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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체크] '업계 관행'이라는 거래액 올려치기...1조 소송 번지나

신세계그룹-사모펀드 간 '풋옵션' 공방 쟁점'
이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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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그룹이 사모펀드들과 1조원짜리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자회사 쓱닷컴(SSG.COM)에 투자했던 재무적 투자자들(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블루런벤처스캐피탈·이하 '사모펀드')이 보유한 풋옵션 행사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이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이유는 신세계와 사모펀드 간 'GMV(총거래가치)'에 대한 이견 때문입니다.

GMV는 오랫동안 이커머스 업계에서 유용하게 쓰여왔습니다. GMV는 일정 기간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이뤄진 모든 거래액을 뜻합니다. 매출 인식 방식이 달라 회계상 매출액으로는 서로 견주기 어려운 업체들의 경영성과를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지표로 자주 활용됐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지표를 놓고 신세계와 사모펀드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겁니다. 이번 이슈체크에서 쓱닷컴 GMV 갈등 본질이 뭔지, 신세계그룹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정리합니다.

■ 충족된 줄 알았던 GMV 요건, 실제론 아니었나

2018년 초 신세계그룹은 ‘2023년 쓱닷컴 매출 10조원’을 목표로 외부로부터 1조원을 투자 받겠다고 발표합니다. 어피너티와 BRV캐피탈이 참여한 이 투자는 신세계그룹이 이커머스를 본격적으로 키우는 '신호탄'으로 주목 받았습니다.

어피너티와 BRV캐피탈은 2019년 3월 쓱닷컴 유상증자 때 각각 3500억원씩 총 7000억원을 투자해 쓱닷컴 지분 11.5%씩을 확보합니다. 이후 2022년 총 3000억원을 추가로 투입해 지분율을 각각 15%로 늘리죠. 이들은 현재 이마트(45.6%), 신세계(24.4%)에 이어 쓱닷컴 공동 3대 주주입니다.

주주간 계약 골자는 공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목할 대목은 풋옵션입니다. 2024년 5월부터 3년간 사모펀드 측이 그 권리를 가질 수 있죠. 쓱닷컴이 2023년 'GMV 요건' 또는 'IPO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때 그 효력이 생깁니다. 이 가운데 GMV 요건은 '2023년 말 기준 5조1000억원 아래일 경우'로 전해지죠.



이마트가 공개한 쓱닷컴 GMV는 2021년 말 5조7174억원, 2022년 말 5조9555억원입니다. 2023년분은 밝히지 않았으나 큰 이변이 없다면 5조1000억원은 뛰어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신세계는 2023년 사업보고서에 ‘주주간 계약에 따라 GMV 요건이 이미 충족’됐다고 적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이 풋옵션 요건이 실상 충족됐다고 못 박기 어렵다는 겁니다. 실제로 지난 4월 돌연 신세계와 사모펀드 간 풋옵션을 두고 갈등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사모펀드 측 고위 관계자도 “신세계 측과 GMV를 두고 협상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 밝혔습니다.

만약 풋옵션 요건이 미충족됐다면 사모펀드 측은 이 권리를 지난 1일부터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풋옵션 행사 가능 주식 수는 131만6492주, 행사가격은 주당 75만9595원으로 총 1조원 규모입니다. 풋옵션이 실제 행사된다면 대주주인 이마트 현금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 쓱닷컴 상품권 거래액을 중복 계상한 이유

이커머스 업계에 GMV가 통용되는 건 기업마다 사업 구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상품을 직접 매입해 파는 직매입 업체,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해주는 중개 플랫폼 역할만 하는 오픈마켓 업체가 혼재해 있죠. 이로 인해 매출 인식 방식도 업체별로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쿠팡과 11번가가 각각 1만원짜리 상품을 팔았다고 해봅시다. 직매입하는 쿠팡은 상품을 판 액수 1만원 모두 매출로 인식합니다. 반면 오픈마켓 업체 11번가는 판매액 가운데 수수료율(10%라면 1000원)만큼만 매출이 되죠. 같은 물건을 같은 값에 팔아도 두 회사 매출은 10배 차이가 납니다.

이런 매출 인식 차이로 인해 착시나 오해 소지가 생길 수 있습니다. 또 기업 간 매출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죠. 그래서 쓰는 게 바로 GMV로, 정해진 기간 팔린 상품 총액만 보자는 겁니다.

국내 기업들 사이 GMV는 나름 비중 있게 다뤄집니다. 네이버, 카페24, CJ ENM, 쏘카, 커넥트웨이브, 인크로스 등은 IR자료, 보도자료, 공시 등에 GMV를 밝힙니다. 증권가에서도 GMV를 활용해 이커머스 기업 가치를 산정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이번 풋옵션 이슈처럼 사모펀드의 재무적 투자나 기업 간 M&A에 있어 GMV를 핵심 지표로 활용하는 일도 있죠.

이토록 보편적으로 쓰이는 GMV에 실상 ‘부풀리기’ 가능성이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사모펀드 측은 쓱닷컴 상품권 판매액이 GMV에 중복 계상됐다고 지적합니다.



상품권은 회계적으로 ‘선수금’, 즉 부채입니다. 상품권을 팔았음에도 부채로 인식되는 게 이상해 보일 수 있는데, 실상 상품권은 재화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객에게 상품권이라 쓰인 종이(혹은 디지털자산)만 준 것이고, 고객이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면 미리 받은 돈(선수금)이 됩니다. 고객이 상품권으로 물건을 사거나 혹은 유효 기한 내 쓰지 않아야 비로소 매출로 인식되죠.

그런데 쓱닷컴은 상품권 판매, 상품권을 통한 상품 판매 모두 GMV에 반영한 듯합니다. 예컨대 고객이 1만원짜리 상품권을 사고 그 상품권으로 1만원짜리 물건을 사면 매출은 1만원입니다. 그런데 쓱닷컴은 GMV로 2만원을 잡았다는 겁니다. 사모펀드 측은 이런 식으로 중복 계상된 액수를 빼면 쓱닷컴의 2023년 실제 GMV는 5조1000억원을 넘지 않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 '관행적' 상품권 중복계상, 신세계그룹 재무 리스크 될 수도

이커머스 업계에 실제로 GMV를 아전인수격으로 쓰는 일은 적잖은 듯합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 상품권을 할인 판매해 GMV를 늘리는 경쟁이 업계에서 “관행적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쓱닷컴이 모바일 상품권을 3%가량 할인해 판 것도 인터넷에서 확인됩니다. 신세계 측이 GMV를 늘릴 의도를 갖고 그랬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상품권을 일정 수준 할인해 판 게 쓱닷컴으로선 GMV를 늘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겁니다.

과거 쓱닷컴에서 상품권을 3%가량 할인해 판 내역들이 인터넷 상 쉽게 확인됩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거래액 자체에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지적도 합니다. 특정 업체가 GMV를 늘리기 위해 수를 쓰더라도 타사가 알 방법은 제한적이란 겁니다. 업계가 GMV를 비롯해 다양한 지표들을 유리하게 해석, 집계하고 PR에 활용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홈쇼핑 업계에서 쓰이는 ‘취급액’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홈쇼핑에서 상품을 팔았다면 홈쇼핑업체의 매출은 해당 상품을 만든 업체로부터 받은 수수료율만큼입니다. 취급액 기준으론 홈쇼핑에서 판 상품액 전체로 기록된다고 합니다. 또 장기 렌탈 상품을 판매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렌탈업체가 렌탈기간동안 받을 예정인 총 렌탈료를 한꺼번에 취급액으로 잡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결국 쟁점은 쓱닷컴의 GMV를 어떻게 봐야 할지입니다. 사모펀드 측이 GMV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보고 풋옵션을 행사한다면, 신세계그룹은 일시에 현금 1조원이 빠져나가는 재무적 위험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2023년 이마트·신세계 연결기준 현금성자산, 차입금 규모. /출처=각 사 공시, 단위=억원

이마트와 신세계는 겉보기에 현금성 자산이 풍부한 듯 보입니다. 2023년 연결 기준으로 각각 2.18조, 0.96조를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차입금 규모가 가진 현금을 압도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마트는 총 차입금 7.87조원에 1년내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이 3.13조원이고요. 신세계도 총차입금 4.08조원에 단기차입금이 2.19조원에 이르죠. 실상 가진 돈 모두 빚으로 조달한 모양새입니다.

만약 양측 협상이 평행선으로 이어진다면 법적 분쟁까지 갈 수도 있습니다. 사모펀드 측 콜옵션 행사 기간이 2027년까지이긴 하나, 그들로선 기업공개 여부도 불투명한 주식에 돈을 넣기 부담스러울 겁니다. 또 펀드에 출자한 기관들이 사모펀드들에게 풋옵션을 행사하라고 압박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마트와 신세계 모두 최근 실적이나 재무 상황이 매우 안 좋습니다. 이런 가운데 1조원짜리 GMV 풋옵션 분쟁이 소송으로 번질 경우 신세계그룹 재무에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이들의 협상이 어떻게 될지 주목할 필요가 있는 이유입니다.

이일호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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