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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시네마] '보통의 가족', 부모에겐 확신의 공포물인 이유

천윤혜 기자

사진 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주)마인드마크

치밀하면서 세련됐다. 식감이 거친 현미밥을 꼭꼭 씹어먹게 되듯, 영화를 보고 난 뒤 거칠게 남은 맛을 곱씹을수록 더 풍부한 식감과 여운이 전해진다.

지난 16일 개봉한 영화 '보통의 가족'(감독 허진호/배급 (주)하이브미디어코프‧(주)마인드마크/제작 (주)하이브미디어코프)은 헤르만 코흐의 소설 '더 디너'를 원작으로 한다. 네덜란드, 이탈리아, 미국에서도 영화화된 작품으로,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 '덕혜옹주'(2016), '천문: 하늘에 묻는다'(2019) 등을 연출한 허진호 감독의 손에서 한국 영화로 재탄생했다.

사람 살리는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소아과 의사 재규(장동건)는 유능하고 돈이 많지만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변호사 형 재완(설경구)을 못마땅해했다. 재규의 아내 연경(김희애)도 마찬가지. 재완이 자신보다 훨씬 젊은 지수(수현)와 재혼해 아이를 낳자 지수를 형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재완은 교통사고로 사람을 치어 살해한 한 재벌 2세(유수빈)의 변호를 담당하게 됐다. 희생자의 딸 또한 이 사고로 크게 다쳐 병원에 실려 갔는데, 아이의 치료는 소아과 의사 재규가 맡았다.

이 사건으로 서로의 신념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던 시점에 이들 가족은 또 다른 사건으로 엮였다. 재완의 딸 혜윤(홍예지)과 재규의 아들 시호(김정철)가 노숙인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일이 터진 것. 이들의 범행이 담긴 CCTV 영상은 뉴스에 공개됐지만, 다행인지 아이들의 얼굴은 식별이 불가했다. 이 사실을 안 네 부모는 사건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작품이다. 전개 속도가 빠르지 않아도 인물들이 겪는 감정이 촘촘하게 빌드업되면서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자녀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 외에 특별한 사건이 없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분위기와 몰입감이 상당하다.

사진 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주)마인드마크

영화에서 네 명의 인물이 겪는 문제는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질문이다. 만약 내 아이가 범죄를 저지른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원론적으로는 당연히 아이가 자신의 범죄 행위를 뉘우치고 희생자에게 용서를 구하게 하는 거다. 그러나 한 번의 잘못으로 아이들의 미래가 망가진다면, 심지어 범죄 행위가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면, 정말 아이들을 자수시킬 수 있을까. 물질적 욕망을 우선시하던 재완, 그리고 정의로운 신념을 잃지 않던 재규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관객들 또한 자연스럽게 자신의 속내를 꺼내보게 된다.

분명 심각한 상황의 연속이지만 예상치 못한 웃음 포인트도 녹아 있다. 극한의 감정에서 터져 나오는 반전의 웃음은 분위기를 잠시나마 환기시킨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연경과 지수가 기싸움을 벌이는 장면. 연경이 자신보다 한참 어린 지수를 은연중에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가시 선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에선 무거웠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풀어진다.

작품의 묘미가 가장 잘 발현된 장면은 세 번의 식사신이다. 원작 제목이 '더 디너'인 것에서 파악할 수 있듯 네 사람이 함께 식사하는 장면들은 매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유리로 된 고급 식당의 룸에서 고상하게 식사하는 모습은 밖에서 볼 땐 화목한 가족의 전형이다. 변호사 형과 의사 동생, 누가 봐도 성공한 삶을 사는 이들의 '보여지는' 삶은 완벽하다. 하지만 그 안으로 카메라가 들어갔을 때 보이는 상황은 전혀 다르다. 특히 마지막 식사신에서 화목한 척하던 가면이 벗겨지면서 제대로 드러나는 민낯이 눈길을 끈다.

관록의 배우들이 모인 만큼 연기력에도 빈틈이 없다. 설경구는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재완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했다.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내면에서 몰아치는 변화의 순간을 눈빛으로 표현했다. 장동건은 작품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을 연기한 만큼 양면적인 모습을 매력적으로 연기했다. 진한 감정 표현도 좋지만, 삶의 흔적이 녹아든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그동안 보던 장동건과는 다른 새로운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또한 김희애는 가장 현실적인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중간중간 웃음을 유발하는 말맛을 살렸으며, 수현은 세 배우를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느낌을 주며 자신의 몫을 다했다.

자식의 범죄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자극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묵직함이 오래 간다. 휘몰아치는 엔딩을 보고 나서는 쉽사리 극장을 벗어나기 힘들 것. 단순히 킬링타임용 영화를 원했다면 찝찝함이 남을 수 있지만 이 찝찝함이 주는 여운이 꽤나 길게 간다. 15세 관람가.


천윤혜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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