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피플] 이병헌 감독 "'닭강정' 진짜 이상했나 봐요"

이병헌(43) 감독이 본인의 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코미디 장르로 돌아왔다. 앞서 1600만 관객을 돌파한 '극한직업'(2019)에서 위트 있는 말맛으로 관객들을 웃겼다면, 이번에는 황당한 설정에 말맛을 더해 보다 기발한 방식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그가 내놓은 신작은 지난 15일 공개된 '닭강정'(감독 이병헌/제공 넷플릭스/제작 스튜디오N·플러스미디어엔터테인먼트)이다. 의문의 기계에 들어갔다가 닭강정으로 변한 딸 민아(김유정)를 되돌리기 위한 아빠 선만(류승룡)과 그녀를 짝사랑하는 백중(안재홍)의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박지독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작품 공개 후 만난 이병헌 감독은 "(전작들도) 어느 정도는 호불호 나뉘는 게 있었는데 이번에는 기획 단계부터 호불호라는 상황이 벌어지면 성공한 거라고 생각했다. 반응을 챙겨보는 게 전작보다 재밌다고 해야 하나? 너무 다양하더라. 다양한 리뷰와 댓글 반응을 보는 걸 따로 시간을 써서 보내야 하는 작업이라고 느낄 만큼 재밌게 잘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호불호가 있는 걸 성공이라고 본 이유는 분명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는 없는 장르라는 걸 알고 시작했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한 반응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애초에 원작의 톤이 가진 리스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희한테 문제는 '그렇다면 왜 해야 하는가'였죠. 원작을 보고 각색하면서 방향성을 잡았을 때 이 이야기가 가진 가치, 의미를 찾은 것 같았어요. '호불호가 예상되니 하지 말아야 할까' 했을 때 해야 하는 이유를 덮지는 못했던 거예요. 또 마냥 부정적인 건 아니라고 보기도 했고요.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데이터가 쌓이는 건 재밌기도 하면서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게 됐어요."

작품 공개 후 그의 기대처럼 호불호는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어느 때보다 반가운 마음으로 시청자들의 반응도 살펴봤을 그는 전작에서는 겪지 못한 반응이 나오는 것에 신기해했다.

"불만을 얘기하는 건 아니지만 전작들을 깊게 분석해 주는 분들이 없어서 섭섭한 것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깊게 분석해 주는 분들이 있으니까 반갑더라고요. '진짜 작품이 이상했나 보다' 싶기도 하고요. 좋은 댓글이나 반응은 전작이나 지금이나 비슷해요. '가둬놓고 이런 거만 했으면 좋겠다' 같은 거죠. 나쁜 반응은 욕도 많긴 해요. (웃음)"

사진 제공=넷플릭스

물론 고민은 많았다. 특히 사람이 닭강정으로 변한다는 황당한 설정을 실사화하는 건 원작이 아무리 매력적이라도 접근하기 쉽지 않은 일. 실제로 글을 쓸 때 현타(현실자각타임)가 많이 왔다는 고백은 그래서 더 현실적이었다.

"촬영에 대한 경험치가 있기 때문에 시뮬레이션을 해보는데 그림이 안 그려지는 거예요. 아니면 그림은 그려지지만 너무 어려운 거죠. 그럴 땐 '내가 왜 재밌다고 생각했지?' 다시 돌아가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럴 때 다시 찾아가는 건 시나리오, 원작, 그리고 처음 했던 생각이었어요.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이고 이겨냈던 것 같아요. 이걸 못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저는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 작업해야 하는 거니까 그 생각을 하면서 견뎌냈죠."

이 과정은 감독 스스로 도전 의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극한직업'으로 얻은 대중성을 포기하고 이 작품을 세상에 선보인다는 건 엄청난 용기. 이 감독은 지금이라면 선뜻 도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돌아봤다.

"(작품을 선택했을 때가) 코로나19가 터진 직후라 과감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봐요. 또 그땐 30대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드림'(2023)으로 손실도 봤으니까 안전한 무언가를 찾으려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저는 책임감이나 사명감보단 개인적으로 그런 작업을 하는 게 재밌는 것 같아요. 실험이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성공 이후에 그 길을 반복하는 것보다 도전하는 게 더 재밌게 느껴지더라고요. 사명감이 아닌 개인의 재미를 위해서 필요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작품의 매력이 살아난 데에는 배우들의 연기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 감독은 이미 류승룡과는 영화 '극한직업'에서, 안재홍과는 드라마 '멜로가 체질'(2019)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이들을 다시 캐스팅하는 건 분명 안정적이지만 시청자에게 기시감을 줄 수도 있는, 양날의 검 같은 일. 하지만 감독의 소신은 명확했다.

"저는 우려할 부분이 없다고 봤어요. '극한직업' '멜로가 체질'은 ('닭강정'과) 결이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극한직업'이 시추에이션 코미디에 가깝다면 '멜로가 체질'은 스탠딩 코미디인데, 두 작품의 주축인 두 사람을 모았을 때 두 명이지만 어벤져스 같은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번 작품은 톤이 올라가야 해서 완전히 다른 결의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봤거든요. 그런데 두 분이 전작과 아주 다른 걸 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까 (캐릭터들의) 말투 때문에 비슷하다고 느끼실 수 있지만 작품의 결과 톤은 다르다고 봐요."

실제로 '닭강정' 속 류승룡, 안재홍 조합은 완벽했다. 특히 두 사람의 연극적인 연기는 과장돼 보이지만 그래서 더욱 작품의 결과 잘 맞아떨어졌다. 이 감독은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에 감탄 외엔 할 게 없었다고.

"제 디렉션은 촬영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말한 게 전부였어요. '원작의 느낌을 고스란히 살려서 만화적이고 연극적이고 심지어 뮤지컬 톤까지 생각해도 상관 없을 것 같다'고 말했어요. 진입하기 어려운 이야기에 어설프게 대중적인, 익숙한 무언가로 희석하려 하면 어정쩡해질 것 같더라고요. '붕 떠 보일 수 있지만 작품 자체가 떠 있어서 전혀 뜨지 않을 거다. 연기도 거기에 맞춰서 가야 할 것 같다'고만 했죠. (배우 입장에서는) 용기도 필요했을 텐데 과감하게 해줬어요. (배우들의 연기에) 다른 의견도 없었고요."

사진 제공=넷플릭스

특별출연진 또한 화려했다. 특히 닭강정으로 변한 민아를 연기한 김유정, 백중의 전 여자친구 홍차에 분한 정호연 등은 본인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며 극을 더 통통 튀게 만들었다. 이 감독은 김유정이 노란 스웨터를 입는 순간 작품이 사랑스러워졌다는 걸 느꼈다며 김유정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정호연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호연 배우와는 '오징어게임'(2021) 이전에 친분이 있었어요. 제가 이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 걸 듣고 너무 재밌어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어울리는 게 있다'면서 대본을 보여줬죠. 특별출연도 재밌을 것 같다고 했는데 흔쾌히 수락해 줬어요. 누군가는 정호연을 활용한 단순 코미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에겐 중요한 장면이었어요. 드라마 주제와 맞물리는 것도 있었죠. 탕수육 부먹(소스를 부어 먹기)이냐 찍먹(소스를 찍어 먹기)이냐를 두고 싸우는데 실제로 우리에게 흔하지만 중요한 대립이잖아요. 본인도 긴 대사를 해본 적이 별로 없었을 텐데 얼마나 연습하고 온 건지 입에 달라붙어 있더라고요. 그 신이 잘 나와서 너무 감사하게 생각해요."

'극한직업'으로 인기 감독이 됐고 특유의 말맛으로 대중에 인정받고 있지만, 이 감독에게도 걱정은 있다. 자신의 필모그래피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든 생각. 그는 "이병헌이라는 이름을 너무 들켜버린 것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대중은) 제가 비슷한 작품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제 안에서 정말 다른 걸 하고 있죠. (사람들은 제 작품을 보고) B급 코미디라는데, 저는 열심히 A를 하고 있는데 B라고 하시는 거기도 해요. (작품 속 캐릭터들의) 말투가 비슷해서 그런가, 이병헌이라는 이름이 각인돼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을 거고요. 고민 중이긴 해요. 그런데 답을 찾은 건 아니지만 너무 두려워하지는 않고 있어요. 변하지 않는 말투로 오랜 시간 사랑받는 작가도 있고 선배도 있잖아요."

말맛이 아닌 다른 평가를 받고 싶은 생각도 있을 법하다. 그는 코미디가 아닌 다른 장르에 도전한다면 지금까지 보여준 말맛과는 전혀 다른 대사를 보여주겠다는 의지도 크다.

"(말맛이 강조되는 건) 제가 예산이 큰 작품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도 있다고 봐요. 돈을 들여 미사일을 쏘고 지진, 해일을 소재로 한다면 그런 대사가 왜 필요하겠어요. 그 이야기에 맞는 대사를 해야겠죠. 저는 주변 가까운 사람들을 이야기하는데 그럴 때 뭐가 경쟁력일지 생각하면 대사더라고요. 돈 들여서 다른 작품을 한다면 마냥 대사를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SF도 생각 중인 게 있는데 거기에선 마냥 코미디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죠."

그렇지만 우선은 '닭강정'을 통해 기대하는 바를 이뤘으면 하는 마음. 또다시 새로운 것에 도전하겠다는 자신감, 그리고 그 동력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 단계에선 성공했다 할 수 없지만 '닭강정'이 유의미한 성과를 낸다면 넓게, 또 자신 있게 도전해 볼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기대감이 들더라고요. 제 작품 중 호불호가 가장 큰데 아직은 호가 더 많은 것 같긴 해요. 그게 유지됐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