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 인사이드] 빅테크 투자 과했나..대혼돈 AI반도체 앞날은?
"투자 수익 언제?" 제동 걸린 AI 랠리미 경기침체 공포 겹치며 반도체 패닉셀
엔비디아 직격탄, SK하닉 주가 -10.4% 수직하락
김이슬 기자
구글 본사./ 사진=뉴시스 |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대표 빅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에 비용을 쏟아붓고 있지만, 최근 실적발표에서 지출 대비 실망스러운 매출 성적표를 내놓으면서 AI 거품론이 확산하고 있다. AI 열풍과 함께 상반기 증시 랠리를 주도했던 반도체 시장이 크게 흔들리는 가운데,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AI칩 생산확대를 예고하며 시장 호조가 지속될 거라는 전망에 힘을 보탰지만 회의론은 여전하다. 미국 중앙은행의 금리인하 피벗 기대감에도 경기 둔화지표가 엔비디아 등 기술주를 억누르는 변덕스러운 시장 환경 역시 AI 대표 수혜주인 반도체 업종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하반기 AI반도체 시장을 감도는 이상기류는 생성형 AI 관련 투자를 늘리고 있는 빅테크들의 수익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우려가 확산한 데 따른 것이다. 핵심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지연되면 AI반도체 대장주인 엔비디아의 AI 가속기를 필두로 밸류체인으로 묶이는 SK하이닉스·삼성전자·한미반도체 등 고대역폭메모리(HBM) 및 TC 본더 장비 수요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AI에 막대한 비용 쏟았는데, 실적 실망"…엔비디아 등 반도체株 우수수
최근 MS와 구글 등 2분기 실적발표에서는 AI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음에도 핵심 사업인 클라우드 부문 매출 성장이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MS가 AI 등에 투입한 자본지출 비용은 190억달러로 1년 전보다 78% 증가했으나,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의 매출 증가율은 29%로 직전 분기(31%)보다 둔화했다. 같은 기간 구글 역시 자본지출이 132달러로 91% 늘었지만, AI 관련 수익화가 지연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AI 경쟁에 합류한 아마존은 2분기 매출이 1479억8천만달러로 전망치를 하회했는데, 자본지출은 50% 증가한 176억달러에 달해 시장 예상치(164억1천만달러)를 웃돌았다. AI 투자 효용에 대한 의구심으로 지난 일주일간 MS(-6.2%), 구글(-6.06%) 주가가 하락했다.
AI반도체 시장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 반도체주가 직격탄을 맞았다. 1일(현지시각) 엔비디아 주가는 109.21달러로 한달 새 12% 이상 하락했다. 31일 미 연준이 9월 금리인하 가능성을 열어두며 전날 7% 하락에서 12.8% 급등하기도 했으나, 미 제조업 경기침체 신호와 인텔의 실적 어닝쇼크가 연이어 나오면서 다시 주가를 끌어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엔비디아를 둘러싼 악재는 또 있다. 대형 고객사인 애플이 AI 모델을 학습하는 데 엔비디아 대신 구글이 만든 칩을 사용하기로 하면서 독점에 균열을 냈기 때문이다. 시장은 빅테크들이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엔비디아 AI칩 구매를 중단하고 대안을 찾는 신호탄이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업종 전반에 먹구름이 끼면서 엔비디아는 물론 AMD와 퀄컴, 인텔 등 대표 종목으로 이뤄진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 역시 한달 새 11.3% 떨어진 상태다.
잇단 미국발 악재로 국내 반도체주도 멍들고 있다. 이날 SK하이닉스 주가는 전일 대비 10.4% 빠진 17만3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일일 주가 하락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낙폭이다. 한미반도체 9.35% 떨어진 11만5400원 하락했고, 삼성전자는 4.21% 내린 7만9600원으로 한달 반만에 8만원선이 무너졌다. 내년부터 빅테크의 비용 증가, AI 매출 저조 등으로 인해 HBM 수급이 둔화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증권가에선 목표주가를 낮추는 곳도 나오고 있다. 하이투자증권은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기존 10만1000원에서 9만7000원으로 낮추고, SK하이닉스 역시 종전 대비 19% 내린 21만7000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차세대 AI반도체 '블랙웰'을 선보이고 있다./사진=뉴스1 |
□ "지금 투자 안하는 게 더 위험"…AI 랠리 불씨 살리나
앞으로 반도체 전망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AI 거품론을 촉발시킨 빅테크발 AI 과잉투자 우려와 관련해서는 투자 효과를 내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리시 잘루리아 RBC캐피탈마켓 분석가는 "거시경제 환경은 어렵고 AI에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자본지출로 확인 가능하다"고 했다. 미국 벤처캐피탈 업체인 세쿼이아에 따르면 현재까지 AI 부문 투자금액은 6000억달러지만 AI 매출은 투자금의 6.6%인 40억달러 수준에 그친다.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즈는 빅테크 기업들이 2026년까지 AI 모델 개발에 연간 600억달러를 지출할 것으로 예상되나, AI 투자를 통한 매출은 연간 3분의 1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내년 말까지 생성형 AI 프로젝트의 최소 30%가 중단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빅테크의 AI 투자감소 우려는 기우라는 시각도 있다. 클라우드 업체들이 수익화 지연에도 오히려 과소 투자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순다 피차이 구글 CEO는 "AI 경쟁에서 선두에 나서기 위해 투자하지 않는 것은 훨씬 더 큰 단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메타도 AI 성과가 나고 있다면서, 올해 CAPEX를 기존 350억~400억달러에서 370억~400억달러로 상향 조정하고 2025년에도 지속 증가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마크 저커버그 CEO는 "투자를 멈춘 후 새 AI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엔 긴 리드타임이 필요하다"며 "너무 늦기 전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 AI 버블 우려에도 "수요 늘어난다, HBM 생산확대"
국내 반도체 업계는 시장 호조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경쟁적으로 HBM 캐파 확충에 나서고 있다. 올 하반기부터 주력 제품인 HBM3E 생산을 확대해 시장 지배력을 키운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고객사 협의가 완료된 HBM 물량을 전년 대비 4배 키우고 내년에도 올해보다 2배 늘린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도 내년 HBM 출하량을 올해 대비 2배 이상 늘리겠다고 했다.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HBM 3사의 생산계획(총 13억8천만GB)이 최대 수요량(8억8천만GB)를 넘어섰다는 HBM 공급과잉 현실화 우려에도 AI 수요 확대에 힘을 싣는 분위기다. AI 산업 성장이 지속된다는 전제 하에 엔비디아 외에 AMD와 구글 등이 생산하는 AI가속기 대체품이 늘고 있는 현실도 고성능 HBM 수요 증가를 견인할 것이란 분석이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아직 빅테크간 AI 주도권 경쟁을 해야하기 때문에 투자를 줄일 것 같지 않지만, 전력 공급난으로 인해 생기는 속도조절은 고려할 부분"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엔비디아의 실적 발표가 불확실성을 잠재울 것으로 내다봤다. 류영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대폭 상향 조정됐던 눈높이 조정과 중국 제재와 같은 마이크론 이벤트 등을 감안하면 엔비디아 실적발표 전까지 변동성 확대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주가 하락을 분할 매수 기회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김이슬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