹고 큰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내 아이가 뒤쳐질까 두려운 부모들은 배팅액을 한계치까지 끌어 올린다. 올인을 넘어 대출까지 받는 경우도 있다. 빵은 싼 걸 사 먹거나 안 사 먹고 마는 선택적 소비가 가능하지만, 내 아이 교육 만큼은 최대,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싶어 한다. 사교육비에는 이런 막연한 불안을 달래주는 카운셀링 비용이 포함된 듯 하다. 교육비가 천장을 뚫고 날아가 버린 배경이다.
예컨대 이른바 영어 유치원의 한 달 등록비는 150만원, 1년이면 1800만원이다. 의과 대학 등록금을 우습게 능가하는 수준이다. 그 위에는 유아 대상 국제학교가 있다. 제주 모 국제학교는 1년 수업료가 3000만원을 웃돈다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국제학교를 능가하는 '우주학교'가 생겨서 억대 수업료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교육이 프리미엄 상품이 된 시대, 디지털 교육은 한줄기 대안을 제시한다. EBS나 유튜브, 각종 앱, 온라인 공개수업(MOOC;무크)은 온라인 상에서 학습 콘텐츠를 무료 또는 저가에 제공하고 있다. 입시전문 인강 업체들은 대치동 1타 강사의 고급 강의를 헐값에 판다. 디지털 교육 세계에선 돈의 유무와 상관없이 인터넷 환경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공부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은 실제로 전 세계 교육 격차를 줄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유네스코의 2023 세계교육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선 농촌 학생 1억명에게 고품질의 수업 녹화 영상을 제공해 학습 성과를 32% 향상시켰다. 덕분에 도·농간 소득 격차는 38% 줄었다. 멕시코에선 TV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중등학교 취학률을 21% 높였다.
전쟁으로 집을 빼앗긴 아이들도 교육의 기회를 얻었다. 유니세프는 몰도바에 에듀테크 랩 81곳을 설치할 계획이다. 70곳은 벌써 운영하고 있다. 몰도바는 우크라이나 옆에 붙어 있는 국가다. 우크라이나 인근 국가에는 피난을 온 아이들이 수백만에 이르는데, 이중 3분의 2가 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다. 우크라이나 아이들은 에듀테크 랩이 제공하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루마니아어와 영어, 과학, 기술, 공학, 수학 등을 배울 수 있게 됐다. 디지털 기술은 교육에 굶주린 아이들의 양식이자 미친 사교육을 치료하는 백신이다.
윤석진 MTN 머니투데이방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