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N NEWS
 

최신뉴스

[이슈체크] 현대차·기아, 람다2엔진 9300억 비용처리 내막

세타2 악몽재연? 현대차·기아 "그때와 다르다"는 이유
대규모 품질비용, '운전자 습관'때문
이일호 기자

thumbnailstart


현대차와 기아가 3분기에 호실적을 냈지만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2022년에 이어 2년만에 대규모 충당부채를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두 회사 합산 총 9300억원에 달합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건 ‘람다2’ 엔진으로, 과거 8조원의 충당부채를 낳은 ‘세타2’ 엔진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하지만 엔진 문제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시장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회사 측은 "과거 사태 때와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다르다’고 말합니다. 세타2 엔진 사태처럼 충당부채 연쇄 적립까지 이어지진 않을 거란 건데요. 이번 람다2 엔진 문제는 과거 사태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또 두 회사는 왜 향후 비슷한 문제가 없을 거라 자신하는 걸까요?

■ 현대차·기아 대규모 품질비용..이유는 '운전자 습관'

지난 3분기 현대차와 기아의 실적 발표 내용을 보면 눈에 띄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품질비용’이란 명목으로 쌓은 충당금입니다. 현대차는 3192억원, 기아는 그 두 배인 6115억원을 충당금으로 쌓았죠. 올해 3분기 두 회사가 기록한 합산 영업이익(6조4600억원)의 15%에 이르는 액수입니다.

충당금은 정확히는 충당부채입니다. 미래에 지출할 가능성이 높은 금액을 미리 비용으로 반영한 부채를 뜻하죠. 예를 들어 자동차업체 A사가 고객한테 차를 팔 때 향후 3년·5만km 무상으로 수리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이에 따라 A사는 미래에 돈을 들여 무상 수리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총 1조원 규모 차를 팔았고, 과거 경험상 3년·5만km 무상수리에 드는 비용이 매출의 5%라면 A사는 500억원(1조원×5%)을 판매보증충당부채로 인식합니다. 동시에 손익계산서에는 선제적으로 500억원을 비용(보증수리비)으로 처리해 놓습니다. 향후 2024년에 실제로 200억원의 무상수리가 일어날 때는 손익계산서에서 비용처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리 비용반영했으니까요. 200억원만큼을 충당부채에서 차감하기만 하면 됩니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3분기 대규모 충당부채를 쌓은 데 대해 ‘미국 운전자들의 주행 습관’을 들었는데요. 이번에 문제가 된 차종과도 상관이 있습니다. 현대차 그랜드싼타페(한국명 맥스크루즈), 기아 쏘렌토·카니발 등은 모두 대형 차종에 해당하죠. 이 차들에는 모두 현대차그룹이 직접 개발해 만든 람다2 엔진이 들어갔습니다.

이슈체크팀 취재에 따르면 미국에서 람다2 엔진이 들어간 차종에 소비자 클레임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에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조사했는데요. 미국 소비자가 차량에 토잉(Towing) 기능을 많이 쓰면서 문제가 생기는 걸 발견했습니다.

토잉은 견인 기능입니다. 자동차가 고장 났을 때 하는 견인이 아니고, 캠핑 트레일러 같은 부수차를 견인하는 기능을 뜻하죠. 한국은 트레일러를 끄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지만 미국은 픽업트럭이나 SUV 등 차량에 캠핑용 트레일러를 달아 옮기는 게 일반적이라 합니다.

미국 운전자들은 픽업트럭이나 SUV 등으로 트레일러를 끄는 문화가 보편적이라 합니다. /사진출처=flickr.com 'Andrew Bone'


그런데 미국 운전자들이 무거운 트레일러를 장거리로 옮기다 보니 엔진이 고출력 상태에 노출됐고요. 그로 인해 엔진오일 소모가 빨라지면서 엔진에 이물질이 남는 소착 현상이 생겼습니다. 소착은 엔진 소음과 주행 중 꺼짐 등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죠. 결국 현대차는 기존 10년·10만km였던 무상보증기간을 15년·15만km로 연장해주기로 했고요. 그에 따라 늘어난 보증기간만큼 충당부채를 추가로 적립한 겁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이번 건은 엔진 결함이 아니라 소비자의 주행 특성으로 인해 생긴 문제입니다. 그런데 왜 완성차 업체에서 책임을 진 것일까요? 이에 대해 현대차 측은 NHTSA와 협의 끝에 한 선제적 조치라 설명했습니다. 미국 소비자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엔진을 만든 만큼 고객 보호 차원에서 한 결정이란 겁니다. 아무래도 과거 현대차와 기아가 엔진 문제로 대규모 리콜 사태를 겪은 만큼 소비자 귀책이 있음에도 서비스를 해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번 충당부채가 현대차보단 기아가 2배나 많았던 이유도 있습니다. 기아 측에 따르면 이번 무상보증 연장을 결정한 차량의 대수 차이 때문이라 합니다. 기아는 36만 대, 현대차는 절반 수준이라 기아의 충당부채 규모가 2배나 컸다고 설명했습니다.

■ 세타2 엔진은 '돈 먹는 하마'... 악몽 재현?

현대차와 기아 모두 이번 사태는 재발 가능성이 작다고 강조합니다. 또 선제적이고 보수적으로 충당금을 쌓은 만큼 향후 이와 관련한 추가 충당금이 없을 것이라 밝히기도 했죠. 하지만 시장은 두 회사의 충당부채 소식에 놀란 듯합니다. 실제로 두 회사의 3분기 실적 발표 질의응답 때 ‘충당부채를 왜 쌓았는지’에 대한 물음이 공통적으로 가장 먼저 나오기도 했습니다.

다름 아니라 현대차그룹은 세타2 엔진 대규모 리콜 사태에 장기간 시달렸었습니다. 세타 엔진은 2004년 현대차그룹이 만든 첫 엔진으로 그룹 주요 차종에 대부분 탑재됐습니다. 또 다임러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로부터 로열티를 받고 기술을 이전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 엔진 가운데 2세대 제품에서 대규모 결함이 발생하며 현대차는 충당부채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현대차와 기아는 2015년부터 2022년까지 6차례에 걸쳐 세타2 엔진 리콜과 관련해 대규모 충당부채를 쌓았습니다. 최초 비용은 수백~수천억원에 불과했지만 2019년 들어 차량 대수도 많아지고 부채 규모도 크게 늘었죠. 2020년, 2022년에는 각각 3조6000억원, 2조9000억원의 충당부채를 쌓으며 그룹 실적을 깎는 주된 요인이 됩니다.

아래 그래프는 현대차·기아의 합산 영업이익 가운데 충당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입니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점차적으로 늘었고, 2020년 3분기에는 보증수리비가 영업이익을 뛰어넘으며 현대차가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차그룹으로선 세타2 엔진을 ‘돈 먹는 하마’라고 부를 법합니다.



■ 증권가 아쉬움 목소리...추가 충당금 가능성 없나

다만 증권가는 람다2 엔진 충당부채 문제를 크게는 보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리콜이 아닌 보증기간 연장이란 점, 현대차그룹 쪽에서 이번 건과 관련된 추가 충당금은 없을 거라 말했던 점 때문에 그런 듯합니다. 지난 3분기 증권가 리포트들을 보면 충당부채 보단 호실적을 언급하는 쪽이 훨씬 더 많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좋은 실적에 흠이 났다는 점에선 아쉽다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올해 들어 현대차와 기아의 실적이 좋게 나오다 보니 상대적으로 충당금 문제는 덜 주목받는 것 같다”라면서도 “잊을 만할 때쯤 충당금이 쌓이면서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는 게 분명 아쉬운 건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투자자들 입장에선 돌발적으로 쌓이는 충당부채가 좋을 수 없습니다. 실적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낮추기도 하고, 주가에 악영향을 주며, 주주환원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 현대차그룹이 과거와 같이 언제 또 다른 엔진 문제로 충당부채를 쌓을지 모르는 노릇입니다. 실제로 2022년 세타2 엔진에 2.9조원 충당부채가 발생했을 때, 증권가에선 향후 추가 충당부채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도 했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엔진 관련 대규모 충당부채는 잊을 때쯤 다시 나타나 회사를 괴롭히고 있는데요. 투자자들 또한 이 같은 문제가 언제든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유념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일호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머니투데이방송의 기사에 대해 반론·정정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아래의 연락처로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고충처리인 : 콘텐츠총괄부장 ombudsman@mtn.co.kr 02)2077-6288

MTN 기자실

경제전문 기자들의 취재파일
전체보기

    Pick 튜브

    기사보다 더 깊은 이야기
    전체보기

    엔터코노미

    more

      많이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