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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현장+]애널리스트의 변신..매도 금기를 깬다(상)

임지은 기자

자본주의의 탐욕을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 '울프 오브 더 월스트리트'가 증권가의 화제다. 주인공 '늑대'는 쓰레기도 팔 수 있는 마성의 언변을 가졌다. "이 펜을 나에게 팔아봐" 했을 때 그는 단번에 사고싶게 만든다.

술과 마약, 섹스 등 광기어린 사생활, 그리고 돈에 대한 끝없는 욕망, 그 과정에서 이뤄지는 각종 금융사기들은 백만번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딱, 직업인으로서 '늑대'는 자신의 일에 있어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

상위 1% 자산가를 상대로 소위 페니(동전) 주식까지 영업을 하면서 그는 막대한 부를 쌓는다. 결국 '욕망의 전차'는 감옥으로 향하지만, 수감생활 중에도 그는 "감옥이 이렇게 팔 것이 많은 곳인지 몰랐다"고 감탄한다.

형기를 마치고 나온 그는 '늑대의 몰락'이란 평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성공적인 세일즈 강연자로 변신한다. 그리고 청중들 앞에서 '이 펜을 나에게 팔아보라'는 그의 대사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서두가 길었다. 애널리스트, 그들이 '매수' 일색의 리포트를 내놓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일 게다. 그들이 애널리스트라는 명함을 손에 쥐고, 억대 연봉을 받는 순간부터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바이'를 외치며, 주식을 아주 잘 팔아야 하는 근원적 숙명을 떠안게 된다.

투자의견 '매도'나 '중립' 리포트를 내놓은 종목을 그 어떤 기관이나 펀드매니저에게 가서 팔 수 있겠는가. 투자의견 '매수'를 유지하되, 목표가만 하향 조정해도 고객이자 '갑'의 관계인 매니저로부터 '컴플레인'이 들어온다. 현실이 이럴진대 '매도' 의견을 내놓는다고 상상을 해보자. 거래하는 매니저의 표정이 어떨지.


그 뿐인가. 애널리스트가 리포트를 내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기업탐방을 못가게 된다. 해당 업체에서 '매도의견'을 낸 애널리스트의 탐방을 반길리 없다. 시가총액이 큰 기업일수록 해당 기업 IR팀의 '갑질'은 그야말로 상상초월이란다. 해외 로드쇼에 배제하는 악질 기업도 있다. 이는 업을 그만두라는 협박에 다름 아니다.

몇 년 전 일이다. 한 중소형 증권사의 리서치센터에서 포스코에 대해 '중립' 의견을 냈다. 매도 의견도 아니었다. 글로벌 기업임을 자부하는 포스코의 항의에 증권사가 수차례 무릎 꿇고 항복하며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 이후 한동안 누구도 포스코를 건드리지 않았다. 당시 남아도는 현금을 주체하지 못하는 포스코가 여기저기 금융회사에 자금을 예치해 놓고 '갑질'을 해댄 일화는 지금도 이따금 회자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분명한 사실을 하나 짚고 넘어가야한다. 포스코의 적극적인 방어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수년간 약세를 면하지 못했다. 중립, 매도 의견을 막는다고 해서 주가하락이 억제되지는 않는다. 지금 포스코는 대규모 투자를 하려면 외부에서 돈을 빌려야하는 처지다.)

미국 월가에서도 '애플'과 같은 종목에 대해서는 투자의견을 소신껏 내지 못한다고 하니, 분위기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큰 예외가 아니다. 새해 들어 삼성전자 주가가 많이 하락했지만 국내 증권사 누구도 중립 의견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기업으로부터 '보이콧'을 당하면 애널리스트는 해당 종목을 '커버'할 수 없게된다. 암초가 바로 코 앞에 닥친 것이 보일지언정 "당분간 관망세를 유지하라" "보수적 관점에서 접근하라"는 말이 최선인 이유다.

오래 전부터 언론은 '매수' 일색인 애널리스트 리포트를 까고 또 깠다. 마치 그것이 현재 우리 자본시장의 원흉인 양 떠들어댔다. 하지만 언론도 다 알았다. '매도' 의견을 내는 순간, 그 애널리스트의 인생은 '내 마음같지 않아진다'는 것을. 그러니 누가 정직하게 '매도' 투자의견을 내라고 한 들, 씨알이나 먹히겠는가?

'구조조정의 달인'이라 불리는 주진형 한화증권 사장이 최근 리서치센터에 소신있게 '매도'의견을 내라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증권업계 관계자 대부분 주 사장의 '방향성'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모난 돌이 정맞는 상황이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애널리스트 사이에서는 "알아서 짐을 싸라는 것과 같다"는 극도의 비관도 나온다.

분명한 점은 주 사장의 생각이 옳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융투자협회가 선도해서 업계 공동으로 매도 리포트를 공론화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기업의 생각도 바뀌어야한다. 매도 리포트가 나오면 해당 기업의 경영진은 즉각 IR책임자와 실무자를 문책하려고 든다. 리포트가 작성되는 근거는 경영실적이다. 중립이나 매도 의견이 나오면 경영실적을 더 잘내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의견이 바뀐다. 그런데 단기 성과에 어두운 경영진은 그 책임을 관행적으로 IR팀에게 묻고, IR팀은 문책을 면하기 위해 애널리스트와 불편한 소통을 하게 된다. 매도 리포트가 안나온다고해서 그 기업의 경영성과가 나아지는 건 절대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삼성생명이 애널리스트들에게 상당히 깐깐하다는 후문이다. 상장 5년째이지만 여전히 공모가를 밑돌고 있는 삼성생명이다. 굴리는 자금이 둘째가라면 서러운 삼성생명이다. 묘한 일이다.

투자자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져야할 것이다. 애널리스트의 리포트는 신용평가회사의 보고서가 아니다. 중립, 매도 의견은 주가가 비싸다는 애널리스트 개인의 판단에 불과하다. 신용등급이 강등되거나 등급 전망이 하향조정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은 매도 의견을 큰 재앙처럼 받아들이고 반응하고 있다.

대형증권사의 리서치센터장의 말이다. "대형주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중소형주에 매도 의견이 나왔다고 치자. 투자자들의 항의에 애널리스트는 설 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펀더멘털보다 과도하게 비싼 주가는 언젠가는 하락한다. 하락 경고를 미리 보내는 게 매도 리포트이다. 이걸 막는 건 투자자들에게 결국 손해 아니겠는가. 매도 리포트가 활발하게 나오면 매수 리포트와 경합을 벌일 것이고 이 과정에서 시장이 훨씬 건강해질 수 있다"

작년 10월 삼성전자에 대해 중립 의견을 제시한 김지웅 이트레이드증권 애널리스트의 리포트 내용이다. 주가가 143만6천원일때 135만원의 목표가를 제시했다. 남들은 여전히 200만원을 외칠 때였다. 쉽지 않았으리라.

"투자의견 하향 이후 한 달간 주가는 목표주가를 6.4%상회하였고 KOSPI 대비 상대수익률 또한 2.9%를 기록했다. 3분기 실적 또한 기존 추정치 매출액 57.5조보다 3% 많았고 영업이익은 추정치 9.4조보다 8% 더 많았다. 영업이익률은 추정치 16.2%보다 17.1%로 0.9% 포인트 높게 나왔다. 현재 스코어 참혹한 실패, 참패다. 그렇지만 여전히 좀더 냉정하게 지켜보고 싶다. 스마트폰 산업의 둔화 트렌드와 삼성전자 ROE 하락의 기조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솔직함 그리고 객관성이 묻어난다. 지나고 다시 읽으니 오히려 더 많은 떨림이 전해진다. 김지웅 애널리스트는 새해 1월28일 목표가 170만원을 제시하고 투자의견을 매수로 올린 리포트를 냈다.

임지은 머니투데이방송 기자(winwin@m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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