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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피플] '대도시의 사랑법' 노상현이 보여줄 '무한 가지' 얼굴에 거는 기대

박정훈 기자

사진 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배우들을 가끔 인터뷰로 마주하다 보면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 때가 있다. 마치 흰 도화지와 같아서 어떤 배역이 맡겨지든 그 역할의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배우 노상현이 그랬다.

모델 활동의 이력이 체감되는 훤칠한 피지컬과 강렬한 인상이 두드러지지만 동시에 보는 이들을 안심하게 만드는 순박함도 묻어있다. '무한 가지' 얼굴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이 엿보인다. 연기 활동 경력은 길지 않지만, 몇 편의 작품에서 그가 연기를 통해 보여준 존재감은 확실히 경력 이상이었다. 영화계가 또 한 명의 인재 발견에 성공한 듯하다. '대도시의 사랑법'의 배우 노상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오늘(1일) 개봉하는 '대도시의 사랑법'(감독 이언희/제공 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미시간벤처캐피탈㈜/㈜쇼박스, ㈜고래와유기농)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재희(김고은)와 세상과 거리를 두는 것이 익숙한 흥수(노상현) 등 전혀 다른 성향의 두 남녀가 한 집에서 동거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멜로 영화다. 작품에서 노상현은 남성에게 반응하는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인해 성장 과정에서 입은 숱한 상처를 안고 마음의 문을 닫은 주인공 흥수를 연기했다.

제49회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선공개된 '대도시의 사랑법'은 상영 후 관객들의 기립박수 세례를 받을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확인했다. 캐나다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노상현에게는 모든 것이 꿈 같은 일이었다.

"제가 어렸을 때 잠시 살던 곳이 토론토 근처였거든요. 이 동네(?)를 제가 영화배우로 다시 오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거기다 작품에 대한 해외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까지 확인했으니. 제가 보는 모든 상황이 마치 꿈 같았죠. 뭐랄까 익숙하지만 뭔가 낯선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인 것 같아요."

사진 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대도시의 사랑법'은 노상현이 주연 배우로 출연한 첫 상업영화다. 남자 배우로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배역이었지만 그는 기쁜 마음으로 캐스팅에 응했고 작품에 합류했다.

"캐스팅 제안을 받고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 같았죠. 성소수자라는 설정의 배역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주변의 시선도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소재도 설정도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결국에는 제가 재미를 느끼는 작품의 출연 제안을 받았으니 '안 할 이유가 없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어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 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배우로서 이렇게 좋은 작품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작품 속 성소수자 연기를 위해 노상현은 실제 성소수자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의 어설픈 이해가 반영된 연기가 그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단 저에게는 성소수자들의 삶은 미지의 영역이나 다름없으니 연기를 위해서는 그분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제 연기가 그분들에게 실례가 되거나 혹은 평생 겪어오신 상처들을 덧나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 성소수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그분들이 느끼는 감정에 공감할 수 있었어요. 결코 가볍게 연기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게 됐고요. 덕분에 더 진지하게 연기에 임할 수 있었어요."

노상현은 연기를 하면서 흥수라는 캐릭터에 점점 빠져들었다. 그가 작품 속에서 보여주는 성장의 서사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일단 흥수의 서사가 좋았어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이해받지 못한 슬픔과 그로 인해 억눌린 감정들을 숨기기 위해 흥수는 소위 말하는 '센 척'을 하죠. 그런 그가 재희라는 인생의 파트너를 만나 마음을 열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성장의 스토리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인간으로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전달하는 긍정의 메시지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흥수를 연기 할 때 노상현이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감정의 강약 조절이었다. 격정적인 것 보다는 담백한 표현이 캐릭터의 서사를 더 빛나게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흥수는 감정의 변화가 정말 많은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 감정에 너무 깊이 몰입하면 곧 찾아올 감정 변화를 표현하는 게 어려워지죠. 또 감정이 너무 과장되면 관객 여러분의 감정 이입을 방해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가능하면 담백하게 혹은 편하게 '툭툭 치듯이' 감정 변화를 표현하려고 애썼어요. 이언희 감독님도 그게 좋다고 하셨고요."

사진 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김고은과의 촬영에 대해 노상현은 '재밌고 즐거웠던 시간'이라고 회상했다.

"함께 동거하는 관계인 두 주인공의 설정상, 김고은 씨와 저는 인간적으로 친해질 필요가 있었죠. 저는 처음 마주한 누군가에게 먼저 살갑게 말을 걸거나 친해지는 성격이 아닌데, 김고은 씨는 그런 저에게 먼저 다가왔어요. 덕분에 하루하루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고민을 나누는 사이가 됐죠. 세트장에서 고은 씨는 저를 '흥'이라고 불렀어요. 나이로는 제가 한 살 오빠인데... (웃음) 고은 씨와의 친밀해진 관계는 영화에도 녹아들었어요. 영화 초반에 함께 라면을 먹던 재희와 흥수가 눈이 마주치고 동시에 냉장고의 소주를 찾는 장면은 시나리오의 디렉션에 없는 내용이었어요. 또 작품의 피날레와 같은 '결혼식 신'도 고은 씨의 리액션 덕분에 정말로 축제 같은 분위기에서 찍을 수 있었고요. 함께 연기하는 모든 순간이 재밌고 즐거웠어요. 참 고마운 사람이에요."

학창 시절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가 연기자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한 이는 바로 배우 류승범이었다.

"어떤 작품이었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요. 어느 날 하루는 류승범 선배님이 출연하신 영화 한 편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진짜 멋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연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매력을 느끼게 됐고, 이 업계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죠. 미국에서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려고 한국에 잠시 왔을 때 우연히 연예계 쪽 일을 잠시 경험할 기회가 생겼고 그 일을 통해서 '아 나는 이제 이 길로 가야겠다'고 확신하게 됐죠. 모델 활동을 이어 가느라 자연스럽게 군 복무가 늦어졌고요. 29살에 늦깎이로 입대해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찍은 작품이 '파친코'였어요."

사진 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노상현은 지금도 연기 레슨을 받고 있다. 장르와 캐릭터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연기자의 욕심이다.

"아직 정극 연기 경험이 많지 않으니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개인 연습도 많이 하고요. 저 혼자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으면 전문가를 찾아가 연기 레슨을 받아요. 제 연기 스킬을 발전시킬 방법이 있다면 되도록 많은 시도를 해 보는 것 같아요."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노상현이 보여준 '생활 연기'는 관록의 연기자인 김고은에 전혀 뒤지지 않는 리얼함으로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연기에 대한 그의 진심이 계속 이어진다면 분명 영화계를 이끌 차세대 대표 주자로 성장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물으며 이날의 인터뷰를 마쳤다.

"배우라면 작품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잘하는 것만 하고 싶지 않아요. 부족해도 계속 도전하고 노력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흥수처럼요. (웃음)."

박정훈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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