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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체크] K-조선, 미국 향하는 진짜 이유

존스법에 몰락 직전 美 조선업
다른 나라는 이미 미국 시장 진출…치열한 경쟁 예상
나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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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이 지난달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조선소를 1380억원에 인수했습니다. 국내 조선업체가 미국 조선소를 인수한 건 처음이라 더욱 주목을 받았는데요. HD한국조선해양 역시 미국 조선소 인수를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시장 진출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국내 조선사들의 미국 진출은 앞으로 더욱 커질 MRO(유지·정비·보수) 시장을 겨냥한 듯 보입니다. 한화오션의 필리조선소 인수는 미국 방산 진출을 위한 교두보라는 평가도 나오는데요. 하지만 K-조선의 미국 진출을 이해하기 위해선 쇠락 중인 미국 조선업을 빼놓고 이야기할 순 없습니다.

■법 때문에 쇠락한 미국의 조선업

미국은 과거 조선 강국이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에는 2700척 넘는 상선과 군함을 건조하는 등 엄청난 생산 능력을 발휘한 적도 있습니다. 1940년대 세계 상선 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달했고 1970년대 선박 생산능력은 세계 1위였습니다.

하지만 미국 조선업이 쇠락하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글로벌 조선 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0.04%에 불과했습니다. 사실상 영향력이 제로(0)인 것이죠. 현재는 중국(59%)과 한국(23%)이 조선 시장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미국 조선업의 쇠락 원인으로는 상선법이 꼽힙니다. 존스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은 자국 조선업 육성을 위해 1920년에 제정됐습니다. 핵심은 미국 해안 내 여객선과 화물선은 자국에서 건조돼야 한다는 건데요.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을 향하는 선박은 미국산(産)이어야 합니다. 한화오션이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것도 존스법 영향이 큽니다.

존스법을 등에 업은 미국 조선사는 1920~1970년대까지 가파르게 성장합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안정적인 일감을 받으면서 폭풍 성장을 거듭하죠. 미국이 조선업 1위를 달성했던 적도 이 시기입니다.

하지만 미국 조선업의 쇠락을 가져온 것도 존스법이었습니다. 글로벌 조선사와 경쟁 없이 시장 나눠먹기에 치중하다보니 방만한 경영이 이어졌습니다. 설비 투자를 축소하고 오직 비용 효율화에 초점이 맞춰졌고 설비 노후화로 건조 능력은 떨어집니다.

비효율화가 지속되면서 뱃값은 천정부지로 뛰었습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미국 선박은 지금도 다른 글로벌 조선사 대비 4~5배 비쌉니다. 한국무역협회는 "존스법 유지를 위해 많은 선박 회사가 비효율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건조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이에 따라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비싼 선박을 구입한 선주들이 운송비를 높게 받으면서 화주들은 선박이 아닌 철도, 항공, 트럭 등의 대체 운송 수단을 찾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선박 물동량이 줄어들자 선박 수요(주문)도 감소합니다. 일감이 줄어들면서 조선사들의 건조 능력은 떨어집니다.

1980년 집권한 레이건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조선업 몰락의 방아쇠를 당깁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한 레이건 정부는 자유시장경제에 반한다는 이유로 조선업에 대한 지원을 끊었습니다. 아래 표를 보시면 레이건 정부의 집권 시기(Reagan presidency) 상선 발주(파란색 그래프)는 수직 낙하하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현재는 '매년 10척의 선박을 건조하는 것도 힘들다'는 자조적인 보고서(GAO)도 나옵니다.


미 국방부를 포함한 정부 부처에서는 존스법의 폐지를 주장합니다. 하지만 법 폐지가 쉽진 않아보입니다. 조선업 노동자, 관련 기업 등의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존스법 폐지에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내에서 매년 총기 사고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지만 총기 소유 법안은 폐지할 수 없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미국 전략 보고서 "우방국과 MRO 협력 필수"

미국은 현재 군함, 특수선 중심으로 선박을 늘려야 합니다. 잠재적 위협 국가인 중국은 빠르게 군함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이미 함정 척 수 기준으로는 중국이 추월한 지 오래죠. 중국의 2025년 예상 보유 함정 수는 400척으로 미국(287척)과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전투 수행 능력 면에서 미국이 여전히 앞서있습니다. 하지만 함정 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면 해양 패권을 넘겨줘야 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미 해군정보국은 '중국의 조선 능력이 미국의 233배에 달한다'는 자체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미국이 특수선을 늘리기 위해선 두가지가 병행돼야 합니다. ①군함 발주를 늘리고 ②기존 보유 함대의 퇴역 시기를 최대한 뒤로 미루는 겁니다. 우리나라 조선사들은 현재 기존 보유 함대를 유지·정비·보수하는 MRO 시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최근 MRO 시장을 열어둘 준비를 하는 중입니다. 미 국방부가 지난 1월 발표한 '국가방위산업전략서(NDIS)'에 '국방부(DOD)는 동맹국들과 협력해 방위 능력을 키우면서 MRO를 협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는데요. 국가방위산업전략서는 향후 3~5년 간 방위 정책을 제시하는 일종의 안내서입니다. 자국의 조선업 경쟁력이 밀리니 우방국과 협력해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군함의 수명은 평균 40년 내외이지만 적재적소에 유지,보수를 받는다면 퇴역 시기를 미룰 수 있습니다. 앞서 본 레이건 정부에 급격히 늘어난 군함 수가 향후 MRO 수요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모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해군 함정 MRO 시장 규모는 올해 약 78조원(577억6000만 달러)으로 그중 약 20조원이 미국에서 나옵니다.

한화오션은 필리조선소를 통해 MRO에 본격 뛰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MRO의 경우 존스법의 영향을 받지 않지만 비용 절감 측면을 고려하면 미국 조선소가 필요합니다. 필리조선소는 필라델피아 해군 기지 인근에 위치해 있는데요. 향후 옆 해군 기지의 MRO 수요를 충당하겠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한발 앞서 간 우방국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닙니다. 미국 조선사의 대부분 시설이 노후화돼 있는 만큼 설비 확충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꽤나 많은 자금이 투입돼야 하겠죠. 투입 대비 효율이 나올지 두고 봐야 합니다. 미국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한국 대비 3~4배 높다는 것도 부담입니다.

이번에 인수한 필리조선소의 상황을 한번 보겠습니다. 필리조선소 규모는 우리나라 조선소의 약 3분의1 수준으로 소형 조선소에 해당됩니다. 1998년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총 31척을 건조했는데요. 연 평균 1.2척 수준으로 생산력이 높지 않습니다.

적자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필리조선소는 지난해 99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5년 연속 적자를 내는 중입니다. 계속된 적자에 재무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필리조선소의 지난해 부채비율은 4946%에 달합니다. 한화오션 측은 "추가적인 자금 투입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재무상황만 보면 추가적인 자금 지원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HD한국조선해양이 현재 미국 조선소 인수에 쉽사리 나서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노후화 된 조선사가 워낙 많다 보니 옥석을 가리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죠. 이에 대해 HD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미국 조선사 인수 검토를 위해 내부에서 매우 신중하게 접근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MRO를 포함한 미국 방산 시장을 두고 우방국 간 경쟁도 치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미 미국의 우방국과 비교했을 때 시장 진출이 한발 늦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특히 MRO 부문에서 일본과 경쟁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일본은 이미 MRO 시장에 진입한 상황입니다. 호주 기업 오스탈은 오래 전 미국 법인을 설립해 관련 사업을 진행해왔습니다. 그간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시장을 선점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나라 조선사들은 장기적으로 미국 군함 수주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이탈리아 조선사 핀칸티에리가 미국 호위함 수주 계약을 따내면서 한발 빠르게 진입했습니다. 앞으로도 미국 방산 시장을 두고 우방국들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나은수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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