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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피플] 남진, 가요계 최고 꼰대가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

천윤혜 기자

사진 제공=(주)바보들

"황태자, 황제라는 표현은 싫어요. 가수가 황제 출신은 아니잖아요. 그냥 영원한 오빠, 오빠의 원조라는 표현으로 끝이에요. 오빠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고 좋아요. 나이 80에도 오빠라 하니 얼마나 좋아요."

대한민국 최초로 팬들로부터 '오빠'라는 말을 듣고, 국내 1호 팬클럽을 보유한 남진(77). 어느덧 데뷔 60년이 되고 여든살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지만 여전한 노래 실력부터 건강한 마인드까지 그는 지금도 오빠였다.

지난 4일 개봉한 '오빠, 남진'(감독 정인성/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제작 (주)바보들)은 대한민국 최초의 팬덤을 이끈 오빠 남진의 데뷔 60주년을 기념해 팬들을 위해 만든 헌정 무비.

영화 개봉 전 만난 남진은 "제작진들이 (영화를)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망설여졌다. 아직 마음은 젊지 않나.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할 정도가 왔나 싶은 거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60년이 지났더라. 잘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털털하게 웃었다.

자신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아쉽다는 마음이었다고. 데뷔 초기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바꿔 말하면 자료가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세월이 많이 지나다 보니까 자료들이 섬세하게 없더라고요. 제가 영화도 70편 정도를 찍었는데 (자료가) 없었어요. (개인 소장 영상도) 없고요. 나중에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겠단 생각은 꿈에도 못 했죠. 겸손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되돌아보니 이 분야에서 제일 오래 한 사람이 저더라니까요. 그래서 (이번 영화를) 한다는 걸 실감했어요."

남진의 삶은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굴곡이 많았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1965년 가수의 길을 선택했고, 1966년 '울려고 내가 왔나'가 히트를 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해병대에 입대했다가 베트남전에 참전해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도 겪었지만, 제대 후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후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을 시작으로 활동에 제약을 받고 가수로서 불안한 시기를 보내기도 했으나, 미국에서 결혼해 자녀들을 낳은 뒤 한국에 돌아와 재도약에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음악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그에게 가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자 미국 생활을 하고 한국에 돌아왔을 당시를 떠올렸다.

"베트남에 다녀와서는 힘이 났고 뛰어야 한단 기분이었어요. 반면 미국에서 3년 살고 왔을 땐 모든 게 다 다운인 상태였죠.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결혼할 수 있는데 나이는 35살이 됐고, 외국에서 3년 살았고, 아이도 세 명 낳았잖아요 그러니까 모든 게 옛날하고 다르더라고요. 제 삶도 바뀌었지만 가수로서 주위가 바뀌더라니까요. 방송국 기자, PD들과 다 친했는데 다 부장, 국장이 되거나 하면서 가까이에 있던 사람이 없어진 거예요. 환경이 너무 바뀌니까 우울해지더라고요. 거기에서 인생을 배우고 슬럼프를 느꼈어요.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힘들었죠. 나 자신과의 싸움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사진 제공=(주)바보들

위기의 순간을 넘기고 60년간 가수 생활을 해온 그는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이 중 본인에게 가장 소중한 곡을 꼽아달라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줄줄이 자신의 노래를 읊었다. 모두 지금의 남진을 있게 한 곡이었다.

"수백 곡을 했어도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은 노래가 소중해요. '울려고 내가 왔나'와 '가슴 아프게'는 다 아는 노래잖아요. 빠른 노래로 보자면 '님과 함께'와 '둥지'가 있고요. 저를 슬럼프에서 건져준 곡이 '둥지'거든요. 이 노래가 없었으면 재기를 못 했을지도 몰라요. 배우는 영화가 있고 연기가 있듯이, 가수는 노래가 있어야 하잖아요. '둥지'는 아기들도 좋아했어요. 또 미국에서 돌아와서 부른 노래가 '빈잔'이었는데 이 곡도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이 된 노래죠."

노래를 오랫동안, 그리고 잘 부르기 위해 담배를 끊은 지 32년이 됐다는 남진은 인생을 음악과 함께 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 활동하며 어느새 가요계 대선배가 됐지만 아직까지도 노래는 그에게 쉽지 않은 영역이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노래 연습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감성은 한계가 있어요. 감성은 연습해서 가꾸고 만드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거예요. 제가 똑같은 노래를 60년 부르잖아요. '님과 함께'도 부른 지 50년이 넘었어요. 그런데 같은 노래라 해도 세월이 지나서 부를 땐 더 무겁고 뜨겁고 깊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시절 20대였던 팬들이 지금은 80대라는 걸 아니까 (깊은 감성을) 찾으려는 게 어렵더라고요. (감성을) 찾게 해달라고 혼자 많이 부탁해요."

그 감성을 건드리기 위해서는 스스로 즐겨야 한다는 신조도 여전하다. 그렇기에 그의 노래에는 늘 진심이 담겨있는 게 아닐까.

"가슴이 절 건드리지 않으면 노래가 잘 나오겠나요. 할 때마다 흥분이 돼야 하죠. 흥분이 안 되면 우울증이 와요. 제대로 노래가 안 나오면 우울해지지 않을까요. 저는 노래를 불러야 힘이 나요. 나이를 먹으니까 더 심해지더라고요. 그러려면 건강해야 하죠. 마음만 갖고는 안 돼요. (건강을) 굉장히 조심해야 해요."

사진 제공=(주)바보들

손자 손녀뻘 되는 아이들이 자신의 노래를 알아주고 팬이라 해주면 소름 돋을 정도로 힘이 생긴다는 남진. 이 기운으로 매번 에너지 넘치는 무대를 만들고 있는 그에게도 걱정은 있다.

"이 나이에 춤추고 다리 떠는 사람 봤나요. 제가 또 살짝 떨지 않잖아요. 나이 먹어서 자중해서 그 정도죠. 기분은 더 떨고 싶은데 더 하면 주책이라 하거든요. 그런데 조심스러운 게 흥이 사라질까 두려워요. 흥이 사라지면 다리가 안 떨어지잖아요. 흥이 있어야 다리가 떨어지니까 (흥이) 안 사라지길 바라는 거예요. 그러려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야 하죠. 가는 세월 막을 사람 없으니 잘 마무리하자고 (스스로에게) 부탁해요."

젊은 시절부터 그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나훈아는 최근 은퇴 선언을 하고 마지막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아직 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남진은 나훈아의 은퇴 소식에 아쉬워하면서도 자신은 노래가 나오는 순간까지 무대에 있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가수잖아요. 노래가 안 되면 섭섭하지만 된다면 되는 날까진 할 거예요. 노래가 안 되면 내일이라도 못하는 거고요. 그땐 하고 싶어도 못 하죠. 옛날엔 그런 생각 없이 살았는데 이젠 '안 되는 날이 오겠구나' 싶어지더라고요. 노래는 목으로 하는 운동이기에 건강해야 해요. 건강 유지를 못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니까 운동하게 되고 노래 연습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노래하는 게 감사하기도 하죠. 제가 노래를 안 했다면 (건강 관리를 덜 하면서) 먹고 자고 대충 살았겠지만, 팬이 있고 이렇게 (가수 생활을) 해왔으니까 그런 게 저를 잡아준다는 생각이에요."

그럼에도 어느새 현역 가수 중 최고령이 됐다. 당장 은퇴 계획은 없어도 마무리에 대한 생각은 하고 있을 법했다. 그는 최고참 가수로서 책임감이 든다면서 마지막까지 좋은 가수로 남고 싶어 했다.

"(가수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까 선배가 되고, 또 최고의 꼰대가 되다 보니까 활동하는 사람 중에서는 제가 1번(최고참)이더라고요. 데뷔가 어제 같은데 제일 꼰대가 됐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쉽게 말하면 원로가수죠. 그러니까 부담스럽더라고요. 옛날에는 하고 싶은 대로 살면 그만이었는데 원로가 되니까 (후배들이) 다 지켜본다는 생각에 부담이 돼요. (제가) 떠난 후에 '저 선배는 잘하고 가셨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안 좋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잖아요. 좋은 소리만 듣는다고 장담 못하죠. 어떻게 가수 활동을 마무리하는지가 저 자신한테 의문이에요. 바람은 후배들에게 좋은 선배로 남고 싶어요. '노래가 안 되니까 은퇴하더라'는 소리도 듣기 싫고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분명하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와 비교하면 지금의 근무 환경은 훨씬 편안하고 안정적인 게 사실. 남진은 좋은 여건에서 일하는 후배들에게 그 무엇보다 인성을 강조했다. 60년간 가요계에 몸담은 선배로서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후배들이 부러워요. 옛날에는 극장쇼도 저 정도는 돼야 10~20만원을 받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몇천만원씩 받잖아요. 후배들에게 바라는 건 실력도 중요하지만 인성이 갖춰져야 한다는 거예요. 좋은 환경에 있으니 인성도 안 좋아질 수 있다고 봐요. '나만 스타가 돼야지' 하지 말고 가요계가 더불어 잘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옛날에 (선배들로부터) '가수가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못 알아들었어요. 그런데 이제 그 뜻을 뼛속 깊이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후배들한테 인성이 중요한 거라고 얘기해요.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하고 동료들과 잘 지냈으면 해요."


천윤혜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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