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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 인사이드] 반도체 보조금 '0원'..한국도 '당근' 제시할까

TSMC·삼성전자, 美에 추가 투자..보조금 규모도 확대
격화하는 AI반도체 투자경쟁..EU·일본·인도 기업 유치 사활
김이슬 기자

네덜란드 ASML./ 사진=뉴스1

최근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회사인 ASML이 본사 해외 이전 가능성을 시사하자 자국 정부가 일명 '베토벤 작전'으로 불리는 당근책을 꺼내 가까스로 문제를 봉합했다. 반도체 업계 '슈퍼을'로 통하는 ASML의 엑소더스 발단은 인종주의 극우 정치인 헤이르트 빌더르스 주도로 의회를 통과한 이민 제한 법안이었다. 네덜란드 본사 직원 40%가 외국인인 ASML로선 인재 확보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커다란 암초를 만난 셈이다. 네덜란드에서 매출 기준 9위 기업인 ASML이 본적지를 옮기면 네덜란드 경제는 막대한 세수 손실이 불가피하다.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가 "인재를 확보할 수 없다면 우리는 성장할 수 있는 곳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자, ASML 본사가 있는 지역의 도로 교통망과 전력 공급 확충 등에 3조7000억원을 투입하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배경이다.

□ "반도체 쩐의 전쟁" 글로벌 보조금 전쟁 격화

세계 각국이 막대한 보조금을 풀기 시작하는 '쩐의 전쟁'이 격화되면서 국가대표급 반도체 기업을 붙잡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기업들은 비용이 적게 드는 곳으로 향한다. 특히 전력과 용수 기반시설을 갖춰야 하고 팹 하나당 수십 조원이 드는 반도체 산업 특성상 비용 절감은 민감한 이슈다. 오죽하면 반도체 기반이 취약한 유럽과 인도까지 각각 62조원, 13조원의 보조금을 앞세워 글로벌 기업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중국을 위협하며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 중인 인도는 공장 건설 비용의 최대 70%까지 지원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에 미국 마이크론과 일본 르네사스, 인도 타타그룹 등이 인도 현지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확정했다. 황무지나 다름 없던 반도체 변방 국가들이 천문학적 보조금을 무기로 글로벌 기업들을 대거 흡수하면서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치열하게 전개되는 반도체 보조금 전쟁은 2022년 칩스법을 만든 미국이 쏘아올렸다. 미 정부는 자국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는 기업에 보조금과 연구개발 비용으로 총 530억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특히 자국 기업인 인텔에는 직접 보조금 최대 85억(약 12조원)과 대출 110억달러(약 16조원) 등 총 195억달러(약 26조원) 규모의 후한 지원을 해 주목을 받았다. 인공지능(AI) 등 최첨단 산업에 쓰일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반도체 공룡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미국 투자액은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미 애리조나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는 대만 TSMC는 당초 400억달러로 계획됐던 투자 규모를 650억달러로 확대하고 2030년까지 제 3공장을 추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받게 될 보조금은 66억달러(약 8조9천억원)로 여기에 50억달러(약 6조8천억원) 저리 대출까지 지원받을 예정이다.

대만 TSMC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뉴시스


□ 보조금 앞세워 기업 유치..TSMC·삼성 나란히 '추가 투자'

엔비디아와 퀄컴, 구글 등 AI 칩 고객이 몰린 현지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는 삼성전자도 텍사스주 테일러에 투입될 투자액을 기존 170억달러에서 440억달러로 두 배 이상 늘렸다. 첨단 제조공장과 패키징 시설이 추가로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예상되는 보조금 규모는 60조원을 넘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고대역폭메모리(HBM)로 고성능 메모리 시장에서 앞서나가는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5조2천억원을 들여 AI용 패키징 시설을 짓기로 하고, 보조금 신청서를 접수한 상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동안 인플레이션으로 투자액을 적게 책정한 면이 있겠지만, 결국은 (추가 투자가) AI 반도체 시장 확대에 대한 대비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패키징이 AI칩 경쟁력에서 주효하고, 맞춤형 제작으로 주문이 몰리는 추세여서 고객사와 가까운 거리에서 협의하는 게 수주 경쟁에서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승기를 잡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살포하고 있다. 지난 2일 일본 정부는 자국 반도체 기업인 라피더스에 보조금 5900엔(약 5조2600억원)을 추가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라피더스는 일본의 반도체 왕국 재건을 위해 2022년 도요타와 키옥시아 등 일본 대표 기업 8곳이 합심해 설립했다. 홋카이도에 짓고 있는 공장에서 웨이퍼 제조부터 후공정 패키징까지 도맡아 2027년이면 최첨단 공정인 2나노(10억분의 1미터) 반도체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일본은 글로벌 기업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부활을 위해 18조원의 보조금을 편성했는데, 반도체 공장을 신설하면 투자금의 최대 50%를 돌려준다. 대표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와 미국 마이크론, 삼성전자 등이 보조금 혜택을 받았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사진=뉴시스

□ 한국, 직접 보조금 신설 '만지작'

한국은 대기업에 대한 특혜라는 비판 때문에 보조금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다. 직접적인 보조금 지급 대신 투자 촉진 차원에서 최대 25% 세액공제를 해주는 식이었다. 최근 들어선 경쟁국 대비 정부 지원이 부실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재계에서 꼬리를 문다.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 사장과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등은 지난달 26일 산업부 장관과 만나 투자보조금 신설을 공식 건의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열린 '반도체 현안 점검회의'에서 "전시 상황에 맞먹는 수준의 총력 대응 체계를 갖추기 위해 반도체 산업 유치를 위한 투자 인센티브부터 전면 재점검하겠다"고 밝혀 주목된다.

반도체 산업 직접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국가마다 산업 여건이 달라서 편차가 있을 수 있다'는 기존 정부 입장에서 진일보한 메시지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급속하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보조금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이다. 새로운 반도체 신화를 쓰겠다는 선언이 공염불에 그쳐서는 안된다. 천문학적인 반도체 보조금을 쏟아붓는 국가대항전을 보고 있자면 승패가 정부 의지에 달렸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치병막여적시(治病莫如適時)라는 말이 있다. 천하의 명의 편작이라해도 때를 놓치면 병을 고칠 수 없다. 성장성 정체라는 병에 걸린 우리 경제를 치유하는 처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이슬 MTN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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