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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체크] 돈 없는데 배당한도 단숨에 1000억..한미약품 형제 뭘 노리나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자본준비금 감액' 주총 안건 상정
일반주주 표심 얻으려는 것으로 판단
한미사이언스 감액배당, 실현되면 잡음 커질 수도
이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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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그룹의 지주회사 한미사이언스의 임시주주총회가 오는 11월에 열립니다. 세 가지 안건이 올라왔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눈에 띕니다.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이사·임종훈 대표 등 형제 측이 낸 ‘자본준비금 감액의 건’입니다. 자본 항목들을 조정해 이익잉여금을 늘리겠다는 겁니다. 배당의 재원이 되는 이익잉여금을 증가시키겠다는 것이니 일부 주주들 사이에 배당확대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장에선 형제들이 자본준비금을 감액해 배당에 나선다면 그 목적은 현재 경영권 분쟁 상황과 관련 있을 것으로 봅니다. 배당을 미끼로 임시주총에서 일반 주주들의 표심을 얻으려 한다는 것이죠.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임주현 부회장·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등 3자 연합 측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배당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긍정적이라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자금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감액배당을 진행하면 미래의 투자 여력을 훼손하게 되므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 이익잉여금 2000억인데도 자본준비금 감액한 이유

오는 11월 28일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총 3호 의안은 자본잉여금에서 1000억원을 감액해 이익잉여금으로 옮기겠다는 안건입니다. “주주들의 배당 확대 요청에 따라 감액배당을 안건에 올렸다”는 게 형제 측의 설명이라는 보도들이 꽤 보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배당은 회사가 낸 이익을 주주에게 나눠주는 겁니다. 그래서 상법상 배당에선 회사가 창출한 당기순이익의 누적 규모를 나타내는 이익잉여금이 중요한 기준이 되는데요. 지난해 말 기준 한미사이언스의 이익잉여금은 2000억원을 넘습니다. 이익잉여금이 이렇게 많은데, 형제들은 왜 자본준비금을 1000억원이나 줄여 또 이익잉여금에 더하려는 걸까요?



한미사이언스의 2023년 말 기준 별도 재무상태표 상 이익잉여금은 2000억원을 훌쩍 넘는데요. 사실 이 액수 모두 회계상 주주들에게 배당가능한 이익은 아닙니다. 법정적립금과 임의적립금 등을 뺀 미처분이익잉여금을 봐야 합니다. 회사의 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 상 미처분이익잉여금은 151억원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이익잉여금과 미처분이익잉여금이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요? 이익잉여금 가운데 배당에 쓰지 못하는 액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회사의 이익잉여금 구성내역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익잉여금 2191억원을 주주에게 다 배당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법정적립금과 임의적립금도 모두 빼줘야 합니다. 임의적립금은 회사가 정관이나 주총 결의에 따라 임의로 적립하는 돈인데요(현금적립이 아닌 회계상 적립), 이 액수는 주주 배당을 제한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2023년 말 기준 회계적으로 주주에 배당할 수 있는 한도는 이것들을 다 뺀 미처분이익잉여금 기준으로 151억원이 되는 겁니다.

회사는 지난 3년간 매해 주주들에게 주당 배당금 200원씩, 총 130억원 규모로 배당을 해줬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말 기준 150억원 규모 미처분이익잉여금은 기존 배당을 유지할 정도의 수준으로 보이죠. 그런데 형제 측이 이번에 자본준비금을 1000억원이나 감액해 이익잉여금으로 전입시키겠다는 안건을 내놓은 겁니다. 이익잉여금은 배당의 재원이 되니 주주들 사이에선 ‘형제들이 배당을 많이 해주려 하는구나’ 하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죠.

아래 표는 2024년 상반기 기준 자본구성입니다. 만약 자본잉여금의 이익잉여금 전입 안건이 통과하게 되면 자본 계정상 기타불입자본(자본잉여금)에서 1000억원이 줄고, 그 액수가 그대로 이익잉여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법정적립금이나 임의적립금에는 변화가 없는 만큼, 미처분이익잉여금도 1000억원 늘죠. 그러니까 자본총계는 그대로면서 배당 한도가 1000억원 늘어나는 겁니다.



■ 3자연합이 감액배당 망설이는 두 가지 이유

안건이 통과돼 실제로 대규모 배당이 이뤄진다면 당연히 주주들이 수혜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배당에 따른 혜택은 특정 주주만 보는 게 아닙니다. 일반 주주들뿐 아니라 형제들, 그들과 맞서는 3자연합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3자연합 측은 감액배당과 관련하여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다고 봅니다. 형제들이 회사의 자금 여력을 고려하지 않고 주총 표심만 바라보는 데 대해 우려하는듯 합니다. 모녀와 함께 3자연합을 이룬 신동국 회장은 최근 <더벨>과의 인터뷰에서 감액배당을 견해를 밝혔습니다. 기업은 경영활동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려야 하는데, 감액배당은 일시적으로 주주환심을 사려는 것일 뿐 투자해야 할 돈을 소진하는 행위라는 게 신 회장의 지적이었습니다.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형제 측의 자본준비금 감액 안건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사진=한양정밀 홈페이지 갈무리

감액배당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크게 몇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한미사이언스에 대규모 배당을 할 만큼 충분한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별도 재무상태표 상 현금성 자산은 24억원에 불과하고요.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 안 보입니다. 공정가치금융자산이나 투자부동산이 있긴 한데 모두 단기 현금화가 어려운 비유동자산에 묶여있습니다. 반면 부채에서 차입금은 2000여억원에 달하죠.

회사가 아무리 배당가능이익을 늘렸더라도 실제 배당을 하려면 현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본준비금 감액 안건이 통과되면 한미사이언스는 현금이 없는 상태에서 배당가능이익만 늘게 됩니다. 이익을 크게 늘릴 수 없다면 결국 대규모 배당을 위해 차입을 해야 하죠. 이미 차입금이 2000억원에 이르는데 추가 차입을 하면 회사 재무에 부담이 갈 수 있습니다.

또다른 이유는 감액배당의 최대 수혜자는 대주주들이므로 편법증여 의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배당을 통해 형제 측이 부족한 자금 문제를 해소하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죠. 현재 형제 측은 금융권 주식담보대출로 총 3000억원 규모로 돈을 빌렸습니다. 이에 따른 이자도 매년 200억원 안팎으로 나오죠. 반면 3자 연합의 모녀는 신동국 회장에게 보유 주식을 팔아 주식담보대출 이자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런 만큼 만약 한미사이언스가 주주에게 대규모 배당을 하면 모녀보단 형제의 자금 문제 해결에 더 도움이 될 겁니다.

■ 여타 회사들과는 다른 한미사이언스의 감액배당

형제 측이 추진하는 자본준비금 감액은 다른 회사들의 자본준비금 감액, 감액배당과도 차이가 있습니다. 몇몇 회사들의 사례를 한미사이언스와 한번 비교해 보겠습니다.



위는 배달플랫폼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재무제표입니다. 자본잉여금을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해 배당가능이익을 확보한 뒤 실제 대규모 배당까지 한 케이스죠. 회사는 2021년 미처분이익잉여금이 1800억원 결손상태였는데요. 이듬해 자본잉여금을 5000억원 넘게 이익잉여금으로 전입해 미처분이익잉여금이 4400억원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리고 2023년 4월 중간배당으로 모회사 우아DH아시아에 4000억원을 배당했죠.

회사가 이렇게 대규모로 배당할 수 있었던 건 이 해 무려 5000억원 넘게 당기순이익을 냈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현금흐름을 대규모로 창출한 만큼, 배당도 그만큼 집행할 만한 여력을 갖춘 겁니다.

자본준비금 감액이 꼭 배당으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배당이 아니더라도 재무제표상 결손금을 해소하는 목적으로 자본준비금을 감액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위는 크래프톤의 재무제표입니다. 결손금 해소를 위해 자본잉여금을 옮겼죠. 2021년 기준 이익잉여금이 –4000억원 결손 상태였는데 그해 자본잉여금 2조4000억원을 이익잉여금으로 옮겼고요. 이듬해 순이익과 더해 이익잉여금이 2조5000억원으로 늘어났습니다.

크래프톤은 2024년 현재까진 배당을 하지 않고 있는데요. 지난 3월 정기주총에서 배당안건을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배당가능이익을 충분히 확보했고, 당기순이익도 5000억대로 돈도 잘 버는 만큼 배당을 할 준비가 됐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최근 자본잉여금 결손을 결정한 컬리도 크래프톤과 같습니다. 지난 상반기 기준 결손금이 무려 2조2700억원이나 됐었는데, 최근 자본잉여금을 활용해 이 결손금을 털어내는 안건이 담긴 임시주주총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위 표의 자본잉여금 가운데 2조3500억원 규모를 감액해 이익잉여금으로 옮기는 겁니다. 결손금이 없어지면서 작게나마 이익잉여금이 생기니, 재무적으로 예쁘게 ‘화장’을 하게 됩니다. 향후 이익잉여금을 더 키우면 배당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한미사이언스의 자본준비금 감액은 앞서 본 사례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회사가 자본준비금을 1000억원이나 늘리는 안인데, 우아한형제들처럼 대규모로 배당하기엔 가진 현금성 자산이 턱없이 부족하고 순이익도 크지 못하죠. 그렇다고 크래프톤이나 컬리처럼 회사가 재무적으로 결손 상태라 자본준비금을 옮기는 것도 아닙니다. 자본준비금을 감액해 배당가능이익은 늘리려 하는데, 정작 배당을 대규모로 하긴 어려운 어정쩡한 상황인 겁니다.


■ 안건 통과 후 대규모 배당 시 잡음 커질 수도

형제 측이 자본잉여금 감액 안건을 내세운 이유는 이익잉여금을 늘려 배당을 확대하는 포석으로 보입니다. 3자연합은 물론 시장도 이런 안건이 임시주총을 앞두고 주주들의 표심 잡기일 것으로 보고 있죠.

자본준비금 감액 안건이 통과되더라도 언제, 어떻게 주주환원을 할지 형제 측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는데요. 실제로 안건이 통과된 뒤 한미사이언스가 차입이나 자산매각을 통해 대규모로 배당한다면, 여타 감액배당과 다른 사례인 만큼 잡음이 커질 수도 있을 듯합니다.

이일호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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