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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피플] '보통의 가족' 김희애 "얍삽한 작품에 소모되고 싶진 않아"

천윤혜 기자

사진 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주)마인드마크

"제가 원래 현실적인 인물 연기를 잘해요. 하도 판타지스러운 인물을 많이 해서 그런 거에 최적화된 배우라 생각하시는데 전 이런 걸 잘하는 배우예요."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올해만 해도 영화 '데드맨', 넷플릭스 '돌풍' 등 정치물에서 선 굵은 역할을 소화한 김희애(57)가 '보통의 가족'으로는 현실에 발붙은 인물을 연기하며 자신의 내공을 발휘했다.

지난 16일 개봉한 '보통의 가족'(감독 허진호/배급 (주)하이브미디어코프‧(주)마인드마크/제작 (주)하이브미디어코프)은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던 네 사람이 아이들의 범죄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담은 서스펜스. 제48회 토론토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제26회 우디네극동영화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등 전 세계 유수 영화제에 19회 초청받았다.

김희애가 연기한 연경은 프리랜서 번역가이자 자녀 교육부터 시부모의 간병까지,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성공한 워킹맘이다. 가족을 위한 일이라면 뭐든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던 그는 자신의 아이가 범죄를 저지르는 현장을 담은 CCTV를 보게 되면서 무너지게 된다.

개봉을 앞두고 만난 김희애는 "현실적인 사람들의 드라마 같기도 하고 미스터리 같기도 하고 서스펜스도 있는 것 같다. 장르를 구분 짓기 애매한 미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인 것 같다"고 영화를 본 소감을 밝혔다.

"요즘 영화 시장도 안 좋은데 저희 영화는 흥행 생각 안 하고 우직하게 만든 작품이에요. 그런 작품을 토론토영화제에서도 인정해 주셔서 너무 의외였죠. (흥행) 결과가 좋으면 더 좋겠지만 현재까진 너무 다행이에요.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흥행을 전혀 신경쓰지 않을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작품을 선택할 때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대본이 자신을 얼마나 끌어들이는지다.

"흥행은 하늘이 주신 복이고 제게 제일 중요한 건 책이에요. 물론 좋은 흥행 감독님, 흥행 배우들과 하고 싶죠. 그런데 주어지는 책이 먼저고 좋은 작품이면 그걸 알아보는 배우도 붙을 거라고 봐요. 책을 우선으로 봐도 100% 만족하는 작품이 저에게 오진 않잖아요. 가치 있는 작품이면 한다고 봐요. 제 나이 또래에 할 수 있는 게 한정적인데, 제가 할 수 있는 캐릭터고 뭐든 저를 터치하는 몇 장면이라도 있다면 하는 편이에요."

사진 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주)마인드마크

'보통의 가족'에 끌린 이유도 당연히 대본이다. 다만 이 작품은 대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다양한 매력이 가득했다. 그는 "더 이상 좋을 수 있을까"라며 작품에 깊은 만족감을 표했다.

"허진호 감독님이 하시는 작품이라고 해서 책을 받았는데 표지부터 설레더라고요. 좋은 배우들과 하니까 신났고 촬영 내내 행복하게 찍었어요. 흠잡을 데가 없다고 할까요. 완벽한 책이었고 감독님도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서 찍으시는 걸 보고 대단하시다고 느꼈어요. 거기에 좋은 배우들과 함께하기까지 했으니 완벽한 컨디션이었던 것 같아요."

당연히 허진호 감독에 대한 신뢰도 컸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 등의 작품을 통해 멜로의 대가라는 수식어를 받을 정도로 시대를 풍미한 감독이었기에 그와의 작업을 꿈꾸는 건 어찌 보면 여배우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감독님에 대한 믿음도 물론 있겠지만 괜히 좋은 거 있잖아요. 허 감독님은 여배우라면 한 번쯤 해보고 싶은 로망이 있는 감독님이었어요. 앞뒤 가릴 것 없이 '기회가 왔구나' 했죠. 감독님 전작을 보면 여배우들을 아름답게 해주시잖아요. 그런데 이번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다크하고 현실적이었죠. 둥둥 떠다니는 이상적인 꿈의 모델이 아니라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적인 얘기라 로망은 못 이뤘지만, 제 나이에 맞고 현실에 맞게 충분히 즐겼다고 생각해요."

김희애는 영화를 곰국에 비유했다. '보통의 가족'만이 가진 진한 여운을 푹 우려낸 곰국에 빗대 자신감을 드러낸 것. 곰국에 영화를 비유한 배경에는 최근 인기리에 공개된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 있었다.

"저는 원래 조리 과정이 간단한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요리를 잘할 줄도 모르고 과정이 짧아야 칼로리도 적으니까 심플한 걸 좋아했죠. 그런데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을 보는데 정말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저런 음식이 나올 수 없다는 생각에 놀랐어요. 그런데 감독님도 그러셨어요. 인스턴트처럼 캐주얼한 게 아니라 예술가들이 쥐어짜듯이 영감 얻기 위해 하는 것처럼 정말 정성을 다해서 하시더라고요."

그가 연기한 연경은 해외 봉사활동에 진심이다.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보면 눈물을 참지 못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속물적인 근성도 분명히 있다. 무엇보다 자식과 관련된 일에 돌변하는 모습은 이중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김희애는 이 모습이 보통 사람이지 않겠냐며 연경의 모습이 솔직하게 보였다고 얘기했다.

"(누군가는) 겉과 속이 달라지는 모습이라고 하는데 저는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봉사활동을 하고 시어머니를 모시는 것도 연경이고 자식 앞에 물불 안 가리는 것도 연경이에요. 또 형제들과 싸우는 것,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것, 끌려다니지 않고 자식 앞에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연경 같고요. 겉과 속이 다른, 달라지는 모습은 아니라고 보는 거죠. 봉사도 하면서 남편에게 돌직구도 날렸을 거고, 그런 모습에 남편이 반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사진 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주)마인드마크

그가 연경에 더 잘 몰입할 수 있던 데에는 남편 재규 역을 맡은 장동건의 도움도 컸다. 대한민국 대표 미남으로 꾸준히 사랑받은 그와 같은 작품에서, 그것도 부부 역할로 함께 연기할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장동건이 출연한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를 너무 재밌게 봤어요. 자칫하면 위험할 수 있는 연기인데 현실감 있게 잘하더라고요. 신화적인 게 어울리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런 걸 다 잊을 만큼 (이번 작품에서) 현실 연기도 너무 열심히 하고 잘해서 너무 좋았어요. 안 어울리는 사람끼지 부부가 된 거 아닌가요. 선입견을 깼죠. (장동건이) '제가 경구형보다 더 나이 들게 나와요' 하던데 전혀 외모에 신경 안 쓰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참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쉽지 않잖아요. 외모로 유명하던 배우라면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는 게 보통인데 그런 걸 신경 안 쓰고 멋있게 하는 걸 보고 박수치고 싶었어요."

다만 자신에게 연경과 같은 일이 닥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어 그런 마음을 생각하는 것조차 포기했다. 그만큼 엄마로서 힘든 순간을 연기해야 했기에 연경의 감정에 몰입했다가 빠져나오는 과정도 어려울 법했다. 그러나 김희애는 마음가짐을 달리하면서 삶의 질이 올라갔다고 고백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쉽게) 털어내는 걸 보면 스태프나 배우들에게 섭섭하기도 하고 '이 작품에 진심이 아니었나?' 실연당한 사람처럼 그랬는데 생각해 보면 그게 좋은 것 같지 않은 거였어요. 배우나 현실의 저 모두에게 좋지 않다는 걸 느꼈죠. 담아두면 미련곰탱이에요. 예전에는 촬영할 때는 일만 하고, 운동하는 것도 죄책감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틈만 나면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데 그게 나쁘지 않더라고요. 대본을 숙지하고 촬영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만 하지 않으면 밸런스도 유지되고 (감정을) 빨리 비워내니까 머릿속이 깨끗하고 연기도 더 잘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니까 끝나고 나서도 치유가 빨리 되는 것 같아요."

'보통의 가족'으로 또 한 번 자신의 커리어에 중요한 점을 찍은 김희애. 장르도, 영화의 크기도 신경 쓰지 않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쌓고 있는 그를 보면 연기를 향한 진심이 느껴진다. 특히 '허스토리'(2018), '윤희에게'(2019) 등 예산이 적은 영화도 놓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 작은 영화라 할지라도 신선한 아이디어를 접하고 훌륭한 감독과 일하는 과정 자체가 그에겐 좋은 경험이기 때문이란다. 그는 특히 '허스토리' 촬영 당시를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허스토리'를 촬영할 때)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었어요. 사투리는 그냥 대충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부산 사투리가 그렇게 어렵더라고요. 그땐 발연기라고 얘기를 들을지도 모른다고 봤어요. 그런데 발연기라 해도 좋다는 마음이었죠. 전 120% 했으니까 후회가 없었거든요. 자면서도 사투리를 하고 악몽도 꿨는데 그러고 나니까 후회도 없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됐어요. 흥행과 상관없이 작은 작품이지만 제 커리어에 자랑스러운 작품으로 남게 됐잖아요. 제 자존감을 올려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만큼 앞으로도 어떤 영화든 본인이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소신도 뚜렷하다.

"사석에서 만난 감독님이 최근에 이슈가 된 인물을 할 수 있냐더라고요. 수다처럼 한 얘기였는데 깜짝 놀랐어요. 저와 그 사람을 어떻게 매치했는지 천재적이다 싶더라니까요. 가치가 있으면 전 해요. 가슴 뛰게 하는 캐릭터면요. 배우들이 제일 싫은 게 기존 이미지를 우려먹는 거거든요. 새로운 인물로 창조하는 거면 신나서 하고 싶어요. 이번 작품도 그렇고 '돌풍'도 가치 있는 작품이라 한 거지 흥행만 신경 쓰는 얍삽한 작품에 소모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에요. '윤희에게' '허스토리' 같은 작품은 제가 큰 걸 바란 건 아닌데 제 생명줄을 이어줬고, 소모되지 않게 필모그래피를 탄탄하게 만들어 줬다고 봐요."


천윤혜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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