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피플] 박정민 "전형적 '놀부상' 얼굴, 양반 역할 딱 맞아"

사진 제공= 넷플릭스

영화 '전, 란'에서 박정민은 첫 사극 출연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열연으로 다시 한 번 본인의 가치를 입증했다. 심지어 영화업계에서 비주얼 치트키로 여기는 '칼을 든 강동원'과의 투샷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작품의 무게감을 살렸다.

기자회견에서 박정민은 "가능하면 사극은 당분간 쉬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배우였다면 논란이 될 수도 있는 발언이었지만 그의 연기를 지켜본 모두는 '그럴 수 있지'라며 납득했다. 작품에 본인을 그야말로 '갈아 넣은' 박정민의 노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 바쁜 연기 활동 기간을 마치고 잠시 쉬는 기간 동안, 출판사 '무제'(MUZE)의 대표 역할에 전념할 것이라는 부지런한 뇌섹남 배우 박정민을 인터뷰로 만나고 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전, 란'(감독 김상만/제공 넷플릭스/제작 모호필름, 세미콜론 스튜디오)은 임진왜란 발발로 아비규환의 혼란이 시작된 조선시대.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특별한 우정을 주고받은 무신 집안의 아들 이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이 뜻하지 않은 오해로 서로에게 깊은 원한을 품게 되는 슬픈 운명을 담아낸 역사 드라마다.

박정민은 전란의 화마가 이끈 가혹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점차 흑화하는 인물인 이종려를 연기했다. 작품에서 가장 극단적인 심경 변화를 보여주는 캐릭터의 연기를 무난하게 소화한 그의 연기는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자들의 끊이지 않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전, 란'은 지난 11일 공개 직후 글로벌 넷플릭스 영화 시청순위 TOP3에 단숨에 오르며 뜨거운 반응을 확인했다. 이와 같은 반응을 박정민은 매우 신기해 했다.

"극장 개봉 영화 같은 경우는 매일의 흥행 성적이 수치로 나오고, 배우라면 이걸 신경쓰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번 작품은 OTT 영화다보니 반응이나 결과들이 극장용 영화처럼 확 와닿지 않더라고요. 제가 체감할 수 있는 것은 영화를 보신 주변 분들의 반응 정도인데요. 일단, 다들 재미있게 보셨다고 하니 기분은 좋더라고요. 글로벌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다고 하는데, 어떤 포인트가 좋았는지 의견들이 궁금해요. 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니 또 신기하기도 하고요."

박정민은 이번 작품에 대해 가장 인상적인 반응을 보인 주변 인물로 배우 공유를 꼽았다. '전, 란'의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상영과 시사회의 뒷풀이까지 함께한 공유를 보면서 의아함과 뿌듯함을 느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 행사가 끝나면 대부분의 배우들은 지인들이나 업계 관계자 분들에게 인사 정도 하고 돌아가거든요? 부산에서 상영회가 끝나고 공유 형한테 '영화가 너무 좋다'고 메시지가 왔어요. 그런데 상영회의 뒷풀이 자리에도 공유 형이 오신 거예요. 그것도 매우 신나보이는 모습으로요. 너무 고마웠던 한편으로는 '본인이 출연한 영화도 아닌데 저렇게 좋을까'라며 의아하다는 생각도 약간 들었어요. 제가 형을 너무 이상한 사람처럼 이야기했나요? 음...공유 형은 정말 좋은 형입니다! 하하하."

영상미, 연기, 스토리 모두 극찬을 받았음에도 '전, 란'의 엔딩에 대해서는 작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갑작스러운 두 주인공의 심경 변화가 설득력이 부족해보인다는 비판이 나왔기 때문이다. 박정민은 "정말 감사한 지적들"이라며 본인의 생각을 밝혔다.

"말 한마디에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게 된 두 사람의 오해가 풀리는 대본의 전개는 사실 저도 이해하기가 어려웠어요. '일단 대본대로 가보자'는 감독님과 동원이 형의 제안이 있었고. 그대로 연기를 해 봤는데요. 정말 신기하게도 대본 속 주인공들의 슬픔에 확 몰입을 하게 된거예요. 소름이 돋을 정도로요.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촬영이 끝나고 작품이 나왔는데요. 각본을 집필한 박찬욱 감독님이나 연출자인 김상만 감독님 나름의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연기에 들어간 제가 인물에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거고요. 물론 보시는 분들이 엔딩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포인트도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공감하고 있어요. 영화를 깊이 감상하고 지적해 주시는 분들의 의견은 항상 감사하죠."

사진 제공= 샘컴퍼니

캐스팅이 먼저 확정된 박정민은 이후 강동원의 '전, 란' 합류 소식을 듣고 한없이 기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제가 주요인물들 중에 가장 먼저 캐스팅 돼서 다른 배우들의 합류 소식을 기다리는 기간이 있었어요. 강동원 형이 같이 한다는 소식을 듣고 말로 다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좋았어요. 촬영을 빨리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이번 작품을 통한 첫 사극 연기 도전으로 박정민은 사극 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가장 걱정된 점은 '어떻게 보여질까' 였어요. 저는 그저 열심히 하면 되지만 보시는 분들은 제 미성숙한 연기가 불편하실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실제 촬영에 임해 보니 적응이 안 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한복을 입고, 수염을 붙이고, 갓을 쓰는 사극 복장을 제대로 갖추고 연기를 하는 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특히 갓을 썼을 때는 시선을 보이게 하도록 카메라 앵글을 맞추는 것이 정말 힘들었어요. 시선을 약간만 바꿔도 시선을 가리는 경우가 허다했죠. 액션 연기도 체력 소모가 심했고, 주로 외진 시골이나 산 속에 마련되는 세트장에서 장기간 머물며 촬영을 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이처럼 고된 촬영 일정이 계속됐음에도 박정민은 현장에 있었던 모든 시간에 대해 '신나고 즐거웠던 시간'이라고 말했다.

"힘든 건 모두가 다 힘들었죠. 작품이 감정적으로 격한 것도 있었고, 촬영 자체의 난이도도 쉽지 않았고요. 그런데도 즐거운 기억밖에 없는 것은 사람들이 좋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촬영이 힘든데 현장 분위기마저 안 좋으면 다들 견딜 수가 없거든요. 이번 작품에서는 전혀 그런 게 없었어요. 특히 강동원 형이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해서 촬영장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었고요. 그 모습을 보고 저도 힘을 내서 연기했죠. 누가 실수를 해도 다같이 파이팅 하는 분위기로 넘어갔고요. 아, 당연히 짜증도 안 냈고요. (웃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전, 란' 오픈 토크에서 박정민은 "강동원이 노비, 내가 양반인 설정은 이 작품의 '신의 한 수'"라고 말해 관객들의 웃음을 이끌었다. 이후 박정민은 영화를 소개하는 여러 예능에서 본인의 발언을 '밈'처럼 활용해 화제가 됐다.

"제가 그 말을 활용한다기보다는 활용을 강요 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웃음) 사실 별 생각은 없었고요. 그냥 재미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했어요. 제 얼굴이 전형적인 '놀부 상'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양반 역을 맡는 게 딱 맞지 않나 싶기도 했고요. 아니, 잘생긴 사람만 양반 역을 맡아야 한다는 건 선입견 아닌가요? 하하하."

사진 제공= 넷플릭스

작품에서 박정민이 다룬 검은 16세기 조선의 장수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장검이었다. 크기도 큰 만큼 무겁고 무엇보다 위험했기 때문에 그는 전문가에게 별도로 검술 교육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촬영장에서는 박정민의 검과 관련해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2m에 가까운 길이의 쇳덩이를 막대기처럼 휘두르는 거죠. 무게가 나갈 수밖에 없죠. 보통의 액션으로는 검을 잘 다루기 어렵기 때문에 저는 액션스쿨을 가기 전에 무술감독님과 '중세시대 검술 연구협회'를 찾아 갔어요. 거기에서 무거운 칼을 잘 다룰 수 있는 요령을 배우고 연습한 후에 액션스쿨에서는 작품에서 실제로 구현할 동작들의 합을 맞췄죠. 위험한 장면을 찍을 때는 특수 제작된 가벼운 칼을 썼고요. 그 외에는 실제 장검으로 연기를 했어요. 연습을 나름 많이 하고 촬영에 들어갔는데도 크고 무거운 칼을 단기간에 완벽하게 컨트롤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어요. 한번은 제가 칼을 잘 다루지 못해서 액션 합을 맞추던 성일이 형 몸이 두동강 날 뻔한 적도 있었어요."

박정민은 산문집 '쓸만한 인간'의 저자이자 출판사의 대표를 역임하고 있는 자타공인 문학인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그는 "작가님의 오랜 팬으로서 진심으로 기뻐했다"고 말했다.

"출판사를 운영하기 전에 작은 서점을 운영했어요. 당시 매장에는 한강 작가님의 코너가 별로도 마련돼있었어요. 제가 작가님 작품을 너무 좋아했거든요. 보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고요. 특히 '흰', '소년이 온다'는 수도 없이 읽은 것 같아요. 사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작가님이 노벨 문학상을 받으실거라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어요. 그게 올해일 줄은 몰랐죠. 팬으로서 마치 제가 상을 받은 것처럼 기뻤어요. 한편으로는 저희 출판사 신간 도서들이 곧 나오는데요. 작가님들 계약을 어떻게 해야되는지 약간...머리가 아파지기도 하네요. (웃음) 오늘도 인터뷰 마치고 출판 계약하러 가야 돼요."

'전, 란' 이후로 박정민은 한동안 연기 활동 휴식기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다만, 아무것도 안하면서 쉬는 것은 아니라고 부연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정말 쉬지 않고 일했던 것 같아요. 어느날 문득 '관객 여러분들께 더 보여드릴 새로운 캐릭터가 남아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게 됐어요. 이제는 조금 쉬면서 새로운 캐릭터를 찾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죠. 다만, 아무것도 안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제 성격에 맞지 않으니 작품 활동으로 신경 쓰지 못한 출판사 일도 더 잘 챙길 생각이에요. 유튜브로는 가끔은 얼굴을 비추지 않을까 예상은 하는데요. 사실은 쉬는 동안 출판사를 더 알리는 차원에서 출판사 이름을 앞세운 유튜브를 시작해 볼 생각이에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박정훈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