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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밖에서] 아이패드 가격 10% 할인하는 애플의 속내

윤석진 기자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육이 나라의 백 년을 좌우할 큰 계획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학교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하지 못했습니다. 교사 한 명이 학생 여러명에게 같은 내용을 수업하는 방식은 3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마차가 자율주행 자동차로 바뀌고 편지가 SNS로 바뀌는 동안 교실은 성역처럼 남아 네모 반듯한 모습을 유지했습니다. 최근에 들어서야 달라질 조짐이 보입니다. 코로나19와 챗GPT 덕분입니다. 학교가 가지 않아도, 선생님이 없어도 공부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머니투데이방송 MTN은 교육 혁명 사례를 짚어보기 위해 '교실밖에서' 코너를 준비했습니다.
사진제공=뉴스1

동네 자전거포에서 35만원에 주고 산 자이언트 이스케이프3를 10년 넘게 탔다. 그동안 안장에 텐트와 배낭을 달고 양평과 동해, 부산을 누볐다. 이 정도 강행군이면 고장이 날 만도 한데 멀쩡해서 바꾸지도 못했다. 브레이크 패드가 달아서 교체한 것 빼고는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누군가 자전거를 산다고 말하면 자이언트를 추천한다.

자이언트 만이 아니다. SK텔레콤은 20년 넘게 쓰고 있다. 의정부 지하상가에서 폴더폰을 개통한 이후 지금까지 통신사를 바꾸면 돈을 주거나 기기 값을 내주겠다는 유혹이 있었지만, SK만 썼다. 라면은 안성탕면, 과자는 맛동산, 김밥은 치즈 김밥이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만,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새로운 걸 알아가는 과정이 귀찮다.

경제학에는 경로의존성이란 개념이 있다. 과거에 형성된 제도, 규격, 제품에 익숙해져 이것이 비효율적인 것으로 밝혀져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사회 현상을 말한다. 이것과 연결되는 게 선점 우위 효과다. 일찍 진입할 수록 기술 우위를 가지며 유통망과 충성 고객을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경영학 논리다. 선점 우위 효과는 남을 모방하고 동조하게 하는 밴드왜건 효과로도 이어진다.

애플 제품만 쓰는 사람의 심리도 그럴까. 태블릿PC만 놓고 봤을 때, 경로의존성 효과를 누리고 있는 기업은 애플이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태블릿 세계 시장 1위는 38.3%를 차지한 애플이다. 2위와 3위는 삼성전자(19%)와 레노버(8%)다. 경로의존성 이론을 감안하면, 이러한 순위는 쉽게 뒤바뀌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학교만 놓고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테크 공룡 애플도 학교에선 한 수 접고 들어간다. 미국 학교에선 구글의 크롬북이 약 60%의 점유율로 압도적인 1위다. 전 세계 크롬북 판매의 80%가 미국 학교(K-12)에서 이뤄지고 있다. 구글이 학교 시장을 선점한 동력 중 하나가 저렴한 가격이다. 사양에 따라 다르지만 크롬북은 230달러(31만원) 정도면 살 수 있다. 애플이 학교 보급용 아이패드 가격을 329달러에서 299달러(40만원)로 내렸지만, 여전히 크롬북이 더 싸다.

일반 소비자라면 비싸도 성능만 좋다면 아이패드를 구매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예산이 빠듯한 학교다. 태블릿PC 말고도 이래저래 지출이 많은 학교 입장에선 몇 푼이라도 저렴한 걸 사는 게 부담이 적다. 자체 앱 생태계를 구축한 아이패드보다 안정성 면에서 떨어질 수 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하겠다는 학교가 대다수다.

쓰기 편하다는 이점도 있다. 간편하게 로그인할 수 있다. 파일을 저장하고 관리하는 과정도 단순하다. 게다가 구글 클래스룸(Google Classroom), 지스윗(G Suite for Education) 등 온라인 학습 도구들은 학교에 무료로 제공된다. 또한 크롬북은 안드로이드 OS 기반 제품이 그렇듯 플레이스토어를 통해 다양한 앱을 이용할 수 있다. 콘텐츠의 확장성 면에서 자체 교육용 앱을 활용하는 아이패드보다 우위에 있는 셈이다.

애플도 뒷짐지고 있지는 않았다. 가격 할인으로 진입 장벽을 낮췄다. 애플은 매 신학기마다 학생과 교사에게 맥북과 아이패드 등을 할인해주고 있다. 나라 별로 할인율이 다르지만, 보통 일반 소비자가 기준으로 약 10% 정도 싸게 판다. 애플 뮤직도 할인가에 제공한다. 일반 이용 가격은 10.99달러이나 학생에겐 5.99달러만 받는다.

저가형 아이패드가 출시될 거란 소문도 있다. 몇몇 미국 언론들은 애플이 저렴한 부품을 이용한 보급형 맥북을 선보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출시 예상 시점은 올해 하반기다.

구글은 방어에 나섰다. 지난해 말 크롬북의 자동업데이트 기간을 8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대상은 2021년 이전에 출시된 기기로 제한했다. 그동안 크롬북은 3~4년 정도 쓰는 게 고작이었다. U.S. PIRG Education Fund는 크롬북의 평균 수명이 8년으로 늘면 학교들이 18억달러, 약 2조4400억원의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단순히 태블릿PC 몇 개 더 팔겠다고 이러는 게 아니다. 학교에서 얻는 수 있는 수익은 많지 않다. 기기를 제외한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무료로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테크 공룡들은 지금이 아닌 미래를 보고 있다. 코흘리개 학생들이 구매력을 갖춘 성인이 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코트라는 에듀테크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IT 기업들이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브랜드를 노출시켜 인지도와 선호도를 형성한 후, 졸업 후에도 해당 브랜드의 제품을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 공교육도 테크 공룡들의 사정권 안에 있다. 국내 학교들은 구글 크롬북, 네이버 웨일북, MS 윈도우북, 애플 아이패드, 삼성 갤럭시 등을 사용하고 있다. 10년 후 학생들의 책상엔 어떤 기업의 태블릿PC가 올라가 있을까. 그 기업은 나처럼 게으른 사람들의 성원에 힘입어 지금보다 더 큰 회사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윤석진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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