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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체크] '현금확보 혈안' K-배터리 기업들이 미국에 내다파는 '이것'

LG엔솔·SK온이 노크하는 미국 AMPC 거래시장 집중분석
이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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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 진출한 몇몇 한국 기업이 ‘세액공제 받을 권리’를 팔고 있어 눈길이 갑니다. 예를 들어 원래 세액공제로 100달러를 받을 권리가 있다면 그걸 95달러에 파는 ‘할인 유동화’를 하는 겁니다.

기업들이 파는 권리는 바로 'AMPC(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라는 것입니다. 그걸 팔겠다는 곳은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한화솔루션 같은 배터리·에너지 기업들이죠. 그렇다면 AMPC가 어디서 어떻게 거래되는지, 그걸 사는 자는 누구인지, 거래 규모는 어떻게 되는지 등에 궁금증이 생깁니다.

■ IRA가 K배터리 회사들의 미국 공장건설을 촉진한 이유

2022년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시행됐습니다. 자국 물가 상승을 억제하고 기후 변화 대응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인데요. 실상 그 이면엔 자국에 친환경 첨단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미국의 속내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나라 외교부 산하 외교안보연구소는 이 법에 대해 "글로벌 패권 지위를 공고히 하는 국가 전략의 일환"이라고 해석합니다. '경제안보'의 논리를 활용해 전략적 첨단기술 산업에 천문학적 보조금을 지원함으로써 상대적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거죠.

이 법은 한국 기업들에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관련 제도에 따라 미국에 제조 공장을 짓고 운영하면 세액공제 형태로 큰 돈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법이 생긴 이후 미국에 생산 기지를 짓는 국내 기업들이 많아진 상황입니다.

미국 정부가 주는 인센티브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요. 저희가 주목할 건 앞서 언급한 AMPC입니다. 지난해 12월 시행된 이 제도에 따라 미국 정부는 북미 지역에서 제조돼 판매되는 배터리 부품과 태양광·풍력 발전 부품, 핵심 광물 등에 대해 생산비용의 일부를 크레딧(Credit) 형태로 돌려주게 됩니다.

미국 IRA 법상 품목별 AMPC 규모. /자료출처=KITA ‘미국 IRA 시행지침이 우리나라 배터리 공급망에 미칠 영향’ 중

배터리 품목을 예로 들면, 국내 이차전지 제조업체가 미국에 공장을 만들고 제품을 만들어 팔면 미국 정부가 세액공제를 해줍니다. 배터리 셀은 1kWh당 35달러, 배터리 모듈은 1kWh당 10달러입니다. 양극재, 음극재, 전해액, 분리막 같은 배터리 핵심 물질의 생산비용의 10%를 보전해 줍니다. 이런 식으로 이차전지를 비롯해 태양광·풍력 에너지 장치, 인버터 등에 세액공제가 이뤄집니다.

이렇게 인센티브를 주는 건 ‘세금을 많이 돌려줄 테니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는 뜻입니다. 그 시그널에 맞춰 미국에 공장을 짓는 국내 기업들이 생겼죠. 이미 몇몇 기업은 상당한 규모의 크레딧를 받기로 돼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전기차에 들어가는 이차전지를 만드는 국내 배터리 3사입니다.

배터리 3사의 미국 공장 운영 현황(상단)과 2024년 1분기 실적·AMPC 현황. /출처=각 사 자료 재가공.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연간 200기가와트 넘게 제품을 생산합니다. 지난 1분기 실적 발표에서 밝힌 AMPC가 1890억원 규모였고요.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1570억원이었습니다. AMPC를 뺐다면 실제론 320억원 적자입니다. 실로 세액공제 덕분에 적자를 면한 겁니다.

SK온 실적과 AMPC에도 눈길이 갑니다. 현지 공장의 배터리 생산 규모가 150기가와트를 넘죠. 다만 지난 1분기 영업손실 3315억원에 AMPC는 385억원에 불과했습니다. 배터리 업황 악화로 미국 내 생산을 크게 줄인 영향이라 합니다. SK온이 지난해 4분기(2401억원) 수준으로 AMPC를 받을 수 있었다면 올해 1분기 영업손실액도 1000억원까지 내려갔을 겁니다.

■ 미국에서 택스 크레딧 거래가 활발한 이유

기업들이 미국 정부로부터 AMPC를 받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론 기업이 내야 할 법인세에서 공제하는 경우가 있고요. 둘째는 세금을 일단 다 내고 이후 정부로부터 현금으로 환급받는 방식이 있습니다. 다만 이 두 가지는 기업이 세금 신고서를 제출한 시점 이후에야 혜택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 환급을 받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는 겁니다.

이런 시차로 인해 돈이 급한 기업들로선 빠르게 현금화를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IRA에선 AMPC에 대해 '타인에게 이전할 수 있는 옵션'(transferability)도 부여합니다. 쉽게 말해 세액공제권리를 유동화하는 겁니다. 이 경우 현금으로 환급 받는 것보다 약 12~18개월 빠르게 크레딧을 현금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12월 태양광 분야에서 처음 세액공제를 거래한 두 기업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퍼스트 솔라’는 태양광 모듈을 제조하는 미국 기업입니다. 이곳은 지난해 12월 미국의 ‘파이저브’라는 핀테크 기업과 총 7억 달러 규모로 택스 크레딧 거래 계약을 맺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세액공제 크레딧이 거래된 가격입니다. 파이저브가 1달러 당 0.96달러를 내고 크레딧을 사기로 했죠.

매도자인 퍼스트 솔라는 이 크레딧을 뒀다면 미래에 1달러를 그대로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싼 가격에 팔아 현금화해 빠르게 재투자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매수자인 파이저브는 1달러당 약 4%의 이익을 챙깁니다. 물론 그 돈을 은행에 맡기거나 미국채를 샀다면 무위험 수익이 생겼을 테니 온전히 수익률 4%는 아니긴 합니다. 실제로 미국 내 택스 크레딧 거래는 그 할인율이 5~15% 수준에 이른다고 합니다.

미국 내 태양광 업종에선 택스 크레딧 거래가 활발히 이뤄진다고 합니다. 미국 태양광 시장은 2010년대부터 중반부터 급성장하기 시작했고, 특히 바이든 행정부 들어 연방정부와 주 정부 차원에서 세액공제 정책을 만든 2021년부턴 신규 발전 설비 가운데 태양광이 40% 넘게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KOTRA ‘미국의 태양광 정책 시장, 우리 기회와 도전 과제’ 중

미국 정부가 태양광 설비 투자에 따라 주는 세액공제(ITC)를 알아보죠. 2023~2033년까지 최소 세액 공제율은 6%입니다. 다만 미국 정부의 요구 수준(노동요건·지역 등)을 충족할 경우 최대 세액 공제율은 50%까지 오르게 됩니다. 세액공제율이 50%라는 건 내야 할 세금 가운데 절반을 깎아주는 거니 엄청난 액수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앞서 말했듯 세액공제율이 높더라도 설비를 투자하는 기업이 실제 혜택을 보기까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택스 크레딧 거래 시장도 커지고 있죠. 택스 크레딧을 중개하는 업체 크럭스(Crux)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미국에서 거래된 택스 크레딧 규모가 약 70억~90억 달러(약 10조~12조원)이라 합니다.

■ 미국 텍스 크레딧 거래방식 (feat. Basis Climate)

이처럼 세액공제 현금화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생기다 보니 택스 크레딧 거래를 주선하는 금융사, 플랫폼 역할을 하는 마켓플레이스(Marketplace)도 생겨났습니다.

<이슈체크>팀은 미국 택스 크레딧 마켓플레이스 가운데 한 곳인 ‘베이시스 클라이메이트’(Basis Climate)라는 업체와 이메일을 주고 받았습니다. 이곳의 설명을 통해 미국 현지에서 택스 크레딧이 어떻게 거래되는지 설명하겠습니다.



① 크레딧을 판매하려는 업체가 이 플랫폼에 자신들의 크레딧을 등록합니다. 잠재 구매자들은 그 사이트에서 어떤 크레딧이 판매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② 구매자가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플랫폼 업체와 함께 구매에 대한 텀 시트(Term Sheet)를 작성합니다. 텀 시트에는 투자자가 구매자에게 제시하는 요건이 담겨 있습니다.


③ 구매자와 판매자 간 협상이 된다면 M&A 거래처럼 실사 과정도 거칩니다. 판매자가 크레딧을 제대로 환급받을 수 있는 상황인지, 크레딧의 가치가 거래되는 가격과 맞는지, 그밖에 문제 소지는 없는지 등을 실사를 통해 확인하죠.

④ 실사가 마무리되면 양측 간에 실거래가 이뤄지게 되고요. 판매자가 크레딧을 이전한 뒤에는 미국 세무당국에 해당 거래를 등록하게 됩니다.

비교적 간단해 보입니다. 실상 플랫폼을 통해 물건을 거래하는 것과 비슷하죠. 참고로 택스 크레딧은 최초 이를 수령한 업체로부터 단 한 차례만 팔릴 수 있다고 합니다. 한 번 크레딧을 산 뒤 다른 이에게 팔 수는 없습니다.

규모도 적지 않습니다. 베이시스 클라이메이트는 자사에서 지금까지 2억5000만 달러 규모로 다양한 종류의 택스 크레딧 거래가 있었고, 건당 작게는 60만 달러에서 크게는 5000만 달러 이상의 거래가 통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알렸습니다. 또 미국에서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한국 기업 대여섯 곳과도 대화를 나누고 거래를 탐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내용을 소개해준 베이시스 클라이메이트의 데릭 실버맨(Derek Silverman)은 “현재 AMPC의 경우 위험이 적다고 여겨져 크레딧을 사려는 수요자가 많다. 반면 크레딧이 만들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공급은 아직 부족하다”고 전했습니다.

■ 업황 악화에 돈 고갈된 기업들, AMPC 매각 속도내나

앞서 이야기했지만, 기업들이 이런 식으로 크레딧을 현금화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돈이 부족해서죠. AMPC를 현금화하는 곳으로 알려진 회사들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그리고 한화솔루션입니다. 각 사의 2024년 1분기 연결재무제표에 나온 현금성자산과 1년 내 갚아야 할 단기 차입금, 그리고 회사가 컨퍼런스콜 등을 통해 알린 2024년 설비투자를 더한 건데요. 보시다시피 세 회사 모두 현재 가지고 있는 현금보다 차입금과 투자금이 훨씬 더 많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온의 경우 올해까지 배터리 시장 상황이 안 좋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요. 한화솔루션도 지난 1분기 기준으로 5년만에 적자를 기록하면서 사업 상황이 안 좋습니다. 그런 만큼 향후 세액공제 형태로 받을 수 있는 크레딧에 대해 할인 유동화를 한다면 회사의 재무 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어 보입니다.

다만 AMPC라는 게 기업이 생산해 판매한 만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보니, 현지에서 제조와 판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 규모도 줄어들 수 있어 보입니다. 향후 이들 기업을 볼 때 AMPC가 어떻게 변할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일호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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