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밖에서] '초등의대반 방지법' 만들어도 선행학습 못 막는다
윤석진 기자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육이 나라의 백 년을 좌우할 큰 계획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학교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하지 못했습니다. 교사 한 명이 학생 여러명에게 같은 내용을 수업하는 방식은 3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마차가 자율주행 자동차로 바뀌고 편지가 SNS로 바뀌는 동안 교실은 성역처럼 남아 네모 반듯한 모습을 유지했습니다. 최근에 들어서야 달라질 조짐이 보입니다. 코로나19와 챗GPT 덕분입니다. 학교가 가지 않아도, 선생님이 없어도 공부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머니투데이방송 MTN은 교육 혁명 사례를 짚어보기 위해 '교실밖에서' 코너를 준비했습니다.
사진제공=뉴스1 |
끝나고 나오면 젖은 팬티를 입은 채로 추하게 찡그린 얼굴 사진을 봐야 하는 배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푯말에 쓰여있는 대로 50분 정도를 기다렸다. 지척에 선착장이 보였다. 드디어 우리 차례구나, 할 무렵 한 무리의 아이들이 나를 앞질러갔다. 웃돈을 주고 매직패스를 끊은 애들이었다.
옆에서 지루한 시간을 함께 견디던 딸이 저 언니들은 왜 그냥 들어가냐고 물었다. 돈을 더 내면 줄을 안 서도 된다고,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하려다 그러게 왜 그냥 들어갈까 하고 받은 말을 되돌려 주었다. 다 우울한 기분으로 배에 올랐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돈을 더 썼다면 줄 서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놀이 기구 타는 시간이 늘었을 것이다. 다음 번 방문엔 무조건 매직패스를 사서 합법적인 새치기를 하리라 다짐했다.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시키는 부모의 마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명문대 입시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금전적인 부담을 기꺼이 짊어지는 것이다.
내 돈으로 내 자식을 가르치는 걸 누가 뭐라고 하긴 어렵다. 더 나은 재화와 서비스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우리는 쾌적한 여행을 위해 비즈니스석을 이용하고 뮤지컬 배우를 가까이에서 보려고 R석을 예매한다.
그런데 유독 선행학습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처럼 돈의 유무에 따라 대학의 이름과 아이의 미래가 결정되는 걸 내심 불편해한다. 일종의 반칙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교양 만화가 이원복 교수는 <먼나라 이웃나라, 우리나라편>에서 선행학습을 '출발선을 무시하고 결승선에서 대기하는 불공정한 경기'라고 평했다.
그런데 유독 선행학습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처럼 돈의 유무에 따라 대학의 이름과 아이의 미래가 결정되는 걸 내심 불편해한다. 일종의 반칙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교양 만화가 이원복 교수는 <먼나라 이웃나라, 우리나라편>에서 선행학습을 '출발선을 무시하고 결승선에서 대기하는 불공정한 경기'라고 평했다.
선행교육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4년 9월부터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이른바 선행학습 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선행학습이 정상적인 교육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학업에의 흥미를 저하시키고 학부모에게 과도한 사교육비를 부담하게 한다는 이유로 선행학습을 금지 시켰다.
그런데 사교육 시장은 오히려 커졌다. 초·중·고 사교육비는 2020년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했을 뿐 2021년 23조4000억원, 2022년 26조원, 지난해 27조1000억원으로 매년 증가했다. 선행학습의 온상인 학원이 금지 대상에서 제외된 영향이 크다. 학원은 학교가 제공하지 않는 선행학습 반을 운영하며 돈을 벌어왔다. 학교가 초등학교 5학년에게 분수의 덧셈과 뺄셈을 가르치는 동안 일부 학원은 미분·적분을 가르쳤다. 선행학습 세계에선 1, 2년 정도 앞서는 건 선행으로 쳐주지도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학원들은 학부모들의 불안한 심리를 파고든다. 초등학생에게 중고등학교 수학 문제를 내고 못 풀면 면박을 주는 영업은 기본이고,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는다고 협박하고 미리 배워 놓아야 앞서갈 수 있다고 회유한다. 한 번 불붙은 선행학습은 또 다른 선행학습을 낳았다. 대치동 학원가에선 상급 학원에 가기 위한 선행과 그를 위한 선행이 정규 코스처럼 짜여 있다.
선행학습은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15년에 공개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선행학습 효과 관련 논문 11편 가운데 9편은 선행학습 효과가 없거나 미미하다고 결론 내렸다.
진도가 얼마나 빠른지 여부를 비롯해 사교육 시간과 비용이 학습 성취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교육 시장 규모가 증명하듯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학부모는 드물다.
소수이긴 하지만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존재하고, 실제로 주변에서 선행교육으로 스카이에 간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라는 단기 목표에 목숨을 건 학부모들 입장에서 그런 말은 현실 감각 없는 학자들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진도가 얼마나 빠른지 여부를 비롯해 사교육 시간과 비용이 학습 성취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교육 시장 규모가 증명하듯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학부모는 드물다.
소수이긴 하지만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존재하고, 실제로 주변에서 선행교육으로 스카이에 간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라는 단기 목표에 목숨을 건 학부모들 입장에서 그런 말은 현실 감각 없는 학자들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정부는 최근 학부모의 불안 심리를 악용하는 사교육에 대한 제재에 나섰다. 초등의대반 같은 선행학습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선행학습 학원을 상대로 칼을 빼들었다.
하지만 그 칼은 장난감 칼이다. 아무것도 자를 수 없을 뿐 아니라 겁도 못 준다. 선행학습 금지법은 학원의 허위·과장 광고를 금지하지만, 처벌하지 못한다. 행정부처인 시도 교육지원청이 광고 금지를 명령해도 안 따르면 그만이다.
선행학습 자체를 막지도 못한다. 선행학습으로 스카이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광고를 지적할 순 있지만 처벌할 수는 없고 스카이 대학반을 열고 초등학생에게 미적분을 가르치는 학원을 막을 수도 없다.
선행학습 금지법은 있으나 마나 한 법이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초등의대반 방지법 제정을 제안한 배경이다. 법의 미비점을 보완하겠다는 건데, 과연 선행교육 열풍이 법조문 하나로 바뀔지 의문이다.
하지만 그 칼은 장난감 칼이다. 아무것도 자를 수 없을 뿐 아니라 겁도 못 준다. 선행학습 금지법은 학원의 허위·과장 광고를 금지하지만, 처벌하지 못한다. 행정부처인 시도 교육지원청이 광고 금지를 명령해도 안 따르면 그만이다.
선행학습 자체를 막지도 못한다. 선행학습으로 스카이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광고를 지적할 순 있지만 처벌할 수는 없고 스카이 대학반을 열고 초등학생에게 미적분을 가르치는 학원을 막을 수도 없다.
선행학습 금지법은 있으나 마나 한 법이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초등의대반 방지법 제정을 제안한 배경이다. 법의 미비점을 보완하겠다는 건데, 과연 선행교육 열풍이 법조문 하나로 바뀔지 의문이다.
결국 사교육 문제의 근복적인 해결책은 공교육 강화다. 공교육이 믿을 만 했다면 사교육이 이렇게 까지 성장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정부는 공교육 강화도 추진하고 있다. 올바른 시도다. 교육부의 공교육 강화 전략은 디지털화이고,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가 있다. AI교과서가 학생 데이터 기반의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면 학원에 갈 이유가 사라질 것이라는 논리다.
교육부는 이 점을 명확히 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6월 공교육 제고 방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AI 디지털교과서가 변화를 촉발하면 입시 제도 등 난제 중의 난제인 입시나 사교육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말 그럴까. AI교과서를 둘러싼 수많은 논란이 존재하지만, 꼭 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 놀이기구를 늦게 타고, 불편한 자리에 앉아 이동하고 먼 발치에서 뮤지컬을 보낸 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돈이 교육의 질을 좌우하는 건 곤란하다. 공교육이 제 역할을 다 한다면 선행교육의 효과성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윤석진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