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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피플] '보통의 가족' 설경구, 자식이 빌런 된다고 상상하면

천윤혜 기자

사진 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주)마인드마크

어떤 옷을 입어도 찰떡같이 소화하는 설경구(57)가 이번엔 성공한 삶을 사는 변호사가 됐다. 그러나 그 삶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감정을 쏟아내지 않아도 얼핏 느껴지는 그의 떨림과 동요는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오는 16일 개봉하는 '보통의 가족'(감독 허진호/배급 (주)하이브미디어코프‧(주)마인드마크/제작 (주)하이브미디어코프)은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던 네 사람이 아이들의 범죄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담은 서스펜스.

설경구는 극 중 물질적 욕망을 우선시하며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변호사 재완을 연기했다. 늘 이성적인 태도로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이던 중 아이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를 목도한다.

영화 개봉 전 만난 설경구는 "보통 (제가 나온 영화를 볼 땐) 영화에 집중을 잘 못하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의식하는 편이다. 한숨 소리가 들리면 '왜 한숨을 쉴까?' 하고 누가 나가면 '왜 나갈까?' 하는데 이번에는 영화를 보는데 집중이 되더라. 섬뜩하게 봤다. 아이들의 대사가 꽂히는데 너무 잔인하게 들렸다"며 관람 소감을 전했다.

지난해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처음 봤다는 그는 국내 개봉을 앞두고 두 번째로 본 후 만족감이 더 높아졌다고 밝혔다. 그만큼 '보통의 가족'에 대한 자신감도 커졌다.

"토론토영화제에서 봤을 땐 조마조마했어요. 지루할 것 같고 다음 신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안 넘어가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이후에도 열 몇 개의 영화제를 가시면서 영화를 많이 보셨잖아요. 그러면서 (국내 개봉 전에) 거슬린 부분을 조금 정리하신 것 같아요. 허진호 감독님과 해서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토론토영화제에서도 반응이 좋았거든요. (해외 관객들이) 많이 웃는 걸 보고 외국 사람들도 좋게 보는구나 싶었어요. 사는 게 다 똑같나 봐요."

그간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적은 없지만 허 감독은 설경구가 신뢰하던 감독이었다. 촘촘한 연출로 집중력 있는 영화를 만들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작품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시나리오에 매료된 것도 당연한 일.

"엔딩이 워낙 파격적이었어요. 원작 소설은 안 읽었고 이탈리아 리메이크작을 봤는데 마지막에 너무 충격받았죠. 그런데 허 감독님 버전이 더 충격적이었어요. 인물들이 하는 말들이 와닿았더라고요. 또 동서지간인 연경(김희애)과 지수(수현)의 대사도 너무 재밌었고요. 서로 가시를 담아서 툭 던지는데 말맛이 느껴지더라니까요."

사진 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주)마인드마크

잘나가던 변호사 재완의 삶은 딸 혜윤(홍예지)의 범죄 사실을 안 후부터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딸이 범죄를 저지른 모습이 담긴 CCTV는 전국에 퍼졌지만, 범인의 얼굴은 식별이 불가능한 상황. 목격자도 없다. 이 위기만 넘기면 딸의 삶도, 재완의 삶도 지금처럼 승승장구할 수 있다. 이럴 때 부모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설경구는 같은 상황에 처한 동생 재규(장동건)와 다른 결정을 내린 재완의 행동에 대해 나름대로 해석했다.

"재완은 자신을 위해 그 선택을 했다고 봐요. 딸을 위해 결정을 하는 것도 있지만 나를 위한 것도 따지지 않았을까요. 재규는 (감정 변화가) 확 보이지만 재완은 미묘하게 바뀐다고 생각했어요. (재완의 선택이) 본인이 쌓아온 것들에 흠이 덜 갈 거라고 본 거죠. 이게 제일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실제 부모이기에 만약 내가 재완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한 생각도 분명 해봤을 터. 그는 이 이야기가 나오자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생각한다는 것만으로 제3자처럼 훌륭한 답을 낼 것 같아요. 자수를 시키지 않을까요? 그런데 실제로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면서 어떤 답을 내려야 할지 모를 것 같아요. 자수시키는 부모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자식은 내 맘대로 안 돼요. 재규네는 모범적으로 살았고 해외 봉사도 다녔는데도 재완네와 같은 일을 겪잖아요."

그가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가장 어렵다고 느낀 장면은 아내 지수와 동생 재규 부부가 함께 모이는 식사 장면이었다. 영화에는 총 세 번의 식사 장면이 나오는데, 모두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신이다. 해당 신에서 네 인물의 감정선이 부딪히면서 묘한 균열을 드러내야 했기에 감정 소모도 컸다.

"원작 제목이 '더 디너'인 것처럼 (식사신은) 중요한 장면이었거든요. 세 번의 식사가 나오는데 다 다른 색깔이라 제일 신경 썼죠. 네 명이 모이는 유일한 장소인데 서로 치고받아야 하잖아요. 그렇다고 때려죽일 듯하지도 말아야 해요. 오래 반복해서 찍다 보니까 같은 말을 너무 안 신선하게 뱉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할 정도였어요. 아침부터 모여서 저녁까지 같은 대사를 반복하니까요. 다행히 호흡이 잘 맞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설경구는 식사신에 대한 본인의 생각도 덧붙였다. 재완이 한 달에 한 번씩 (굳이 싫다는) 재규 부부와 함께 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해온 건 재완의 보여주기식 행동이었을 거라고.

"재완의 위선까진 아니라도 '우린 이런 형제입니다. 우애가 좋습니다'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재규 부부는 (저녁 식사 자리에) 안 가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 장면이 멀리서 봤을 땐 재완의 의도(로 보이)겠지만 카메라 안으로 들어갔을 땐 미묘한 균열이 있어요. 동서지간도 불안하고요. 그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같지만 결국 수면 위로 올라오고 감정이 뒤집어지는 식사 자리가 아니었나 싶어요."

사진 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주)마인드마크

아내 지수와의 관계 또한 재완에게 중요한 포인트였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지수를 아내로 맞이한 모습에선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재완의 속내도 담겨있을 수 있을 거란 짐작도 가능하다.

"겉으로 볼 땐 부조화스럽잖아요. 네 명(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이 아무 설명 없이 걸어가면 당연히 저랑 김희애씨가 부부인 줄 알 거예요. 수현씨랑 부부라고 하면 놀라는데 그걸 의도했어요. 이질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던 거죠. 재완이 자기 위치를 과시하고 싶은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막상 (부부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의외로 와이프에 의지해요."

그는 '보통의 가족'이라는 영화 제목이 주는 의미에 특히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면서 영화가 자녀가 있는 부모들에게 충분한 메시지를 줄 거라고 자신했다.

"역설적일 수 있지만 누구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봐요. 사실 보통 일이 아니죠. 섬뜩한 어마어마한 일이에요. 저희 영화는 어마어마한 구강 액션이 있고 빌런도 나오는데 빌런이 자식이에요. 죽일 수도 없다니까요. 저는 이 영화를 (부모들이) 자녀와 같이 봤으면 좋겠어요. 각자 위치에서 생각이 다를 것 같거든요. 그리고 얘기도 될 것 같아요. 교육은 아닌데 생각이 많아질 것 같다고 할까요. 자녀 있는 분들은 다 봤으면 좋겠는데 그럼 1000만이네요. 하하"

이번 영화에서도 독보적인 연기력을 보여준 설경구. 영화판에 30년 가까이 있었고, 꾸준히 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관객들에게 사랑받으면서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베테랑'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배우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연기에 대해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고 있었다. '보통의 가족' 속 재완도 그런 설경구의 마음가짐 덕분에 더욱 묵직하게 표현된 게 아닐까.

"다른 직업 같은 경우는 20~30년 숙련되면 달인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연기는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스스로 갈 데가 없고 갑갑해져요. 연기의 단점은 늘 제가 하는 거기 때문에 (새로운 캐릭터를 할 때) 제 모습이 겹치는 게 괴롭다는 거예요. 편수가 쌓일수록 고민은 되는데 방법은 없죠. 그래서 살도 찌웠다 뺐다 하면서 뭐라도 변화를 주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게 최선인 것 같아요."


천윤혜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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