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모지 개척 비결 '의리'…몬테스 와인 그룹의 파트너십은
몬테스-나라셀라, 27년간의 동행수출 비중 높을수록 와인 수입사 관계 중요
실적 효율성보다 장기 브랜드 가치 따져야
이수현 기자
칠레 산티아고에 위치한 해산물 레스토랑 '코코'(사진=MTN) |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 있는 유명 해산물 레스토랑 '코코'는 지난 2008년 화재로 가게가 전소된 적이 있다. 2년 후 힘겹게 식당 재건에 나섰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손을 내민 건 몬테스(Montes) 와인그룹이었다. 수개월간 외상으로 와인을 공급한데다 식당 파라솔까지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수출 중심의 몬테스 와인이 지난 1993년 칠레 내수 시장에 진출했을 때, 처음으로 와인 리스팅에 몬테스의 이름을 올려준 곳이 '코코'이기 때문이다. 당시 다른 칠레 와인에 비해 가격은 높고 인지도는 낮았던 몬테스는 거래처 확보가 쉽지 않았다. 글로벌 와인 회사로 성장한 몬테스는 어려울 때 도와줬던 코코를 잊지 않았고, 그 인연은 3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진=MTN) |
■ 와인도, 사람도 '인내심'
몬테스그룹은 100여개국이 넘는 곳에 와인을 수출하면서도 각국의 수입사를 쉽게 바꾸지 않는 회사다. 코코의 사례처럼 작은 식당부터 거래를 시작하며 신뢰로 성장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몬테스의 한국 수입사는 나라셀라인데, 이 인연도 27년째다. 와인 사업에서 인내심이 중요한 것처럼, 사람도 포도처럼 오래 두고 봐야 한다는 철학은 몬테스의 핵심 가치 가운데 하나다.
마승철 나라셀라 회장은 나라셀라를 인수한지 얼마되지 않아 칠레에 초청받았다. 나라셀라의 주인이 바뀌면서 몬테스를 노리는 국내 대기업의 견제도 있던 시기다.
아우렐리오 몬테스(Aurelio Montes) 몬테스그룹 회장과 마 회장의 만남은 임직원들과 함께 바베큐와 와인을 함께 즐기는 파티로 시작했지만, 웃고 떠들던 파티가 끝나자 몬테스 회장은 마 회장을 따로 불러 트럭에 태우고는 세시간에 걸친 압박 인적성 면접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며칠 회사에 출근하는지, 가족관계부터 나라셀라 인수 배경까지. 몬테스 회장은 마 회장의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싶어했다. '무뚝뚝한 부산 남자' 마 회장의 속내를 알기 어려웠고, 계속 와인 사업을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나라셀라의 값을 올려서 다시 팔려고 하는지도 미지수였다.
외국계 회사인 디아지오에서 근무했던 마 회장은 영어로 직접 소통하며 이 같은 글로벌 회사의 면접 방식에 진정성으로 승부했다.
마승철 나라셀라 회장은 "한국은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고급 주류에 대한 수요와 주류 문화가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라는 점을 설명했다"며 "가족 경영으로 운영되는 글로벌 와인 회사라는 것을 감안해 장남을 인턴으로 써보라고 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아우렐리오 몬테스 주니어 와인메이커, 마승철 나라셀라 회장(사진=MTN) |
■오래, 자주 봐야 아름답다
실제로 두 회장의 가교 역할을 한 것은 마태호 나라셀라 이사였다. 마 회장의 요청에도 몬테스는 측은 과거 경험들로 마 이사를 불러들이는 것을 꺼려했다. 유럽 지역 파트너의 가족이 와이너리 일을 배우겠다고 와서는 특정 음식이나 차, 숙소 등 지나친 요구를 했기 때문이다.
반면 마태호 이사는 묵묵하고 성실하게 일하며 몬테스의 신뢰를 쌓았다. 특급 대우를 바라지 않았고, 와인 탱크 청소 등의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버지처럼 과묵하지만, 맡은 일을 조용히 다 해내는 마 이사의 뚝심은 몬테스 그룹의 큰 호감을 샀다.
특히 아우렐리오 몬테스 주니어(Aurelio Montes Jr.)와 마 이사는 카리스마 있는 아버지의 아들로 가족 사업을 이어야 하는 2세라는 공통점과 함께 상당히 가까워졌다. 둘은 함께 포도밭을 둘러보며 수확 지점을 표시하는 일을 주로 했다. 몬테스 주니어 와인 메이커는 "동네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컸다"며 "밝고 긍정적인 친구로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 이사의 칠레 근무 이후로 나라셀라와 몬테스의 관계는 흔들림 없이 굳건해졌다. 나라셀라는 한국 시장에서 매년 높은 성장률로 몬테스의 신뢰에 보답해왔다. 몬테스 회장과 마 회장은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는 매년 서로를 방문할 정도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MTN) |
모든 수출 중심의 와인 회사에서 각국의 와인 수입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와인 제조에 있어서 아무리 전문가여도 각국의 유통 환경이나 법규, 소비자의 수요를 자세히 알긴 어렵기 때문이다.
와인 수입사가 와인의 정체성을 완전히 다르게 내세우면 타격이 커진다. 예를 들어 비싼 고급 와인을 싼 값에 경쟁적으로 팔아치우면 당장의 매출은 올라도 장기적으로는 와인 브랜드가 훼손되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와인 품질보다 가격을 너무 높게 책정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는 경우도 큰 문제가 된다. 와인 회사가 한 국가에서 수입사와의 문제로 수년간 다시 시장에 재진출을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사례다.
대형 와인회사들은 위험을 감수하고도 효율성을 위해 파트너를 자주 바꾸는 경우가 있지만, 몬테스는 장기적인 브랜드 가치의 관점에서 가치관을 공유하는 수입사와 오랜 관계를 유지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카를로스 세라노(Carlos Serrano) 몬테스그룹 이사는 "몬테스는 '좋아하는 사람'과 일한다는 철학이 있다"며 "나라셀라와 마 회장은 와인에 대한 공감대와 오랜 시간에 걸친 역사를 공유하는 관계로, 중요한 시장인 한국에서 전적으로 신뢰하는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이수현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